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지분 매각 끝은 MBC 민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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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 몰린 김재철의 '마지막 카드'…“선거 국면 노린 의도된 계산”

사실 MBC 민영화는 이명박 정권 출범 이전부터 계획됐던 내용이다. 때문에 현 정권 출범 직후부터 최시중 당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위원장 등은 이른바 ‘정명론’을 앞세우며 MBC로 하여금 선택을 압박해 왔다. 하지만 특보 출신 등 대통령과 친분을 자랑하는 사장들이 공영방송을 장악하고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친(親)정부 성향 신문들이 방송(종합편성채널)을 손에 넣으며 MBC 민영화 논의는 사실상 종료된 듯 보였다. 그런데 현 정권의 임기 말, 지분 하나 없는 MBC 경영진이 민영화를 전제로 한 지분구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어떤 맥락 속에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지에 대한 의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 정수장학회의 MBC 지분 처분 계획이 담긴 비밀회의 대화록에 MBC 간부의 개입 사실이 알려지자 MBC노조가 지난 15일 경영회의가 열린 회의실 앞에서 경영진을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MBC노조

■사면초가 김재철 ‘국면 전환용’?= MBC 사측의 공식 입장은 “정치권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현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민영화를 포함한 거버넌스 개선 문제를 1~2년 전부터 논의해 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송계 안팎에선 MBC 사측의 일련의 논의는 공영방송 MBC를 재벌 등 자본 권력의 통제 하에 놓아두려는, 현 정권의 오래된 MBC 사영화 의도와 궤를 같이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집권 1년차였던 지난 2008년 12월 19일 최시중 당시 방통위원장은 MBC의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이하 방문진)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공영방송과 민영방송, 과연 MBC의 정명은 무엇이냐”며 어느 한 쪽을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현 정권과 여당은 앞서 두 번의 대선(1997년, 2002년)에서 패배한 원인을 지상파 방송, 특히 공영방송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한 데서 찾았다. 때문에 2007년 대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MBC와 KBS 2TV 민영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며 방송법 개정과 국가기간방송법 제정 등을 검토했다.

특히 현 정권 초기 MBC <PD수첩> ‘광우병’ 편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공영방송의 시사 프로그램들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책무로 하는 저널리즘의 속성에 가장 부합하는 시사 프로그램의 제작·편성에 상대적으로 힘을 쏟는 공영방송을 민영화시키려는 움직임은 더욱 가속화했다.

지난 2009년 8월 김우룡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 취임 후 곧바로 19개 지역MBC 매각→매각대금으로 정수장학회 지분(30%) 인수→방문진 주식(70%)을 일반 국민과 우리사주조합에 매각하는 등의 3단계 민영화 방안을 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일련의 논의는 MBC 구성원들과 언론·시민단체, 야권의 반발로 이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2009년 7월 여당이 위법 논란 속에 일방 처리한 방송법 등 개정안으로 친정부 성향 신문들이 방송을 소유하게 되고, 대통령 특보 출신 등의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 내부를 장악해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는 언론인들이 발을 붙일 자리가 좁아진 것도 정권으로 하여금 공영방송 민영화에 대한 생각을 덜게 만든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런 상황에서 MBC 사측이 뒤늦게 정수장학회가 보유 지분 매각 등 사실상 MBC 민영화로 해석되는 논의를 진행하는, 생뚱맞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민영화, 대선 결과 떠나 여당에 유리= <한겨레>가 10월 15일자 신문 4~5면에서 공개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MBC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간의 비밀회동 대화록(10월 8일)에 따르면, MBC는 먼저 MBC를 주식시장에 상장, 정수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는 MBC 지분 30%를 상장 물량으로 내놔 처분하는 방안을 주요하게 검토 중이다.

MBC 사측은 현재 MBC의 기업 가치를 2조원 정도로 산정하고 있는데, 정수장학회 지분 30%를 상장 물량으로 내놓은 뒤 추가로 4000억원 규모의 신주 발행을 통해 총 1조원 정도의 물량을 시장에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지분의 42% 정도가 일반인, 또는 신문·대기업 연합(현행 방송법은 신문·대기업은 지상파 지분 10%까지 소유 가능)에게 넘어가게 된다. MBC 사측은 일반 국민에게 지분을 넘기는 형태를 선호하고 있다.

문제는 MBC의 지분을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MBC 경영진이 대주주인 방문진의 지분율까지 낮추는(70%→58%) 내용의 지분 구조 변화를 비밀리에 마음대로 꾀하고 있다는 점이다. 방송·언론계 안팎에선 낙하산 사장으로 퇴진 압박을 받고 있는 김재철 MBC 사장이 ‘국면 돌파용’으로 MBC 민영화를 전제로 한 지분구조 변화를 추진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한국언론정보학회장)는 MBC가 민영화 논의를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사실이 대외적으로 알려진 직후 “대주주인 방문진에 의해 사장으로 임명된, 다시 말해 민영화를 거론할 위치에 있지 않은 사장이 민영화 논의를 수면 위에 올리는 것은 결국 초점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 아니겠냐”고 말했다.

올해 상반기 100일 이상 진행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이하 MBC노조)의 파업 이후 방문진 이사회에서 자신의 거취 문제가 공론화되고, 대선을 앞둔 여권에서조차 김 사장의 존재를 부담스러워 하자, 여당의 대선 후보인 박근혜 후보와 여권 모두가 장기적으로 원하는 내용(MBC 민영화)으로 ‘국면 돌파용’의 선택을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화록에 따르면 최 이사장은 정수장학회가 소유하고 있는 언론사 지분을 매각해 부산·경남 지역의 복지 확대용으로 쓰겠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부산·경남지역이 대선의 최대 격전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사실상 최 이사장과 MBC 사측이 선거에 개입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배경이다.

박근혜 후보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을 팔아) 지역발전을 위해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그것을 가지고 야당이나 저나 법인에 이래라 저래라 할 권한은 없다”며 선을 긋는 반응을 보인 것을 두고 언론들이 “‘계속 추진하라’는 뜻으로 들린다”(10월 16일 <경향신문> 31면 사설)는 해석을 내놓은 이유다.

반면 MBC 사측은 지난 15일 <뉴스데스크> 3번째 리포트에서 “최 이사장은 당초 <부산일보>를 판 돈으로 부산·경남지역 대학생들에게 반값 등록금을 줄까 했었다고 했으나, MBC 지분도 팔게 되면 전국대학생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전원에게 반값등록금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며 “(언론과 야당이) 교묘한 왜곡으로 지역주의를 조장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여당 대선 후보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공영방송의 정부 비판 기능에 재갈을 물리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전하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MBC 사측이 주도하는 작금의 민영화 논의와 관련해 “정권의 방송장악과 언론자유 탄압에 MBC 노조원들이 굴하지 않고 저항하자 아예 MBC를 매각해 자본의 지배하에 묶어 재갈을 물리겠다는 수작”이라고 비판했다.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는 “MBC가 민영화 돼 재벌의 영향력 하에 놓일 경우 공영 언론으로서의 모습을 주장하는 노조 활동은 물론, 권력을 비판하는 언론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노력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국내외의 많은 언론들이 이런 현실을 이미 보이고 있지 않냐”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MBC 사측이 꺼내든 지금의 민영화 논의는 여당에게 있어 대선 승리 여부를 떠나 앞으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나쁠 게 없는 카드”라며 “공영방송 중심의 방송 환경이 민영방송의 공영성도 담보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결국 작금의 논의는 방송의 미래를 김재철의 현재의 안위와 맞바꾸자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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