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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원, 투, 쓰리를 날린다

[PD의 사생활⑮] 7년 째 권투하는 이용재 아리랑국제방송 PD 방연주 기자l승인2012.07.20 10: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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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투, 쓰리’ 재빠른 손놀림과 날쌘 발놀림. 권투 체육관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거울을 보며 쉼 없이 뛰는 이들의 열기로 후끈했다. 강풍으로 틀어놓은 대형 선풍기는 무용지물이었다. 체육관 한 쪽에 마련된 링 위에서 한 남자가 연신 주먹을 날렸다. 3분의 끝을 알리는 1라운드 벨이 울렸다. 그새 땀범벅이 된 이 PD는 2라운드의 시작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다시 주먹을 날리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한 권투를 7년째 하고 있는 이용재 아리랑국제방송 PD는 매주 세 번 이렇게 권투체육관을 찾는다. “권투야말로 인생이 축소판으로 표현되는 운동”이라며 권투에서 삶을 배우고 있는 이용재 PD를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동 아리랑국제방송 사옥에서 만났다.

권투에 입문하기 전 이용재 PD는 2003년부터 2년간 아리랑국제방송의 노조위원장을 맡았다. 2005년 임기를 마치고 나니 몸도 정신도 성하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이 PD는 “이래저래 술과 담배를 많이 하다 보니 마른 체형에 배만 나오기 시작하더라”며 주변에서 손쉽게 할 만한 운동을 물색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 PD는 호기심 삼아 권투를 시작했다는 동료의 손에 이끌러 엉겁결에 체육관으로 따라 나섰다. 이처럼 권투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그는 나름 거친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권투’를 시작했다고 해서 거창하게 무얼 하겠다는 기대는 애당초 없었다고 한다. “회사 근처에 때마침 체육관이 있었고, 비용 부담도 적은 게 권투였죠. 여차저차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까 잘할 줄 아는 운동이 없더라고요. 어차피 챔피언을 할 것도 아닌데 그저 줄넘기라도 잘해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권투를 시작했죠.”(웃음)

   
▲ 이용재 아리랑국제방송 PD ⓒPD저널

이 PD는 주 3일 하루 1시간 체육관에서 구슬땀을 흘린다. 체육관에는 3분의 라운드와 30초의 휴식을 알리는 라운드벨이 끊임없이 울렸다. 이 PD는 우선 맨손체조로 근육을 풀어준 다음 줄넘기로 몸의 온도를 높인다. 몸에 점점 열이 나기 시작하면 주먹을 날리고, 피하는 쉐도우 복싱을 한다. 이어 권투장갑을 끼고 샌드백을 치고 난 뒤 바벨을 드는 등 근육운동으로 마무리하는 게 권투 훈련의 사이클이다.

막상 권투를 시작하고선 어렵지 않았냐는 질문에 이 PD는 “워낙 자주 쓰지 않던 근육을 쓰니까 몸이 쑤시고 아팠다. 펀치를 날리는 포즈를 연습할 때엔 늘 관장님에게 ‘뭔가 어색하지 않냐’고 묻곤 했다”며 “그럼에도 일정 기간 숙제한다는 기분으로 체육관을 다니다 보니 조금씩 나만이 느끼는 재미도 생기고 스스로 분발할 수 있는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처럼 시작은 취미였지만 흐른 시간만큼 훈련량이 차곡차곡 쌓였을 때쯤 이 PD는 아마추어로서 링 위를 오른 적이 있다. 한국권투인협회(KBI)가 주관하는 전국생활체육복싱대회에 네 차례 출전해 두 번 이기는 등 의외로 선전했다. 이 PD는 “대회를 앞두고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링 위에서 엄청 깨지진 않을까’, ‘망신당하진 않을까’ 등 잡념이 많아진 만큼 정말 도전자의 자세로 열심히 운동했다”고 전했다.

이 PD는 또 당시 대회를 떠올리며 “링 위에서의 2분은 정말 길었다. 생명부지의 사람과 싸우다가 끝이 났을 땐 정말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후련했다. 소위 인생의 무대를 링으로 비유하곤 하는데 진짜 권투를 하면 할수록 겸손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 PD가 바라보는 권투는 어떤 운동일까. 그는 “사람이 무기나 기구를 이용하지 않고 맨 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 가운데 본능에 가장 가까운 운동”이라고 말했다. 또 “상대와 맞붙지만 그 전까지는 끊임없이 자신과 맞붙는 운동”이라고 정의 내리기도 했다. “권투는 반복운동이에요. 자전거 탈 줄 아는 사람이 오랜만에 타도 탈 수 있는 것처럼 운동 기억이 있는 거죠. 선수들이 본능적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걸 보면 얼마나 고된 연습의 산물일지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이처럼 이 PD가 7년 가까이 체육관을 들락날락하다보니 상대의 ‘주먹 놀림’만 봐도 어느 정도 전력을 가늠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링 위에서 상대와 주먹이 오가는 합을 두세 번 맞춰 보면 대충 감이 잡히더라고요. 상대가 링의 저 맞은편에서 주먹을 날리며 뛰어나올 때의 경쾌한 발놀림만 봐도 그 연습량이 어느 정도 였는지 그대로 보인다고 할까요.”(웃음)

   
▲ 이용재 PD가 권투체육관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PD저널

이 PD는 인터뷰 내내 기자에게 권투가 운동으로 좋다며 추천했다. 이 PD는 “최단시간에 운동량이 많아 힘들긴 하지만 스트레스가 풀려서 좋다. 간혹 좀 밉다 싶은 사람을 생각하며 샌드백을 치는 것도 효과 만점”이라고 밝힌 뒤 “그만큼 중독성이 강한 운동이기도 하고 인생을 살면서 정신적인 측면에서 마인드 컨트롤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 PD는 인터뷰 말미에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는 일화로 유명한 세계적인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에 대한 일화를 자연스레 꺼내기도 했다. 그는 알리가 “스포츠를 예술로 승화시킨 인물”이라고 말했다. “알리의 별명이 ‘떠버리 알리’였거든요. 시합 전에 상대를 향해 ‘널 5라운드만에 끝내겠다’ 등 소리치며 상대와 기 싸움을 벌이는 거죠. 신기한 건 알리의 떠벌림이 현실이 된 시합이 많았다는 거죠.”

이 PD의 말마따나 링 위에서 알리의 떠벌림은 스스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벼랑 끝으로 내몰 정도로 ‘죽기 살기로 해야 한다’는 헝그리 정신이 있었고, 그 밑바탕에는 고된 연습량이 쌓여있었음을 몸소 시합의 결과로서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쯤되니 권투는 그야말로 인생의 축소판으로 표현될 수 있는 운동인 셈이다. “깔끔한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좋겠지만 체육관에서 땀 흘리며 권투하는데도 나름의 향수를 자극시키는 것 같아요. 무엇보다 여러 운동 가운데 권투야말로 인생의 스토리가 담긴 운동이 아닐까 싶습니다.”(웃음)


방연주 기자  nalav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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