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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기자들이 본 SBS ‘드라마의 제왕’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5일부터 첫 방송을 시작한 SBS <드라마의 제왕>은 치열한 드라마 세계를 그린다. 특히 시청률 지상주의, 간접광고(PPL), 편성경쟁, 열악한 제작환경 등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까지 드러내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일선 PD와 작가들 사이에서도 <드라마의 제왕>은 화젯거리다. 앤서니 김(김명민 분)이 이끄는 ‘드라마의 왕국’과 드라마PD·작가들이 전하는 ‘드라마의 현실’의 차이는 무얼까.

■ 제작비 상승…피할 수 없는 ‘간접광고’= 드라마 제작사 대표인 앤서니 김은 ‘흥행불패 신화’다. 앤서니 김은 간접광고(PPL)를 위해 ‘대본 칼질’을 망설이지 않는다. 그는 메인작가 정홍주(서주희 분) 몰래 보조작가 이고은(정려원 분)을 속여 드라마 속 주인공이 협찬사의 ‘오렌지주스’를 마시며 자살하도록 대본을 수정하게끔 한다.

<드라마의 제왕>의 웃지 못할 ‘간접광고’ 에피소드는 실제 드라마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MBC <더킹 투하츠>에서 이재하(이승기 분)는 던킨도너츠의 친숙한 광고문구인 “도넛은 커피랑 같이 따뜻하게 먹어야지”라고 말하는가 하면 지펠 냉장고 앞에서 키스한다. 또 SBS <유령>에서 유강미(이연희 분)가 동료로부터 화장품을 선물로 받는 장면에서는 주인공 이연희가 전속모델로 활동 중인 브랜드 SK II가 등장한다.

▲ SBS <드라마의 제왕>에서 앤서니 김 역할을 맡은 배우 김명민. ⓒSBS

특정상품을 노출시키는 간접광고가 허용된 지 3년(2010년 1월 시행)이 된 이래 지금은 간접광고 없이 드라마를 제작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요소가 됐다. 갈수록 치솟는 제작비 부담을 간접광고로 줄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서 휴대폰, 음료, 등산의류 등 간접광고의 잦은 노출은 시청자들이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드라마의 제왕>에서 드라마 메인작가 정홍주가 간접광고 삽입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대본을 고집했듯이 실제로 드라마를 집필하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간접광고에 대한 고민은 적지 않다. 간접광고를 자연스럽게 작품에 녹여내기 위한 작가들은 창작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여인의 향기>, <닥터챔프> 등을 집필한 노지설 작가는 “제작비가 상승한데다 드라마로 적정한 수익을 내야 하다 보니 간접광고를 잘 소화해보려 해도 실제로 드라마에 녹여내는 일은 만만치 않다”라며 “오히려 스토리를 수정하는 일보다 광고주의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맞추느라 간접광고 장면만 수차례 수정하기도 한다”라고 토로했다.

■ 생방송 드라마…작금의 현실 반영= 앤서니 김은 ‘승률주의자’다. 드라마 29편 가운데 23편을 흥행시켰다. 덕분에 그는 승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퀵서비스 기사에게 세 시간 거리를 한 시간 만에 달려 촬영 테이프를 방송사에 전달하면 1000만원을 주겠다는 제안을 할 수 있는 건 드라마 속 앤서니 김이기에 가능했다.

앤서니 김의 위험한 제안은 극적 묘사를 위한 장치이지만 실제 상황을 견줘보면 일주일에 영화 한 편 분량을 촬영해야 하는 열악한 제작환경의 일면이 담겨있다. 시청률을 쫓고, 시간에 쫓기며 드라마를 제작하다 보면 ‘벼랑 끝 선택’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촉박한 제작 일정은 방송사고로 이어졌다. KBS <적도의 남자>는 <드라마의 제왕> 속 에피소드처럼 빠듯한 일정으로 촬영 테이프를 제때 건네지 못하자 방송 도중 화면이 일시 정지했다. 또 SBS <싸인>은 마지막회 방송 도중에 오디오가 나오지 않는가 하면 조정화면이 뜨는 등 방송에 차질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는 열악한 제작 현실에 쫓겨 방송을 내보내기 급급한 한국 드라마의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패션왕>을 연출한 이명우 PD는 “드라마에서 택배기사의 죽음으로 극적으로 묘사됐지만 실제로 촬영 테이프를 매우 급하게 넘기는 일들은 전혀 근거 없는 일이 아니”라며 “실제 제작 현장의 느낌이 충분히 살아있다”라고 말했다.

김원 문화평론가도 “영화계에 비하면 드라마 제작은 살인적인 스케줄”이라며 “PD, 배우, 작가들이 방송시간을 맞추는데 압박이 크다는 사실은 이미 다 알려져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드라마 제작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는 게 중론이지만 과거에 비하면 차츰 개선되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 <무신>을 연출한 김진민 PD는 “제작환경은 이미 오래전부터 어려웠다”라며 “그나마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해주는 관련 법안들이 만들어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 SBS <드라마의 제왕>에서 이고은 역할을 맡은 배우 정려원. ⓒSBS

■ ‘약육강식’…소리 없는 편성전쟁= 앤서니 김은 편성권을 따내기 위해 쟁탈전을 벌인다. 그는 이고은의 작품 <경성의 아침>으로 투자와 방송편성을 따냈으면서도 드라마국장이 경력 작가로 교체를 요구하자 망설임 없이 이고은을 내친다. 또 편성확인서를 받아내기 위해선 뇌물까지 총동원한다.

이처럼 앤서니 김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편성 경쟁의 치열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49일>, <검사 프린세스>를 쓰고, 현재는 <내 딸 서영이>를 집필하고 있는 소현경 작가는 “경력이나 작가의 네임밸류가 있으면 (편성되는 게) 쉽다고들 하는데 그렇다고 (편성을) 장담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노지설 작가도 “요즘은 신인이나 기성작가나 편성을 따내는 건 쉽지 않다. 방송매체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전에 비해 한 자리를 놓고 여러 사람이 경쟁하는 시스템이 더욱 공고해져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더구나 신생 드라마 제작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편성 경쟁을 가열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현경 작가는 “십년 전만 해도 편성되면 고스란히 방송이 나갔는데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신생 제작사와 작가들이 많아져 방송사의 입장에서도 편성에서 고려해야할 변수가 많아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드라마 속 편성 전쟁을 둘러싼 다소 과장된 장치로 자칫 시청자들에게 현업 종사자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명우 PD는 “시청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일부 극화된 부분이 현업 종사자들의 특성인 것처럼 굳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드라마의 제왕>은 드라마의 화려함 속에 가려진 이면을 들춰낸다. 실제로 한국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녹록치 않은 현실에 기댄 <드라마의 제왕>이 앞으로 얼마나 더 드라마 왕국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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