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첩공주’의 수첩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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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박근혜 편

▲ 지난 2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한 장면. ⓒSBS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예능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냈다. 6년만이었다. 여전히 표정은 얼음 같았고, 웃음은 어색했다. ‘수첩공주’ 박근혜 위원장의 가방에는 역시나 수첩이 있었지만,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머리스타일도 본인이 느낄 정도로만 바뀌었다. 그러나 본인은 이전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바라는 모습이었다. SBS 예능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연출 최영인) 신년특집에 출연한 박근혜 위원장은 자신을 ‘박근혜씨’로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소셜테이너’ 김제동과 박근혜씨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날 방송은 12.2%(AGB닐슨)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정치·사회분야의 ‘어록 제조기’로 유명한 김제동은 존재만으로 그저 토크쇼에 불과한 예능에 매 순간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김제동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온 듯 보였다. 이들의 토크는 국밥을 먹으며 시작됐다. MC 이경규는 연신 땀을 흘린 반면, 김제동은 빈틈을 보며 찰나를 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날 방송은 예능프로그램이 출연자와 진행자에 따라 얼마든지 시사토크쇼로 변모해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민감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이경규는 김제동이 트위터를 통해 투표를 독려했다는 이유로 선거법 위반으로 고소당한 사실을 언급했다. 이에 박근혜 위원장은 “나도 (선거기간 중) 투표를 독려했다”며 넘겼다. 강용석 의원이 국회의원 모욕죄로 최효종을 고소했던 사건에 대해선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수첩공주’란 별명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응했다. 그러나 진행자들이 ‘야근해’ ‘발끈해’ 등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자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준비해온 유머를 ‘시전’하기도 했다. “새우와 고래가 대결하면 새우가 이깁니다. 새우는 깡이고, 고래는 밥이니까.” 2004년 총선 당시 불렀던 댄스곡 거북이의 ‘빙고’도 불렀다. 그럼에도 어색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날 유독 김제동을 칭찬했다. 그의 유머에 유독 웃으며 “말씀을 잘 하신다”며 칭찬했고, “김제동씨를 좋아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사랑과 관련된 김제동 어록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 지난 2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한 장면. ⓒSBS

이날 긴장감의 절정은 스피드 퀴즈였다. 민감한 단어들이 나왔다. 박근혜 위원장은 ‘안철수’ 단어가 나오자 고민한 뒤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좋으신 교수”라고 설명했다. 박 위원장은 ‘나꼼수’에서도 약간 당황하며 “팟캐스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사풍자”라고 소개했다. 김제동이 바로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묻자, “들어본 적 있다. 기사로 많이 봤다. (내용 중에) 저에 관한 문제도 있었다”고 답했다. 박 위원장은 김제동이 “야간에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표현하는 것”이라 말하자 “촛불집회”라며 답을 맞췄다.

방송은 자연스럽게 정치이슈로 넘어갔다. 분위기는 살얼음판 같았지만, 이경규와 김제동의 노련함이 빛을 발했다. 특히 김제동은 본인 스스로도 긴장한 모습이 보였으나 민감하지만 시청자들이 듣고 싶어 할 이야기를 끌어내려 노력했다. 그는 대뜸 박근혜 위원장에게 안철수의 인기요인을 물었다. 박 위원장은 “젊은이들과의 소통·공감 능력 때문”이라고 조심스레 답했다. 본인이 젊은 층에게 인기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말끝을 흐렸다. 

긴장감은 이어졌다. 김제동은 최근 정부의 ‘SNS 규제’ 움직임을 의식한 듯 “(사회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느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박근혜 위원장은 “(국민들이) 그런 생각을 갖지 않도록 정치권에서 더 노력해야 한다”며 모범 답안을 내놨다. 김제동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국민들에게 팽배하다고 지적하자 “(불신을) 바로잡기 위해 (한나라당) 비대위도 출범했다”고 밝혔다.

방송 후반부터는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던 박근혜 위원장의 과거사가 주로 등장했다. 박근혜 위원장은 “12살에 청와대에 들어갔다.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언행에 조심했다. 경호원 몰래 영화보고 다방에서 커피 마시고 버스 타고 돌아다닌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전자산업 역군이 되어 경제 발전에 기여해보자는 생각에 서강대 공대에 들어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데모가 많았던 대학시절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박 위원장은 “실험실이나 독서실에 있었다”고 짧게 답한 뒤 “왜 데모하냐고 (친구들에게) 말한 적은 없다”고 덧붙였다. 박 위워원장의 대학시절에는 유신독재 반대투쟁이 격렬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에 대한 회상도 이어졌다. “프랑스 유학시절 신문에서 어머니 사망 소식을 접했다. 제 몸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전기가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울었다.”

▲ 지난 2일 방송된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의 한 장면. ⓒSBS

박 위원장은 아버지의 사망에 대해서도 “흉탄에 돌아가셨다. 그보다 더 큰 충격은 있을 수 없었다”며 심경을 밝혔다. 김제동이 아버지 사망이후 17년간 은둔생활을 했다고 하자 “실제로 은둔은 아니었다”고 발끈하기도 했다. 1998년 박근혜는 47세의 나이에 정치계로 입문했다.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IMF 사태가 굉장히 큰 충격이었다. 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이렇게 흔들릴 순 없다고 생각했다. 뭔가 기여하고 싶었다.” 박 위원장의 답변에선 ‘아버지’가 힘들게 세운 나라를 지켜야한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이날 박 위원장은 박정희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에 대해 “역사의 평가, 국민의 평가에 맡길 일이다”라고 짧게 답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패배를 두고서는 “치열한 경쟁으로 감정의 골도 깊을 수밖에 없었지만 승복하는 건 당연했다”고 말했다. “공평하게 행복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며 대권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이 많은 이야기를 했음에도, 정작 들어야 할 이야기는 듣지 못한 마음에 개운치가 않았다. 다음 주에는 잠재적 대권후보인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출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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