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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회 맞은 EBS ‘시네마 천국‘

EBS <시네마 천국>이 지난 4일 900회를 맞았다. 1994년 3월 첫 문을 연 <시네마 천국>은 조용한 반란이었다. 당시 대중들은 문화에 갈급했다.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 길목에 선 <시네마 천국>은 타르코프스키, 에이젠스타인, 고다르 등 명감독들의 영화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리고 영화 마니아들은 열광했다. ‘시천 마니아’라는 말까지 붙여질 정도였다.

그 후 장장 18년이 흘렀다. 세월이 흐른 만큼 변한 것도 많다. PC통신은 인터넷으로, 비디오테이프는 DVD로, 영화음악 테이프는 음원으로 대체됐다. <시네마 천국>을 통해 소개된 신인 감독 ‘시네키드’들은 현재 국내 영화계를 주름잡는 ‘현역’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처럼 장수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올 수 있었던 <시네마 천국>의 원동력을 살펴본다.

‘시천’은 영화 집합소 = <시네마 천국>은 영화의 ‘다양성’에 주목했다. 900회를 맞은 현재까지도 차별화된 콘텐츠는 유효하다. <시네마 천국>은 상업주의에 치우친 할리우드 영화만 편식하지 않고 유럽 및 아시아 영화를 비롯해 고전·예술 영화 등을 고루 소개해왔다. 예컨대 ‘한국 영화 작가 시리즈’라는 주제로 김기영, 신상옥, 하길종 등 주요 감독들을 재발견하기도 했다.

또 <시네마 천국>에서 한 달에 한 번 단편영화를 소개한 코너는 지금은 종영됐지만 <단편영화극장>(1999)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시청자들은 평소에 찾아보기 힘든 극영화 및 애니메이션 약 200여 편 등을 접할 수 있었다. 김원 문화평론가는 “<시네마 천국>은 영화를 산업적 측면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영화를 삶의 일부로서 ‘영화’ 자체를 다뤄온 프로그램으로선 유일무이하다”고 평했다.

이처럼 <시네마 천국>만의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1995년 도입됐던 ‘초고 작가제’를 꼽을 수 있다. 영화 전문가들이 영화 선정 및 기획 관련 초고를 쓰면 방송 작가들이 대중적인 언어로 다듬었다. 당시 영화평론잡지 <KINO>의 정성일 편집장과 김명준 전 영상미디어센터 소장이 초고작가로 참여해 시청자와의 가교 역할을 했다.

▲ EBS <시네마 천국>에 출연한 봉준호 영화감독 ⓒEBS

  ‘시천’이 배출한 영화인 = <시네마 천국>은 소위 ‘영화 전문학교’라는 평도 받고 있다. 그간 여타 영화 프로그램에 비해 신인 감독과 평론가들의 행보에 주목했다는 것이다. 심영섭과 봉준호. 이름만 들어도 알 법한 이들은 <시네마 천국>에서 발굴된 ‘숨은 보석’들이다.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코너 ‘나도 평론가’로 데뷔했다. 봉준호 영화감독도 매달 한 편씩 단편을 상영하는 코너에서 신인감독으로 출연해 주목받았다.

이와 함께 <시네마 천국>은 마치 영화를 배우는 교실이기도 했다. 이론과 현장을 두루 살피기 때문이다. 예컨대 코너 ‘스태프 24시’에서는 조명 감독 등 스태프의 화려함 뒤에 감춰진 그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가 하면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에서는 롱테이크, 미장센 등 영화적 기법을 소개해 시청자들과 영화학도들의 ‘영화 보는 눈’을 키워주기도 했다.

아울러 역대 ‘시천지기’들을 살펴보더라도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정유성, 이충직, 정재형 등 영화전공 교수를 비롯해 여균동, 변영주, 이해영 감독, 평론가 오동진, 이동진, 영화배우 조용원, 방은진, 추상미, 문소리 등이 자신의 현장 경험과 맞물려 영화계 소식을 감칠맛 나게 전달해왔다.

비하인드 스토리 = <시네마 천국>은 대박 시청률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영화 프로그램 가운데에서도 흥행작 위주 소개 프로그램에 비하면 시청 타깃층이 좁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화를 매개로 시청자와의 교감하는데 관심을 기울였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그래서인지 <시네마 천국>에는 묵은 세월과 함께 소소하고 ‘감성 돋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켜켜이 쌓여있다.

특히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통신 시대로 규정되던 1990년대 당시 영화 마니아층 내에서는 ‘시천붐’이 일어났다. 영화학도들을 비롯해 작가, 일반인 등 열혈 시청자들이 모여 ‘시천방’ 게시판을 개설하는가 하면 고다르의 영화 제목을 본떠 만든 소규모 영화 스터디 그룹 ‘주말’, ‘omnif’ 등이 꾸려지기도 했다.

1995년부터 약 5년 여간 <시네마 천국>을 이끈 이승훈 PD는 당시를 떠올리며 “기왕이면 시청자들로부터 생생한 피드백을 듣고 싶어 오프라인 동호회를 만들었다. 나중엔 400여명까지 늘어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미개봉 무료 영화 시사회를 동호인 대상으로 자주 열곤 했는데 그들 중 다수가 현재 영화 현업에서 뛰고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 EBS <시네마 천국>의 진행을 맡은 가수 김창완, 배우 문소리, 영화감독 이해영, 변영주(시계방향)ⓒEBS

남겨진 숙제= 이처럼 <시네마 천국>은 ‘영화’라는 키워드로 대중문화의 전성기라 불리는 1990년대를 관통해 오늘날까지 자리 매김 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시네마 천국>이 마냥 승승장구만 한 건 아니었다.

<시네마 천국>은 시청률 부침과 들쑥날쑥한 편성도 견뎌내야 했다. 요즘 ‘시천 마니아’들도 심야 편성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이승훈 PD는 “신설 초기 내부에서 폐지 여론이 자주 흘러나왔다”며 “100회, 200회를 찍고 나니 마니아층을 기반 삼아 EBS의 장수 간판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시네마 천국>이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있다. 대중문화를 누릴만한 기회가 적었을 당시에는 <시네마 천국>이 영화 마니아들을 위한 ‘오아시스’ 역할을 해왔다면 최근 들어 영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아졌다. 이에 <시네마 천국>이 발돋움해야 할 시기가 온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연출을 맡고 있는 이상훈 PD는 “<시네마 천국>의 특징은 영화를 ‘파고든다’는 것이다. 이 맥락은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본다”고 밝힌 뒤 “다만 개편을 앞둔 가운데 시청들의 높아진 전문성을 반영하되 대중적으로 관심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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