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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클리핑] 광우병 현지 조사단, 사실상 견학단 수준

비례대표 경선 부정 파문에 휩싸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거세다. <경향신문> <한겨레>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진보와 보수를 막론한 대부분의 일간지가 연일 톱기사로 현 사태를 다루고 있다.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안이한 대처로 사태가 악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보수언론은 이번 사건을 ‘주사파 척결’ 기회로 삼고 맹공에 나서는 모양새다.

▲ 중앙일보 1면 기사.
통합진보당 비례 경선투표, 부정선거 종합세트

<경향신문>은 2면 기사에서 통합진보당이 3일 공개한 비례대표 후보 ‘부정·부실 경선’ 진상조사 보고서에 현장투표와 온라인 투표에서 일어난 부정투표 실태와 투표수·개표 조작 행위가 총망라됐다고 보도했다. 경향은 이를 두고 “부정선거의 종합세트”라고 표현했다.

도대체 어느 정도 문제가 있는 걸까. 투표 첫날인 3월14일. 한 IP(인터넷 프로토콜)주소에서 44건의 투표가 이뤄졌다. 투표는 오전 9시40분쯤부터 오후 5시30분쯤까지 진행됐다. 10분당 한 표씩 투표한 꼴이다. 동일한 IP주소를 통해 누군가 무더기로 중복투표를 한 것이다.

또 다른 IP주소에서는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2시까지 2시간여 동안 50대 후반에서 70대인 고령의 여성 이름으로 21명이 투표했다. 상당수의 투표에 소요된 시간이 2분 정도에 불과해 대리투표 정황으로 지목됐다. 찬성·반대에 모두 찍어 무효표로 처리돼야 할 투표지가 개표 과정에서 유효표로 잘못 처리되기도 했다. 개표 때 선관위원 및 참관인이 모두 서명하고 입회하도록 했으나 한 명만 서명한 채 진행됐다.

진상조사위는 특정 IP주소로 투표한 유권자 90명을 표본으로 뽑았다. 직접 전화조사를 벌여 경위를 확인했다. 그 결과 통화가 연결된 65명 중 당원이 아니라고 말한 사람은 7명이었다. 당원이 아니라고 밝힌 사람 중 3명은 아예 당원 이름과 자신이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 사실상 대리투표임을 확인시켰다. 당헌·당규상 비례대표 후보 선출권은 당원에게만 제한돼 있음에도 비당원이 투표에 참여한 것이다.

핵심 의혹 중 하나인 온라인 투표수 조작 의혹과 관련한 조사 내용도 공개됐다. 투표기간인 3월14일부터 18일까지 모두 4번의 소스코드(투표 프로그램 설계도) 수정이 이뤄졌다. 수정 후 특정 후보만 투표 화면에 뜨는 오류가 5분 정도 발생했다. 이때 온라인 투표를 한 사람은 모두 23명이다. 진상조사위는 “이런 환경에서 이들이(23명) 특정 후보에게만 투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조작을 의심케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진상조사위가 135개 투표소 투표함을 개봉해 조사한 결과 대리투표 정황들이 많이 나왔다. 전체 218곳 투표소 중 128곳(58.7%)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 현장투표를 하기 전에 서명하는 ‘선거인 명부’를 분석한 결과 동일한 필체가 나왔다. 한 사람이 대신 투표를 하고 무더기로 서명을 했다는 의심이 나오는 대목이라고 진상조사위는 전했다.

조선, “주사파, 패권 위해 모든 수단·방법 동원”

▲ 조선일보 4면 기사.
보수언론은 즉각 ‘맹공’에 나섰다. <조선일보>는 4면 기사에서 민주노동당 창당멤버였던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를 통해 통합진보당 당권파인 NL(자주파·범주체사상파)세력을 강하게 비판했다. 주대환 대표는 비례대표 경선 조작사건에 대해 “문제의 핵심은 이른바 당권파들이 갖고 있는 친북주의”라며 “진영 논리로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이날 인터뷰에서 진보당의 선거 부정에 대해 “익숙한 일, 자주 있던 일이라 놀라지 않았다”고 했다. 진보당의 전신인 민노당에서도 선거 부정이 관행처럼 이뤄졌다는 얘기다. 주 대표는 “당권파가 지역당 사무국장이나 중앙당 당직을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견제도 안 되고 부정행위가 선을 넘어서는 경우가 나오는 것”이라 말했다.

주 대표는 “친북주의자들을 민주세력, 진보세력이라며 그 일원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문제”라며 “이번 사건도 소위 경기동부연합 등 친북 성향 당권파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이들이 자신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물러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중앙, “체육관 선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통합진보당이 3일 공개한 4·11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진상조사 보고서 내용을 두고 “선거 부정의 종합판”이라고 비판했다. 중앙은 무더기 대리투표가 의심되는 사례를 비롯해 온라인 투표에서 같은 PC를 사용한 중복투표 등 부정경선 내용을 지적하며 윤종빈(정치학) 명지대 교수의 말을 인용, “독재정권 시절 관제 투표를 상징하는 ‘체육관 선거’도 이보다 나았을 것이다. 진보정당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한국, “당권파 전횡에 예고된 재앙”

한편 <한국일보>는 5면 기사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부정 경선은 당권파의 전횡과 패권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했다. 기사에 따르면 통합진보당은 지난해 12월 자주파(NL)가 주축인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탈당파(PD), 국민참여당 등 3개 정파가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합당 당시 지분은 5대3대2였지만, 실제로는 자주파 세력이 절대 다수다.

특히 자주파 내에서도 경기동부연합과 광주ㆍ전남연합이 이른바 당권파에 해당하는데, 이들만 해도 투표권을 가진 당원의 60% 가까이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당권파의 독주체제인 셈이다. 한국은 “합당 이후 지금까지는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해왔지만, 실제로 사무총장을 비롯해 조직‧총무 등 핵심당직은 당권파가 장악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각 정파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애초부터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한 평등파 인사는 “야권연대 협상 과정에서 당권파가 성폭행 전력을 알면서도 윤원석 전 <민중의 소리> 대표를 공천했던 일, 이정희 공동대표측이 여론조사 조작을 시도했던 일 등은 당권파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사례들”이라고 했다. 한국은 “통합진보당 안팎에선 이번 비례대표 부정 경선 파문이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당권파 “당권 줄게 지분 보장하라” 거래

▲ 경향신문 1면 기사.
이런 가운데 통합진보당 당권파(경기동부연합)가 안이한 인식과 미봉식 행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부정선거를 주도한 것으로 의심받는 당권파 일각에선 당의 존립까지 위협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관행’으로 치부하고, ‘당권 거래’로 사태 봉합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3일 비례대표 경선 부정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기 사흘 전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가 유시민 공동대표를 찾아 “당권(대표직)을 받아라. 대신 (당권파에게) 당 지분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당선자는 옛 민주노동당계인 당권파의 핵심 인사로 꼽힌다. 유 대표는 이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향은 특히 “당권파들은 부정 경선 행위가 절차적 민주주의 근간을 파괴하고 국민 외면을 불러올 심각한 사안임에도 이를 ‘관행’으로 보고 있다. 당을 흔들려는 ‘분파주의 책동’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당권파인 이의엽 정책위의장은 MBC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존의 잘못된 관행, 미비한 제도, 통합 이전에 가지고 있던 서로 다른 조직문화 등의 차이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전날 진상조사 결과 발표 후 기자간담회를 열어 “사실상 의혹제기 수준이고 구체적 사실관계가 어떻다는 게 명확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당권파인 신석진 대표비서실장은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일 위험한 건 동지로 위장해 세작(간첩)질을 일삼는 일군의 세력”이라며 “조봉암(1956년 진보당 창당 후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사형)의 진보당은 프락치들의 분열공작에 사분오열돼 스스로 붕괴됐다”고 썼다. 당 핵심 관계자도 “실체도 없는 걸 가지고 부정선거라는 유령을 덧씌우려 한다”고 했다.

비당권파 “경선 비례 모두 사퇴” 당권파 “부정 연루자만”

<한겨레>는 부정선거 사태에 대한 수습방안을 놓고 통합진보당 내 갈등을 보도했다. 한겨레 3면 기사에 따르면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단(이정희 심상정 유시민 조준호)은 3일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위원회 활동을 종료하고, 전국운영위원회 산하에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추가 조사 및 당기위 제소 등을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비례대표 거취 문제를 두고 당내 최대 계파인 ‘당권파’와 비당권파(국민참여당 계열 유시민 대표와 진보신당 출신 심상정 대표, 민주노총 출신 조준호 대표)는 대립을 계속했다. 이정희 공동대표는 이날 “그 상황과 이유가 어떠했든, 집행 책임자들의 맹성과 부정투표 관련자들의 통렬한 반성, 그리고 통합진보당의 재기를 위해 저 스스로 가장 무거운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퇴할 뜻을 내비쳤다.

문제는 비례대표다. 비당권파 쪽은 20명의 후보 가운데 외부 영입을 하거나 전략공천한 후보(당선자 3명 포함해 6명)를 제외하고,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된 비례대표 후보(14명)는 전원이 사퇴해야 한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반면 당권파 쪽은 부정선거의 책임소재와 연관성을 밝힌 뒤에 책임있는 비례대표가 사퇴하는 형식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권파와 비당권파가 물밑에서 가장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는 부분은 비례대표 2번 이석기 당선자의 사퇴 문제다. 한겨레는 “당권파 출신의 비례대표 당선자는 사실상 이석기 당선자 1명인데, 비당권파는 그를 ‘패권주의적으로 당을 운영해온 당권파의 핵심 인물’로 꼽고 있다”고 전했다.

광우병 현지조사단, 조사 아닌 견학단?

광우병 소가 발견된 뒤 한국으로 수입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민관 현지조사단이 현지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나, 이번 조사가 국민들의 의혹을 해소시킬 수준까지 이를 수 있을지 의문이 일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 5면 기사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달 30일(현지시각) 워싱턴에 도착한 조사단은 1일 메릴랜드주의 동식물검역소, 2일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있는 국립수의연구소를 거쳐 3일에는 문제의 소가 광우병에 걸린 것으로 확인된 가공공장 인근의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 도착했다. 사흘 만에 미국 대륙을 횡단할 정도로 숨 쉴 틈 없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사단 활동은 온전히 미 당국에 의존하고 있어 조사가 미국 쪽 설명을 듣고 납득하는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리 일정을 조율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론악화를 막고자 ‘일단 보내고 보자’는 식으로 파견되는 바람에 조사단은 당장 내일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루 전날 갑자기 일정이 바뀌어 비행기 좌석이 부족해 조사단이 두 팀으로 나눠 이동하기도 했다.

조사단 요구를 미국 쪽이 받아 일정이 정해지지만, 미국 쪽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곳을 보여줄 리는 만무하다.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한국 정부는 점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특정 작업장을 점검 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고만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미국 쪽에서 합의하지 않으면 한국 조사단이 독자적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미국 쪽은 숙소 섭외, 이동버스 등 편의를 제공하고, 농무부 직원의 안내 등 친절을 베풀고 있지만 조사가 미국 쪽 의도와 계획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조사단’이 ‘견학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는 구조다. 또 이번 조사 임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광우병 젖소가 살았던 목장을 직접 방문하는 것인데, 성사 여부는 극히 불투명하다. 목장주가 조사단 방문을 거부하고 있지만, 미 당국도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이런 상황 때문인지 조사단과 농림수산식품부는 언론의 접근에 심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농림부는 2일 브리핑에서 “조사단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조사단을) 힘들게 해 조사에 지장을 받고 있다”며 “기자들 때문에 농장 방문 섭외도 더 어렵다”고 말해 사실상 ‘취재 중단’을 호소했다. 한겨레는 이를 두고 “미국 쪽에 끌려가면서 결국 미국 쪽 입장을 다 납득하는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는 조사 모습을 현장에서 낱낱이 지켜보려는 언론을 극도로 부담스러워하며, 신경질적으로 언론을 핑계 대려는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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