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가 ‘새벽 1시’로 바뀐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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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환 PD의 음악다방]

군사독재 시절의 가요심의 기준을 보면 정말 재밌는 경우가 많습니다. 21세기에 들어 70~80년대에 심의불가 판정을 받았다는 가요의 이유를 들어보면 한 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실례로 70년대 초 많은 인기를 얻었던 가수 송창식의 ‘왜 불러’라는 노래가 심의불가를 받았는데, 그 이유는 노래 가사에서 장발 단속을 비판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가사를 쓴 이의 속내까진 모르겠지만, 당시 심의 당국이 내세운 이유는 노래 가사 중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양희은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아침이슬’ 역시 금지곡이었는데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노랫말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묘지는 남한을 뜻하고, 태양은 북한의 김일성을 암시한다나요?

이 외에도 재미있는 금지곡이 많습니다. 이장희의 ‘그건 너’에 대해 심의 당국은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금지를 내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며 잠 못 이루는 이유를 “너 때문이야”라고 한 것인데, 그것을 두고 독재정권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해석했다고 합니다. 청춘 남녀의 사랑 노래에마저 제 발이 저린 나머지 빨간 딱지를 갖다 붙인 것입니다.

 

▲ PD블루 ‘새벽 1시’앨범 표지
그런데 21세기인 지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유로 여성가족부에서 가요심의를 담당하게 됐는지, 언제부터 그렇게 된 것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제가 만든 노래가 여가부로부터 ‘19금’ 조치를 받고 나서야 “여가부에서 가요심의를 하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가 지금보다 어릴 때 심의 당국으로부터 19금 조치를 받던 노래들은 아무래도 힙합 장르의 곡들이 다수였습니다. 래퍼들이 자신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하기 위해 가사 중간에 욕설을 넣거나, 비속어와 약물, 때로는 성관계 등을 암시하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이었죠.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를 만드는 사람들도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한편 이런 부분에 대한 19금 조치는 그래도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분위기입니다.

여가부로부터 19금 조치를 받은 제 노래는 지난 2010년에 발표한 ‘새벽 2시’인데요. 이별 후에 떠나간 여인을 그리워하면서도 동시에 애증이 생겨나 “에잇, 잘 먹고 잘 살아라”라는 뉘앙스로 이야기를 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노랫말에 ‘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게 문제가 됐습니다. 랩 전반부에 “술에 취해 누워있어”라는 부분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더욱 재밌는 건 이 노래에 대한 19금 조치가 내려진 시기입니다. 이 노래는 지난 2010년 6월 싱글앨범으로 발표했는데, 발표 당시엔 아무 조치도 없다가 지난해 2월 정규앨범 발표 직후 여가부 심의를 통해 19금 조치를 받게 된 것입니다. 정규앨범에 대한 심의만 강화한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부터 여가부 심의가 진행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도 그 노래엔 19금 표시가 붙어있고 청소년들은 구입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됐습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비스트의 ‘비가 오는 날엔’, 10cm의 ‘아메리카노’, 바이브의 ‘술이야’ 등에도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가부로부터 19금 조치를 받게 된 노래들 중 그 사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게 태반입니다. 심의를 위해 컴퓨터를 활용해 가사 중에 ‘술’만 들어가면 19금 조치를 내리자고 한 것일까요? 융통성이 없다고밖에 볼 수 없는 행위입니다.

가요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여론의 뭇매를 맞자 여가부는 지난해 10월 가요 심의에 대한 새로운 세칙을 발표했습니다. 술과 담배가 들어간 가사 중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직접적·구체적으로 권하거나 조장한 내용 △술을 마신 후의 폭력적·성적행위, 일탈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거나 이를 정당화, 미화한 것만 규제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19금조치가 내려진 노래들은 여전히 재심의 과정 없이 19금에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제 노래 ‘새벽 2시’ 역시 온라인 상 음원 판매 시 19금 조치와 더불어 방송 불가 상태이죠.

 

▲ 이주환 PD
그래서 얼마 전 저는 ‘새벽 2시’를 ‘새벽 1시’로 바꿔 발표했습니다. 가사에서 ‘술’이란 단어가 안 들어가게 일부를 바꿔 재발매한 것입니다. 여가부에 재심의를 요청하는 방법도 모르겠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제 노래를 들려주기 위해 나름 머리를 굴려본 것이지요. 창작자가 이런 일로 머리를 굴리는 일이 없게, 탁상행정식 가요심의는 이제 근절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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