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우리시대의 ‘돌발영웅’ 노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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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시대의 '돌발영웅' 노종면, 그가 없었다면 YTN 파업도 없었을 것이고, YTN 파업이 없었다면 MBC 파업도, KBS 파업도, 연합뉴스 파업도, 국민일보 파업도 부산일보 파업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파업이 없었다면 우리 언론은 정권에 장악되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에 대한 언론인들의 ‘낙동강전선’은 노종면에서 비롯되었다, 라고 말해도 그리 과장은 아닐 것이다.

▲ 노종면 YTN 해직기자 ⓒ언론노조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의 책 <노종면의 돌파>를 보고 YTN 파업의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나는 보았으므로 안다. 대의명분과 기회주의 사이에서 위험한 줄타기를 하던 YTN 노조의 ‘낙하산 사장 반대운동’은 그가 노조위원장에 취임하면서 진용을 갖췄다. 단지 낙하산 사장이 거치는 다소 거친 통과의례 정도가 될 수 있는 상황이 그를 계기로 진정성 있는 언론자유운동으로 거듭났다.

지는 줄 알면서 싸우는 싸움을 진정성 있게 싸우기는 쉽지 않다. 노조위원장으로서 그는 용감했고 지혜로웠고 그리고 조직원들을 포용할 덕을 갖추고 있었다. 용장과 지장의 덕장의 모습을 모두 구현한 그는 굳건한 언론장악의 벽을 돌파했다. 그는 꼭 필요한 때에 꼭 필요한 역할을 하고 불필요하게 박해받았다. 이명박 정권 언론인 구속 1호였던 그는 동료 5인과 함께 해직 언론인이 되었다.

노종면 이후 수많은 노종면이 등장했다. 덕분에 언론인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가장 많은 핍박을 받은 직업이 되었다. 수십 명의 언론인이 해직되었으며 수백 명의 언론인이 징계를 당했다. 무너진 상식을 그들은 몸으로 버텼다. 판사들이, 검사들이, 관료들이, 교수들이 권력에 굴종할 때 언론인들은 상식의 ‘낙동강전선’을 지켜냈다. 그들과 동시대의 언론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

권력을 향해 날아든 노종면이라는 이카루스의 날개는 종이비행기였다. 처음 그를 보았을 때 그는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YTN 메인뉴스 앵커였던 그는 낙하산 사장 취임에 반대하며 노조 사무실에 쪼그리고 앉아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그렇게, 가장 작은 역할부터 시작한 그는 곧 노조의 주축이 되어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을 전개했다.

정말 깨알같은 투쟁이었다. 회사 측에서 출입을 막자 동료들과 가면을 쓰고 나타나기도 했고, 뉴스화면에 공정방송 표식을 노출하기도 하고 공정방송 로고를 박기도 했다. 자유 언론의 죽음을 의미하며 검은 정장을 입는 ‘블랙투쟁’에는 YTN 뿐만아니라 다른 방송사 앵커와 기자들도 동참해 주었다. ‘더운데 무슨 촛불집회냐, 부채집회 하자’며 어느 독지가의 도움으로 부채 100개를 선물하며 필자도 이 유쾌한 투쟁에 동참했던 적이 있다.

노조위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그는 종이비행기를 계속 접었다. 그가 혼자 종이비행기를 접은 곳은 트위터였다. 용가리통뼈뉴스(@yotonews)라는 계정을 만들고 ‘공갈뉴스 추방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진실을 덮는 공갈뉴스를 까발리는 역할을,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묵묵히 수행했다.

기록은 기억의 어머니다. <노종면의 돌파>는 정상적인 방송이 권력에 의해 어떻게 무너졌는지, 그리고 노종면과 그의 동료들이 그것을 막기 위해 어떻게 싸워왔는지를 생생히 증거한다. 노조와 대치중인 구본홍 사장이 담배를 피우다 재떨이를 찾자 손바닥을 모아서 재를 털라고 내민 YTN 간부의 비굴한 모습부터 노조원 한명 한명이 어떻게 싸우며 그 ‘개와 늑대의 시간’을 버텼는지 낱낱이 기록했다.

주목할 것은 기록의 방식이다. 그는 그 암울한 나날들을 버티게 했던 조그만 웃음들을 복원해냈다.

▲ 고재열 시사IN 문화팀장
사측의 행태가 너무 재미있어서 혹은 너무 어이없어서 웃었던 순간들을 기억해냈다. 우울한 과거를 즐겁게 기억해낼 수 있는 사람만이 미래를 낙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기억해 낸 그 웃음들은 그가 자신의 미래와 YTN의 미래와 한국 언론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인은 시대를 기록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제 스스로 시대의 증인이 되었다. 그들은 다시 시대를 기록하는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아갈 수 있을까. 대선이 아마 그들이 걸었던 험난한 여정의 결승점이 될 것이다. 대선 결과가 잘못되어 대선이 반환점이 되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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