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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프로그램 제작 PD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아, 나는 현재 유아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프로그램 홈페이지에 올라온 시청자 의견에 답하는 것이다. 물론 유아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시청자라기보다는 ‘내 아이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있는 학부모’라는 편이 적확할 듯하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악셀), ‘교육’을 한다는 방송사에서(더블 악셀), 그것도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트리플 악셀)을 제작하고 있으니, 아무리 시청자 의견이 많더라도 공손하고 성실하게 답하지 않을 경우에는 추상과도 같은 질책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다보니 내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건지, 상품을 구매하는 고객의 감정까지 A/S해야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건지 직업적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급기야는 인터넷을 검색해 지식인께 여쭈노니 ‘방송 산업, 제조업? 서비스업?’ (서술어가 없어도 척척 대답해 주신다.) 답하시길 “2008년 유엔의 국제표준산업분류에 대분류 ‘J 출판, 영상, 방송통신 및 정보서비스업’이 신설되면서 제조업 영역으로 분류되었던 방송통신업이 J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아, 정보를 제조한 다음에 서비스도 하라는 말씀이시구나.

제조도 하면서 서비스도 해야 하는 뭐 이런 억울한 업종이 다 있나 싶다가도 ‘그래도 덕분에 먹고삽니다’ 하며 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사랑 합니다, 고객님’ 정신을 몇 번이나 되뇌고  홈페이지를 마주하지만, 사실 모든 의견을 수렴하기는 심정적으로 쉽지 않다. 지난주엔 ‘아침 먹고 땡, 점심 먹고 땡~’ 노래에 맞춰 해골 그리는 놀이를 방송했는데 시청자 한 분이 “3세에서 5세 유아에게 해골이라뇨, 어린아이에게 해골을 어떻게 설명하라고…”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셨다.

‘아, 아직 해골에 대해서 설명을 안 해 주셨구나’ 싶다가도 ‘해골이 뭐 어때서? 꽃과 나비, 사랑과 행복만 보여주고 가르쳐 줄 건가?’, ‘아냐 그럴 수 있지, 해골은 무서우니까.’, ‘아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 정말 증말 아오’ 손바닥 뒤집듯 하는 마음을 ‘김 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로 다잡는다. 허나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시거나 “제작진, 너무 성의 없네요. 다시는 보고 싶지 않습니다” 하시면 ‘성의가 뭔가요? 먹는 건가염? 정 그러시면 보지 '마thㅔ요.'를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하지만 결국엔 언제나 “좋은 의견에 감사드립니다…”하며 답변 속의 제작진은 웃고 있다. 울고 있다. 엉엉엉. 나는야 금강불괴 제작진.

▲ 박유림 EBS PD
아, 서비스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업이 당연히 이렇지.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모든 시청자가 좋아하고 만족하기를 바랄 수는 있어도 그걸 기대하면 안 되는 거지. 모든 시청자가 만족하는 방송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 만족하지 못하셨다고 불평하면 안 되지. 나는 정보서비스업 종사자로서 아직 멀었다. 그래 다시 한 번, “사랑합니다. 고객님.”(이건 우리끼리 얘기니까, 시청자에게 이르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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