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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은 국익에 우선한다”

[인터뷰] 제레미 바인 BBC ‘파노라마’ 전 진행자 영국=장정훈 통신원l승인2012.03.21 15: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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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국의 방송에선 탐사 저널리즘을 구현하는 프로그램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KBS 2TV <추적 60분>, MBC <PD수첩> 등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고는 하나, 이들 프로그램에서마저도 어느 순간부터 ‘금기’의 대상이 생겨났다.

그리고 여기 <파노라마>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영국 BBC에서 제작을 시작한 <파노라마>는 지금까지도 탐사 저널리즘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파노라마>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생겨나기 전부터 성차별을 주제로 다뤘고, 정치인 등 각계의 비리를 캤으며, 마약 판매 조직이나 인신매매, 폭력 조직 등을 쫓았다. 분쟁 지역도 제 집처럼 드나들었다.

정부 정책을 비판하고 권력의 비리를 캐던 <PD수첩>의 간판 PD인 최승호 PD는 지금 <PD수첩>을 떠나게 됐지만, 테러전문 리포터 피터 테일러는 28년째 <파노라마>를 제작하고 있다. <파노라마>의 알카에다 등 분쟁지역 전문 리포터인 제인 코빈 역시 20년째 현장을 누비고 있다.

BBC를 대표하는 언론인으로 얼마 전까지 <파노라마>의 진행을 맡았던 제레미 바인은 “우리 사회엔 뭔가를 감추려는 사람이 너무 많고, 그들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기에 탐사 저널리즘은 매우 중요하다”며 “저널리즘은 국익에 우선한다”고 강조했다. 너무도 당연하게 이 같이 말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정부 정책 등에 대한 비판을 국익의 잣대로 가늠하려는 한국 정치·언론 권력의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은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다.   

   
▲ 제레미 바인 BBC ⓒ장정훈 통신원
-
한국에 가봤나.

: 불행하게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주로 아프리카와 러시아, 중동을 다녔다. 대신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 밝고 활기찬 그런 느낌이다. 아, 제임스 본드에서 본 지뢰도 떠오른다.

- BBC엔 언제 어떻게 입사했나.

: 24년 전 뉴스견습생으로 입사를 했다. 12명을 뽑는데 8000명이 지원을 했다. 운이 정말 좋았다.

- 어떤 면에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나.

: (싱긋 웃으며) BBC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정말 특별해서 특별한 사람, 그리고 운이 좋아 특별해진 사람. 나는 후자다. 운이 좋아 뽑히긴 했지만 처음 15년 정도는 정말 열심히 했다. 정말로 말이다.

- <파노라마>가 롱런하고 있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 <파노라마>의 생명은 심층취재다. 특공대 SAS처럼 치밀하고, 완벽하게 취재한다. 우리 사회에는 무언가를 감추려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에 대한 감시가 필요하기 때문에 탐사 저널리즘은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파노라마>는 감시견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파노라마>가 다룬 주제는 자주 화제가 되어 여러 뉴스에서 다루어지기도 한다.

- <파노라마>는 어떻게 제작되나.

: 정해진 틀이 있는 건 아니다. 제작 기간도, 인력도 정해져 있지 않다. 주제에 따라 제작에 서너 달이 걸리기도 하고, 1년이 걸리기도 한다. 위장취업을 통한 잠입취재의 경우 기간을 정해 놓고 제작을 할 수 없다. 어떤 주제는 세 명이 만들기도 하고, 어떤 주제엔 열 명 이상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편당 제작비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고정 멤버들이 있기는 하지만 누구든 좋은 소재를 가지고 오면 제작에 참여할 수도 있다.

- 작가를 따로 쓰나.

: 작가는 따로 없다. 리포터와 PD가 함께 구성과 내레이션 작업을 한다. 주로 PD의 몫이다. 

- 민감한 주제를 많이 다루다 보면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지 않나.

: 방송 후 고소를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진실이 모든 걸 막아준다. 고소, 고발은 저널리즘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고 감수해야 한다.

- 정치적인 간섭은 없나.

: 전혀 없다. 정치가 오히려 언론의 영향을 받는다. 물론 사회적으로 정치 권력의 힘이 가장 센 게 현실이다. 그렇지만 정치가 프로그램에 간섭하지는 않는다.

- 영국 저널리즘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나.

: 높다. 영국의 저널리즘은 상당한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고, 시청자로부터 신뢰도 받고 있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강한 만큼 힘도 세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민도 있다. 어떤 주제에 대해 부정적인 면을 보여줄 때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보이는 것, 경제 붕괴를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 그런 부분에서는 저널리스트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 저널리즘은 간혹 국익과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BBC의 경우 이라크전에서 그랬고, 지난해엔 <파노라마>가 2018년 월드컵 개최지 발표 직전에 FIFA(국제축구연맹)의 비리를 폭로해 개최지 선정에 실패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 당연히 저널리즘이 국익에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파노라마> 때문에 영국이 월드컵 개최에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노라마>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국익과 저널리즘이 충돌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 BBC의 강점과 약점을 꼽는다면.

: 강점은 고품질 프로그램을 만들어 낸다는 점이다. 단점은 BBC의 덩치가 너무 크다는 거다. 사장 혼자 2만 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 그렉 다이크 전 사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그는 BBC 역사상 최고의 사장이었다. 그는 많은 직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했다. 그는 환경 미화원에게도 늘 친절하게 말을 걸곤 했다.  

제레미 바인은 현재 BBC 라디오2를 진행 중이다. 1965년생인 그는 대학 졸업 후 BBC에 합류해 아프리카 특파원을 지냈다. 이후 앙골라, 에티오피아 내전 등 위험 지역 취재를 두루 경험했으며 <뉴스나이트>를 진행하는 등 각종 탐사 보도 프로그램에서 잔뼈가 굵었다. 그는 이제 24년의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 저널리스트 겸 프로그램 진행자로 집요하고, 거친 인터뷰로도 유명하다.

 

 


영국=장정훈 통신원  mooso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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