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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보·사·장 퇴진!’을 접고 5월 1일까지 업무에 복귀하란다. 불법정치파업을 그만두라는 회사의 문자를 받은 건 지난 20일 저녁이었다. 첫 돌도 안 된 아들 녀석이 콧물 때문에 잠을 설치고, 네 살짜리 딸아이는 40도 고열에 힘들어 하고 있을 때였다. 주말에 아이들 얼굴을 보면서 파업에 대해 고민 좀 하라는 회사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이번에는 온정주의를 배격하고, 원칙대로 처리하겠다는 제법 날선 협박도 마다하지 않는다.

4·11 총선 결과가 경영진에게는 훌륭한 선물이 된 듯싶다. 문자 행간에 ‘너희 새노조 이제 끝났어’라는 승자의 여유가 묻어난다. 어쨌든 이번 총선의 1등 공신은 여당의 쇄신이나 야당의 오만보다도 역시 가공할 만한 지상파 뉴스의 힘이었으니….

▲ 새누리당에 언론장악 국정조사를 촉구하는 전국언론노조 기자회견이 지난 18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열리고 있다. ⓒ언론노조 KBS본부

 

사측은 처음부터 우리의 파업을 정치파업으로 몰아붙였다. ‘특·보·사·장 퇴진!’은 너희들의 근로조건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총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노골적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임으로써 공영방송인의 자세를 스스로 저버렸다”고 짐짓 꾸짖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캠프에 계셨던 분이 할 말은 아니었다. 

‘나는 꼼수다’ 김용민의 8년 전 막말은 호기였다. 이것을 놓칠 분들이 아니지 않는가? 맥락은 무시되었다. 그가 광대시절 범했던 권력에 대한 무차별적 욕설은 그것이 ‘19금’ 성인방송임에도, 그것을 복사·공연·전시·방송·배포 등에 사용하지 않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체 관람가인 9시 뉴스에 참 자세히도 나오더라. 솔직히 우리 딸이 볼까 무서웠다.  

그런데 선거판에서는 박사논문이 표절인지, 대필인지 불확실한 후보도 있었다. 독도는 분쟁수역이라는 일본 극우의 논리를 가진 반민족 후보마저 있었다. 게다가 제수씨를 성추행하려 했던 해외 토픽 감 후보가 실존하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검증’이란 잣대가 아닌, ‘논란’이란 정치 공학적 용어가 동원됐다.

공정하지 못한 검증의 잣대는 불온하다. 정치적 이해득실에 좌불안석하는 언론인이야말로 저널리즘에서 손을 놔야 한다. 적어도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에서는 말이다. 정치는 정치 본연의 자리로, 언론은 언론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 상식이 이번 파업의 출발이자 끝일뿐이다.  

▲ 김광수 KBS전주 PD
‘특·보·사·장 퇴진!’을 외친지도 어느덧 50일이 지났다. 시간이 화살처럼 빠르다. 그동안 구럼비는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쌍용차는 비정한 죽음의 그림자가 22번째다. 전북고속은 초로의 버스 노동자가 망루에서 40일 넘게 단식투쟁을 한다.

그런데 그들의 진실을 알려야 할 우리는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 착잡한 일이다. 하지만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우리는 그 분들이 낸 수신료로 지금까지 먹고 살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정치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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