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KBS 용역 보고서도 “뉴스 불공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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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성 강화 대책으로 방송학회서 실시…비판 내용에 연구진과 ‘마찰’

KBS 뉴스에 대한 공정성 논란이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KBS가 학계에 의뢰한 공정성 연구에서도 ‘일부 보도가 공정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KBS는 당초 ‘공정성 연구’를 올해까지 순차적으로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가 이같은 결과가 나온 이후 해당 연구를 사실상 중단했다.

‘공정성 연구’는 지난해 수신료 인상 논의와 맞물려 KBS가 뉴스 공정성 강화 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것이다. KBS는 지난해 4월 국회 업무보고에서 공정성평가위원회를 설치하고 2010년 한국언론학회에 맡아 진행한 공정성 연구를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에도 순차적으로 맡기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방송학회는 KBS의 발주로 지난해 6월 ‘공영방송의 공정성위원회’를 구성하고 같은해 11월 최종 보고서를 냈다. 하지만 연구 결과는 KBS 기대와는 딴판으로 나왔다.

<PD저널>이 지난 5월 31일 단독 입수한 ‘공영방송의 공정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는 “서민과 소수계층의 입장을 대변하는 뉴스보다는 정치 관련 엘리트의 비중이 높고, 청와대 뉴스에서는 지나치게 대통령이나 청와대에 의존하고 있어 ‘관급기사’성격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KBS 뉴스를 분석했다. △사실성 △다양성 △균형성 측면에서 공정성을 따져본 결과 KBS 뉴스는 상대적으로 사실성과 균형성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 KBS가 한국방송학회에 의뢰한 공영방송 공정성에 관한 연구 보고서. ⒸPD저널
“문제제기 없는 대통령 보도 KBS 뉴스 한계”

보고서는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6주동안 방송 3사 저녁 종합 뉴스를 분석한 결과 KBS <뉴스 9>에서 서민이나 소수계층을 다룬 뉴스 아이템은 전체 뉴스의 2.2%로 방송사별로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지만, 현실에 대한 긍정적인 묘사로 사회적 약자 등의 소수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국민들이 알아야할 정보가 KBS 뉴스에서 상당수 배제됐다고 연구진은 판단했다. 이 기간 동안 MBC  <뉴스데스크>와 SBS <8 뉴스>에서 다룬 아이템 70~80개는 KBS <뉴스 9>에서 보도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 조작’, ‘대학생 등록금 갈등’, ‘집장촌 단속 반대 시위’ 등이다.

보고서는 “뉴스의 선택과 배제는 보도국 게이트키퍼의 고유 권한이지만 이런 뉴스 아이템은 상당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며 ”상대적으로 공공의 문제를 간과한 측면이 있고, 국민이 알아야할 보편적인 뉴스를 전달하는 데에도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또 “KBS의 대통령 보도는 청와대의 메시지와 분위기를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독자적인 문제제기나 논쟁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데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며 “KBS의 대통령 관련 뉴스에서는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이나 평가를 듣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이는 인사구조 등에서 공영방송 KBS가 청와대 권력으로부터 그다지 독립적이고 자유롭지 못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KBS 노동 관련 보도 구조적으로 노측에 불리

균형 보도에 실패한 이슈로는 ‘유성기업 파업’등이 대표적 사례로 제시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유성기업 보도에서 뉴스 주인공은 노측(42.9%), 사측(46.9%)으로 비율을 맞췄지만 인터뷰 숫자에서는 노측(34.6%)보다 사측(42.3%)이 많았다. 또 노측은 투쟁의지의 표현이나 감정적인 언어를 구성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사측의 인터뷰는 파업이 자동차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 논리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질적인 불균형을 드러내고 있다고 연구팀은 주장했다.

보고서는 “형식적인 균형 노력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파업’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이기 보다는 사건이나 사고에 중점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구조적으로 노측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보도 효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 2011년 3월부터 5월까지 매주 2주씩 <KBS 뉴스 9>를 분석한 결과 청와대 뉴스의 취재 경로.ⒸPD저널


KBS 수차례 보고서 수정 요구 …각주로 해명 남겨

당시 이같은 연구결과에 KBS 내부의 반발도 상당했던 것으로 <PD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연구진의 지적을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KBS는 연구진에 수차례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고, 결국 최종 보고서에서는 이례적으로 KBS방송문화연구소와 보도국의 반박이 같이 실렸다. 방송문화연구소는 연구진의 뉴스 분석 기간과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자체 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KBS 공정성 연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교수는 “처음엔 자료가 엉터리라고 수정 요구를 하더니 나중엔 고친 내용이 또 부정확하다고 트집을 잡았다”며 “프리젠테이션을 하는데 ‘학부생에게 코딩을 맡겨서 그렇다’는 인신공격을 해와 연구 과제를 수행하는 동안 상당히 불쾌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BS 방송문화연구소 한 관계자는 “입맛대로 보고서가 나오지 않았다고 부당한 요구를 한 적이 없다”며 “사실 관계가 틀린 부분이 있어 수정을 요청하고, 연구팀도 이를 받아들여 보도본부의 의견을 병행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연구팀에 참여한 교수들의 주장은 다르다. KBS측의 이같은 요구에 교수들의 입에선 “보고서를 수정하면 연구비를 반납하겠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또 다른 교수는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인데 KBS 쪽에서 ‘현장을 모른다’는 이유로 무례한 태도를 보였다”며 “예컨대 (연구진은) 구제역 보도의 경우 농민의 입장을 담은 뉴스만 서민 아이템으로 분류했는데, KBS에서는 정부 입장을 발표한 내용까지 서민 아이템이라고 주장하면서 보고서 내용을 고쳐달라고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언론학회에서 실시한 연구에서는 ‘KBS뉴스가 공정하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우리팀 연구에서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 당황한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연구진의 분석결과는 본문에 그대로 싣되, 각주에 보도국의 의견을 같이 게재한 보고서가 나오게 됐다는 설명이다.  

▲ 보고서에 실린 연구진의 뉴스 분석 결과에 대한 KBS보도국의 의견. ⒸPD저널

 “소통하지 않는 언론사 KBS 걱정”

KBS뉴스 보도의 개선점 도출을 위해 진행된 이 연구는 결국 유야무야됐다.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KBS 업무보고 자료에 따르면 올해 언론정보학회에서 같은 연구를 할 차례이지만, KBS는 외부에 맡기는 ‘공정성 연구’를 더 이상 진행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KBS 방송문화연구소 관계자는 “방송학회의 공정성 연구와 비슷한 시기에 실시한 공정성 체계 연구에서 (공정성 연구) 용역이 불필요하게 많고 패턴도 비슷해서 더 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방송학회의 보고서와 무관하게 올해 공정성과 관련한 연구 용역을 하지 않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KBS가 뉴스 공정성을 높이겠다고 핵심적으로 추진한 ‘뉴스 옴부즈맨’ 제도와 ‘공정성 연구’가 연달아 삐걱거리면서 그 원인으로 비판에 귀 기울이지 않는 KBS의 태도를 지목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공정성 훼손을 이유로 기자들이 파업 중인 상황에서 KBS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신설한 <KBS뉴스 옴부즈맨>은 최근 옴부즈맨 위원들이 집단 사퇴하면서 위기에 몰렸다.

공정성 연구 과제를 수행했던 한 교수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 KBS가 내 뜻대로 말해주는 것만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닌지 걱정 된다”며 “불편하더라도 다른 의견도 경청하는 것이 언론과 언론사의 기본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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