“60분으로 단축하면 주 5일 촬영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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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예슬 파문과 드라마 편성 시간

▲ 한예슬의 제작 거부로 촉발된 KBS <스파이 명월>은 재개됐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난 산적한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KBS
방송은 재개됐지만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것은 없다.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주연배우의 촬영거부로 불방사태까지 맞은 KBS <스파이 명월>은 지금까지 드라마가 안고 있던 모든 문제를 한꺼번에 터트렸다. ‘스타 권력’, ‘제작사의 과도한 PPL 강요’, ‘제작진과 배우 간 갈등’ 등 촬영장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이 외부에 알려지게 됐다.

방송연기자협회는 <스파이 명월> 사태와 관련해 열악한 제작 여건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방송 당일까지 촬영해야만 겨우 결방을 면하는 현실은 <스파이 명월>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기자협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내고 “촉박한 방송일정에 밀려 하루도 쉬지 못하고 일주일 내내 촬영을 한다고 해도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암묵적인 강요가 횡행하다”며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습하고 연구하지 못함으로써 드라마의 질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기자뿐만 아니라 제작진, 방송사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드라마 제작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모두 공감하는 분위기다. 주연 배우가 하루 이틀 촬영장을 비웠다고 드라마가 결방되는 상황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의 실마리를 어디에서 찾을 것이냐의 문제로 돌아가면 해답은 제 각각이다. 연기자협회는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제작비 현실화를 요구했다. ‘전작제’도 드라마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나오는 단골 대책이다.

이 가운데 드라마 PD, 작가들이 현실가능한 해결책으로 제시하는 것은 드라마 편성 시간 단축이다. 한국TV드라마PD협회(회장 이은규)는 지난 19일 방송 3사 간사 모임을 갖고 현재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드라마 편성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창섭 한국PD연합회 회장은 “이번 한예슬 사건은 그동안 줄곧 지적됐던 드라마 문제가 농축된 사건”이라며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드라마 시장에서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편성시간을 줄이는 게 가장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현재의 72분 드라마 편성을 60분으로 줄여야 ‘생방송 드라마’ 의 오명을 벗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편성 시간이 현재보다 10분 가량 줄어들게 되면 광고를 제외한 실제 제작되는 방송 시간은 50여분으로 단축되기 때문에 그만큼 제작 시간도 줄게 된다.

이강현 KBS 드라마국 EP는 “실제 방송 시간이 54분으로 줄어들게 되면 현재보다 하루 이상의 촬영분이 빠지게 된다”며 “산술적으로 주 5일 촬영이 가능해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예슬이 <스파이 명월>을 촬영하면서 요구했던 ‘주 5일’ 촬영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최문석 SBS CP는 “일본의 경우 일주일에 48분 드라마 한 개를 만드는데 우리는 63~64분짜리 드라마를 매주 2개씩 만드는 구조”라며 “절대적인 분량을 줄이기 전에 드라마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드라마 72분 편성은 방송사들의 과열 경쟁의 산물이다. 방송 3사는 지난 2008년 드라마 편성 시간이 80분까지 늘어나자 ‘72분 편성’에 합의했다.

방송사들은 ‘신사 협정’을 맺었지만 신규 드라마가 편성될 때마다 방송사의 신경전은 치열하다. 최근에도 ‘72분’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지난 22일 KBS <스파이명월>은 74분,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SBS <무사 백동수>도 74분으로 편성됐다. 지난 17일에도 KBS <공주의 남자>는 73분, 같은 시간 MBC <넌 내게 반했어>는 73분, SBS <보스를 지켜라>는 74분으로 편성됐다. 

한 드라마 PD는 “편성 시간을 1분이라도 더 늘려야 광고가 잘 붙는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며 “광고총량과 단가가 모두 묶여 있기 때문에 편성을 늘리는 방법으로 시청률을 높이려고 애를 쓴다”고 말했다. 

편성 시간은 광고문제로 귀결된다. 만약 드라마 시간을 10분 줄이면 광고 4개가 없어지게 된다. 편당 6000만원~8000만원의 광고 수입이 이전보다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결국 이번 문제 해결은 방송사 경영진의 의지에 달려있다. 생방송 드라마를 줄이기 위해서는 ‘60분 드라마’ 편성을 현실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방송사들의 드라마 편성 시간 축소를 위해 드라마에 한해 광고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방법으로 제시되고 있다. 한 드라마 PD는 “방송사의 손실을 보존하기 위해 60분으로 편성을 줄여도 현행 72분 편성과 같이 광고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한예슬 사태를 둘러싸고 여전히 방송계 내부에서는 배우 개인의 자질 문제로 바라보는 시선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번을 계기로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드라마 제작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선희 드라마작가는 “일주일 동안 120분을 찍기 위해 연출팀이 A, B팀으로 나눠 찍을 정도니 주연을 맡은 여배우는 쉴 틈이 없는 건 당연하다”며 “시청률 경쟁으로 편성 시간만 늘리는 게 과연 드라마의 발전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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