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청빈거사’ 조무제 前 대법관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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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들어 여러 차례 있었던 각료급 고위인사 인사청문회는 비리 공직자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예외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거의 대다수의 후보자들이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탈세, 논문 표절, 본인이나 자녀의 병역문제 등에 연루돼 빈축을 샀다. 마치 그런 사람들을 일부러 뽑기라도 한 듯이 비리인사 일색이었다. 오죽하면 3관왕, 4관왕 얘기까지 나왔겠는가.

행정부 쪽은 그렇다고 쳐도 그래도 그나마 사법부는 덜 할 걸로 여겨져 왔다. 법관에 대한 일반의 별다른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요며칠 국회에서 진행된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그런 기대는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한 마디로 그간 봐왔던 비리 공직자들의 양태와 별반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논란이 일고 있는 두 사람만 예로 들어 보자. 검찰 출신인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농지법 위반, 아들의 공익근무 특혜 배정 의혹, 저축은행 수사 개입의혹 등 이른바 4관왕을 거뜬히(?) 달성했다.

또 한 사람 김신 후보자는 종교(기독교) 편향 논란과 부산저축은행 배임혐의 무죄판결, 그리고 친재벌적 성향이 도마에 올랐다. 김병화 후보자가 ‘비리 백화점’이라면, 김신 후보자는 법관에게는 목숨과도 같은 형평성 문제에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런 사람들이 대법관이 돼 판결을 내린다면 국민들이 그 판결을 쉬 승복하겠는가? 그리고 법원의 최고봉인 대법원의 권위는 또 제대로 설 수 있겠는가?

이번 대법관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우선 ‘법조 삼성(三聖)’이 그들로 전주 시내 덕진공원에 이들의 좌상이 있다. 전북 출신의 훌륭한 법조인 3인의 삶을 기려 1999년 11월 건립됐는데, 이 지역에서는 이들을 ‘법조 3성(三聖)’이라고 부른다.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전북 순창), ‘사도(使徒) 법관’으로 불린 김홍섭(전북 김제) 전 대법원 판사, ‘대쪽검사’로 불린 최대교(전북 익산) 전 서울고검장 등이 그 주인공이다.

또 한 사람은 2004년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개업 대신 모교인 동아대 법대 석좌교수로 강단에 선 조무제 전 대법관이다. 세상 사람들은 조 전 대법관을 흔히 ‘청빈거사’ 혹은 ‘딸깍발이 판사’라고 부른다. 역대 그 많은 대법원장은 기억하지 못해도 조 전 대법관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다. 그는 작게는 사법부의 자랑이요, 크게는 우리 공직사회의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조 전 대법관은 ‘청빈 법관’으로 소문나 있다. 공직자 재산등록이 처음 실시된 1993년 당시 그의 재산은 총 6434만원으로 부산 동래에 있는 25평짜리 아파트 한 채와 부인 명의의 예금 1075만 원이 전부였다. 당시 차관급인 고법 부장판사 이상의 평균 재산이 12억 원이었으니 그는 당연히 ‘영광의 꼴찌’를 차지했다. 1998년 대법관에 임명될 당시 신고한 재산이 7200만 원이었는데 당시 대법관들의 평균 재산은 15억 원이었다.

그는 사소한 ‘성의’조차도 멀리하였다. 당시만 해도 임지를 옮기는 법관에게 직원들이 모아 주는 전별금은 법원 내의 오랜 관행이었는데 그는 이마저도 우편환으로 되돌려 보내곤 했다. 부산지법원장 시절에는 자신의 판공비를 총무과장에게 맡겨 직원들의 경조사비 등으로 쓰게 했다. 이런 그이고 보니 청탁은 일체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부산-경남지역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조무제에게 청탁할 바에는 돌부처에게 비는 것이 낫다’는 말이 널리 회자되었다.

▲ 정운현 ‘진실의 길’ 편집장
비단 청렴결백한 것만이 아니었다. 조 전 대법관은 공평무사한 판결로도 유명했다. 그는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그 누구, 그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사소한 청탁은 물론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독한 법관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2004년 8월, 34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면서 그는 퇴임식에서 “법관은 재판을 할 때 외부상황에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는 “이해관계에 얽힌 주변으로부터 초연하려면 고독함이 따르기 마련이나 법관은 고독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 대법관으로 조무제 전 대법관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 ‘꿈’은 정녕 꿈으로만 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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