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일본 아침드라마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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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일본방송계 얘기부터 시작해보자. 지난 4월 9일 NHK 측은 새 연속TV소설 각본을 쿠도 칸쿠로에 맡겼다고 발표했다. 쿠도는 이른바 신세대 영상언어의 상징과도 같은 각본가다. <이케부쿠로 웨스트 게이트 파크> <키사라즈 캐츠 아이> <유성의 인연> 등 신개념 TV드라마들로 잘 알려졌다. 이런 인물에 고색창연한 아침드라마 각본을 맡긴 것이다.

어째서 이런 결정이 내려진 걸까. 단순하다. <오싱> 등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품들을 다수 내놓은 NHK 연속TV소설은 2004년 이후 명백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 마디로 시대착오적이란 평가였다. 매번 수십 년 전 여성들의 고단한 삶을 다룬다는 콘셉트가 과연 21세기에 맞느냐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 일본 NHK <게게게의 여보> ⓒNHK

그러나 2010년 조용히 시작된 <게게게의 여보>가 흐름을 바꿔놓았다. 요괴만화 <게게게의 키타로> 작가 미즈키 시게로와 그 부인의 삶을 다룬 드라마다. 마지막 회에선 시청률이 23.6%까지 올라 일종의 문화현상으로까지 등극했다. 그 이유를 찾아 나선 NHK 측은, 결국 시청층의 변화에서 답을 찾았다.

아침드라마는 어쩔 수 없이 아침시간대에 여유가 있는 주부계층에 어필하는 구조다. 그런데 새롭게 이 계층에 편입된 30~40대 주부들이 조금 특이한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다. 이전 세대와 달리 젊은층용 대중문화상품에도 여전히 반응하고, 시대유행에도 민감한 추세를 보였다는 것. 결국 당시 블록버스터 영화판이 등장하는 등 젊은 층 관심을 한껏 모으던 <게게게의 키타로> 원작자 부부 얘기라는 점에, 시대유행에 민감한 30~40대 주부들이 몰려들었다는 해석이 대두됐다.

이후부턴 일사천리였다. 시이나 링고 등 젊은 층 인기가수들에 주제곡을 맡겼고, 소재도 패션 디자이너 실화 등 트렌디한 것들을 골랐다. 지난달 2일 방영을 시작한 <우메짱 선생>은 그 결정판에 속한다. 아이돌 스타 호리키타 마키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주제곡 역시 거물 보이그룹 스마프에 맡겼다. <결혼 못하는 남자>를 집필한 오자키 마사야가 각본을 썼다. 그러자 첫 회 시청률이 역대 연속TV소설 사상 두 번째인 18.5%를 기록했다. 해석이 옳았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대망의 쿠도 칸쿠로 드라마가 시동을 걸고 있다.

이제 한국을 돌아보자. 한국에서도 아침드라마 시청률을 내주는 일등공신은 60대 이상 여성층이다. 그런데 그 뒤를 바짝 좇고 있는 이등공신이 바로 40대 여성층이다. 그 다음 삼등공신이 30대 여성층이다. 장기화된 경제 불황으로 해당세대 여성층 다수가 일선에서 일찍 물러난 탓이다. 이 세대는 이전 세대들과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다. 일단 1990년대 X세대, 소위 문화빅뱅 세대들이다. 서태지 세대다. 무라카미 하루키 세대다. 대중문화와 시대유행에 유난히 민감하다는 일본 30~40대 여성층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한국의 아침드라마도 바로 이 세대를 겨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뭘 틀어도 고만고만하게나마 시청률이 잡힌다는 점에 안주하지 말고, 시대와 세대흐름에 밀접하게 다가설 필요가 있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향후 아침드라마 존립을 좌지우지할 미래 주 시청층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요구를 면밀히 연구하고 반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현실적인 미래대책이 된다. 마르고 닳도록 변치 않는 아침시간대, 대범한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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