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교통방송 20년 열망 이뤄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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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구성원들 “서울시 홍보 · 자기검열 체화”…독립법인화 ‘절실’

▲ 서울 남산 교통방송. ⓒPD저널
“대통령은 비판해도 서울 시장은 비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서울시 홍보방송) 잘못한 거 인정한다. (그나마) 거르고 거른 게 그 정도였다. 오세훈 시장 시절에는 서울시가 뭘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하라는 대로 했다. 우리는 영혼이 없는 언론인이었다.” (tbs 모 PD) 

서울시 남산의 우거진 숲과 옛 중앙정보부 본관을 곁에 둔 tbs 교통방송(이하 tbs) 건물은 시간이 멈춰있는 곳이었다. tbs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남산 르네상스 계획에 따라 건물을 철거하고 상암DMC로 이전할 예정이었지만 박원순 시장이 당선과 동시에 이를 백지화해 다시 남게 됐다. 그 곳에서 만난 tbs 사람들은 시간이 정지된 건물처럼 정체된 tbs의 제작현실을 토로하며 남은 희망을 다시 쥐어짜고 있었다.

tbs는 우리나라의 대표 교통방송이다. 지상파 라디오 FM 2개와 DMB, PP(방송채널사용사업자)를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사의 옷을 입고 있으나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산하 사업소다. tbs 대표 역시 서울시장이 임명하는 서울시 교통방송본부장이다. tbs는 전체 예산 400억 중 75%에 해당하는 약 300억 원을 서울시 예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상업광고는 받지 못한다.

구성원들은 신분상 계약직 공무원이며, 2년·3년 주기로 재계약을 해야 한다. tbs는 불안정한 인력구조와 함께 공무원조직 특성상 예산 배정 및 집행이 경직되고 방송사 자체 사업 추진도 어려운 상황이다. 또 타 방송처럼 공정방송위원회도 없고, 노조 결성도 법적으로 배제됐으며 기자들은 기자협회 가입도 안 되는 상황이다. 때문에 구성원들은 언론인으로서 자괴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tbs의 한 관계자는 “지방 계약직공무원 신분에 묶여있어 시정 홍보를 해 달라고 하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tbs의 한 간부는 “오세훈 시장을 홍보하다 이제 박원순 시장을 홍보하려니 우리가 봐도 모양새가 웃기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동안 언론계 내부는 물론이고 국회에서조차 tbs의 구조적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높았다. 이런 과정에서 ‘tbs는 시정 홍보방송’이라는 불명예 ‘딱지’는 따라다녔다. 구성원들은 ‘윗선’에서의 노골적인 요구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tbs 중견 PD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노골적으로 청계천 사업 홍보를 요구했다. 청계천에서 쫓겨난 영세상인 목소리는 다룰 수 없었다. 모 본부장은 서울시 홍보회의에 참석해 홍보 지침을 받아왔다. 오세훈 시장 때는 매일 의무적으로 두 세건 씩 서울시 공무원 전화 연결을 했고, 오 시장 사업은 방송의 질을 고려하지 않고 홍보했다. 90년대에는 눈이 많이 와서 ‘서울시 폭설 대란’으로 보도했다가 다음날부터 한 동안 편성에서 ‘뉴스’가 사라진 적도 있었다.”

또 다른 tbs 관계자는 “오세훈 시장 들어서면서 시정홍보에 더욱 치우쳤던 게 사실이다. 솔직히 창피한 내용 많이 내보냈다. 방송 만들면서 시민들에게 해당 정보가 도움이 된다는 판단은 없었다”고 고백했다. PD와 기자들은 뉴타운 재개발 사업이나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에 대한 비판 리포트를 담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에는 서울지방경찰청이 tbs 리포터들에게 공문을 내려 ‘촛불집회’를 ‘불법집회’로 바꾸라고 지시해 안팎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tbs 구성원들은 회사가 재단법인으로 전환하거나 공사로 운영되는 방식을 통해 ‘서울시 부속기관’ 에서 벗어나 언론사로 기능하길 바라고 있었다. 녹록치 않은 광고시장에서 임금하락의 위기가 오더라도 법인화를 통해 시장경쟁체제에 들어서려는 것은 그만큼 tbs 성원들에게 편성권 독립과 제작 자율권 확보 등이 절실한 문제여서다. tbs 모 PD는 “(서울시라는) 우산 아래 있으면 제작비나 청취율 스트레스는 타사에 비해 적지만 가만히 있기에는 우리의 미래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tbs의 독립법인화는 내부의 숙원사업으로, 1990년 6월 개국 당시부터 법인화 요구가 있었다. 2005년 서울시는 tbs 케이블TV 개국에 따른 이행각서를 제출할 당시 방송위원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독립법인화 추진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2005년 당시 방송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이효성 교수(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장)는 “tbs가 서울시장의 사유화된 방송으로 선거나 특정 목적에 이용될 확률이 높아 독립법인화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급물살을 타던 법인화 논의는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며 흐지부지됐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에도 부시장 선까지 결재가 됐으나 결국 시장 결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용해먹다보니 지금 체제가 좋아서 내버려둔 것”(tbs 관계자)이었다. tbs 사람들 중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정 홍보방송’이란 tbs의 오랜 오명을 벗겨 줄 거라 기대하고 있지만, “아무리 박원순 시장이라도 tbs에 대한 통제권을 놓으려할지는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언론자유 인식이 전임시장에 비해 높다고 평가받는 박 시장이 스스로 ‘서울시 산하기관의 경영혁신’을 공약으로 내걸은 만큼 전임시장처럼 tbs를 ‘전리품’으로는 두지 않을 것이란 기대가 많다. tbs가 편성권 독립을 위해 바라온 ‘독립법인화’는 서울시장의 의지만 있으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효성 전 방송위 부위원장(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장)은 “tbs는 시장의 사유화된 방송이 되면 안 된다”며 박원순 시장의 ‘결단’을 주문했다. 이효성 원장은 “(박원순 시장이 전임시장에 비해) 억울한 측면은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독립법인화가 유리하다”고 밝힌 뒤 “tbs가 독립법인이 돼도 서울시로부터 100% 독립은 어렵겠지만 현재처럼 서울시 산하에 있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tbs의 한 관계자도 “tbs는 서울시민의 예산으로 운영된다. 서울시장은 서울시민이 원하는 방송을 먼저 생각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기동민 서울시 정무수석비서관은 “이제 검토하는 단계다. 시간을 달라”고 말했고, 정광현 서울시 홍보팀장도 “현 단계에서 공식 검토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tbs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서울시가 tbs와의 비공식 보고 자리에서 독립법인화 필요성에 공감한 것으로 알려져 이후 서울시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tbs가 서울시정을 비판할 수 있는 그날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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