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증거’가 될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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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MBC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 4개월 무엇을 남겼나

MBC <PD수첩>이 방송을 멈춘 지 11개월을 넘어섰다. 지난 7월 말 땡볕이 내리쬐는 여름. <PD수첩> 작가 6명은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들은 펜을 내려놓고 길거리로 나섰다. 촛불을 들었고, ‘천막농성’에서 새우잠을 청했다. 칼바람이 부는 겨울이 성큼 다가왔지만 작가들이 처한 상황은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시용 PD와 대체작가로 꾸려진 <PD수첩>이 오는 11일 방송을 재개한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PD수첩>에 몸담아온 작가들이나 <PD수첩>을 곁에서 쭉 지켜본 작가들이나 답답한 심경은 매한가지다. <PD저널>은 지난 11월 26일 저녁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PD수첩> 해고 작가 및 시사교양작가와의 좌담회를 열어<PD수첩> 작가 해고 사태에 대한 속내를 들어봤다.

사회: 해고된 지 넉 달 째다.

정재홍: 넉 달됐는데 한 40년 전에 있었던 일 같다.

장형운: 천막농성을 접은 지도 한 달됐는데 이조차 몇 년 전 일처럼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올해 한 방송이 없다. 방송을 준비하던 중 (MBC노조가) 파업에 들어갔고, 파업이 끝날 무렵에는 ‘분위기 쇄신’을 이유로 해고됐다. 2012년은 작가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헛되게 보내진 않았다고 여기지만 작가 장형운으로서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허망한 1년이다.

최경: 작가협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며 싸웠다. (시사교양작가들은) 작가협회에 빚을 많이 졌다. 지난 2009년 검찰이 <PD수첩> 작가의 이메일을 감청했을 때 외에는 거리로 나가본 적이 없었는데 사태가 터지자마자 장르 불문하고 원로 작가들까지 나서주셨다. 방송작가로서의 자존감이 훼손을 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 정재홍(좌), 장형운(우) 전 작가. ⓒPD저널

사회: 개인적인 어려움도 클 것 같다.

장형운: 2012년 한 해 동안 거의 일을 못했다. 가장인 선배나 자취하는 친구나 다들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더구나 싸움이 끝난 게 아니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작가로서 일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당연히 이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일이라 여겨 함부로 다른 프로그램을 해야겠다는 마음도 생기지 않고 있다.

정재홍: 작가들은 원칙적이다. (해고 작가들끼리) 일을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얘기를 많이 했는데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이 대리 운전 하듯이 먹고는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설득했다.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에 정규 프로그램에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겠나 싶어 대신 아르바이트라도 하자고 했다. 당분간 어렵겠지만 돌잔치 비디오 대본을 쓰더라도 견뎌내자는 심정이다.

최경: 돌 비디오 이야길 들으니 마음이 아프다. (정 작가는) 대출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다고 들었다. 아무도 청렴결백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털어서 먼지가 날까봐 그렇게까지 했다는 거다. 세상에 빛이 되고자 하는 자부심으로 작가 일을 해온 건데 색깔론으로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상황을 보면 울화가 치민다.

“해고 사태는 방송작가 향한 모욕”

사회: 타사 시사교양작가들은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 이후 지난 4개월을 어떻게 바라보나.

최미혜: KBS에서 일하는 작가들은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가 벌어졌을 때 자발적으로 많이 참여했다.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정치적 의도에 의해 내쳐진 거고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MBC에서 십원 한 장 받은 적 없는데 생계를 뒤로할 만큼 (<PD수첩> 사태와 관련해) 많은 일을 했다. 도대체 김재철 사장은 내게 왜 이렇게 많이 일을 시키는 지. 도망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고, (해고자들 앞에서) 감히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다.

최경: 지난 8월 선·후배 작가들이 땡볕에 앉아 싸우는 모습에 굉장히 놀랐다. 시사교양 작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로서 모욕감을 느낀 사태였기 때문에 장르 불문하고 작가들이 모인 것 같다. 그러나 넉 달이 흘렀는데도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방문진 이사회가 소집되거나 국정감사, 정치권의 발언 등을 지켜보며 해결될 수 있을까 기대감을 가졌는데 매번 꺾이니까 과연 도대체 우리가 무얼 한 건지 무력감이 크다.

정재홍: 천막농성 벌일 때 KBS 라디오 작가 23명이 방문하기도 했다. 라디오 작가들은 데일리 프로그램인데다 시간대별로 진행하다보니 20명이 모이기 어렵다는데 봉투를 들고 오셨더라. KBS PD들도 찾아와 격려해주셨다. 제작 거부 중인 <PD수첩> 제작진에게도 굉장히 고맙다.

사회: 그럼에도 <PD수첩>이 대체작가 모집 공고를 냈다. 공고를 냈을 때만 해도 ‘과연 뽑힐까’ 의구심이 많았을 텐데 우려가 현실화됐다.

정재홍: 열심히 일한 작가들은 파리 목숨처럼 하루 만에 해고됐다. 막노동판에서도 그렇게는 안한다. 방송작가가 직업으로서 생존할 수 있느냐가 시험대에 올랐다. 당시 방송작가의 직업을 모욕하고 언론 탄압에 일조한다는 생각에 방송작가협회가 나섰고 작가 922명도 그 자리(대체작가)에 가면 안 된다고 서명한 거다. 그 자리에 갈 작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결국 갔다. 우리가 얘기한 부분에 대해서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방송작가(공통의 문제)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최미혜: 역설적이게도 <PD수첩>이 계속 불방되다 대체작가를 구하고 나서야 방송을 재개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은 작가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PD수첩> 사태를 지켜보면서 작가들이 최초의 경험들을 정말 많이 하고 있다.

▲ 최경 전 방송4사구성다큐연구회장(좌), 최미혜 현 방송4사구성다큐연구회장(우).ⓒPD저널

‘PD수첩’ 방송재개…무늬만 정상화

사회: 대체작가가 투입된 <PD수첩>이 방송 재개를 앞두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으로서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우려는. KBS <추적 60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등 시사프로그램의 정통성은 한 번에 이뤄지는 게 아니다. <PD수첩>도 오랜 기간 쌓아올린 전통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장형운: 방송 재개 첫 아이템이 ‘고독사’인 것으로 알고 있다. ‘고독사’는 당연히 해야 할 문제이지만 대선을 앞둔 시점에 굵직한 이슈가 많은데도 어떤 기준으로 이 아이템을 선정했는지 의문스럽다. 또 제작 일정을 보면 시사프로그램이 나올 수 없는 일정이다. 시용PD 2명씩 짝지어 첫 주와 둘째 주 방송분을 맡고, 이후 4주에 한 번꼴로 제작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작가는 대본을 찍어내기에 바쁠 것이다. <PD수첩> 방송의 정상화를 위한 날짜를 박아놓았을 뿐 프로그램의 질은 안 봐도 뻔하다. 과연 방송 재개만으로 정상화라 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정재홍: 제작 능력이 있으면 격주로 제작할 수도 있다. 한 두 번은 잘 만들 수 있다. 그러나 <PD수첩>이 지켜온 성역 없는 비판과 진실을 밝히는 정신을 잘 이어갈 수 있을 지 걱정스럽다. 왜곡된 보도의 피해는 국민들이 입기 때문이다.

최미혜: KBS내에서도 작가와 PD들 모두 이번 사태에 관심이 크다. 예컨대 KBS에 있던 데일리 프로그램이 거의 없어진 상황이다. 시사 프로그램 탄압의 정점에 <PD수첩>이 있기 때문이다. <PD수첩>이 무너지면 그 불똥이 어디로 튈 지 불 보듯 뻔히 보이니까 저 성역만큼은 지키는데 앞장서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최경: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9년 정도 일했다. <PD수첩>, <추적 60분>은 아이템에 대한 접근 방식과 구성 방법이 다르지만 황우석 사태를 지켜보며 느낀 게 많다. 과연 우리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면 그 정도의 힘을 가지고 방송을 할 수 있었겠느냐 라는 자조적인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그만큼 <PD수첩>은 우직하고 선이 굵은 방송이다. <PD수첩>은 시청률을 불사하고라도 밀어붙이는 힘이 있어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처럼 맥이 끊긴 상황에서 잘 이어 붙일 수 있을 지 걱정된다.

사회: 이처럼 <PD수첩>이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한계를 느끼지는 않나.

장형운: (해고 작가끼리) 매주 한 번씩 만나서 언제 어떻게 이 문제가 해결될 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어쨌든 대체작가가 들어온 상황이고, 우리로서도 할 수 있는 건 다했다고 본다. 천막농성을 접으면서 마음이 굉장히 좋지 않았다. 협회 소속 작가들과 뜨겁게 여름을 보냈고, 잘 해결되겠지 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에 대해 많이 힘들다.

정재홍: 이 문제가 개별 방송사, 개별 프로그램의 문제라면 해결이 쉽게 됐을 것 같다. 김 사장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그렇게 한 것 같진 않고 대선 정국을 앞두고 날선 <PD수첩>을 침묵시키고자 한 게 아닐까. 작가들이 기고·인터뷰·촛불문화제·천막 농성을 벌이고 이에 많은 시민들이 동의를 나타냈음에도 정치권력이 김 사장을 비호하기 때문에 한 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개별 프로그램의 문제를 이미 넘어섰다. 대선 과정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핵심인 언론의 암흑기가 올 것이다.

▲ 주최로 지난 11월 26일 저녁 서울 목동 사무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MBC 의 해고 작가들과 시사교양작가들이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다. 정재홍 전 작가, 최경 전 방송4사구성다큐연구회장, 최미혜 현 방송4사구성다큐연구회장, 장형운 전 작가, 전성관 편집주간. (맨 왼쪽부터 시계방향)ⓒPD저널

“시사교양 작가로서의 위상 지킬 것”

사회: 시사교양작가 사회에서 <PD수첩> 대규모 작가 해고 사태는 초유의 일이었다. 거시적으로는 방송작가의 역할론을 되새김질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시대의 방송작가의 역할은.

최미혜: 시사교양 작가는 페이(pay)도 별로고 스타작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프로그램과 PD의 이름에 묻히는 존재였다. 이번 사태나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고 ‘시대의 기록자’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됐다. 사태가 잘 해결돼야 하는 이유는 저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가치의 재발견이다. 힘든 바람을 맞지만 방패막이가 되고자 했다.

최경: 작가로 23년째다. 과연 <PD수첩> 작가 해고 사태를 통해 상황이 나아질 것이냐에 대해선 의문이다.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차원을 넘어선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방송작가는 프로그램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체성을 결정짓는 역할을 한다. 시사교양작가는 PD와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실제로는 조명 뒤에 가려진 사람이다. 후배작가들에게 ‘이 시대의 카나리아 같은 존재’라는 말로만 설득할 순 없다. 시스템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사회: 앞으로의 바람은.

최경: 낙관적으로 보진 않지만 이렇게 버텨주는 분들이 긴 시간을 견뎌냈다는 것 자체로 ‘희망의 증거’가 된다고 본다. 앞으로 방송작가의 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 우리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방송사와 PD들의 공감대가 뒷받침돼야 한다. 걷지 않는 것보다 걷는 게 낫기 때문에 조금씩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으면 한다.

최미혜: 척박한 시사교양 작가 사회에서 해고자 6명은 앞으로 가야 할 후배들이 왜 이 길을 벗어나지 않고 가야하는 지 정답을 보여주고 있다. 또 정권 말기에 워낙 독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내가 하는 일이 영양가 없는 게 아니구나’라는 자부심을 갖게 됐다.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는 도움이 되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정재홍: 힘들더라도 잘 해결이 돼서 한 번이라도 승리해보고 싶다. 복귀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시사교양작가의 위상이 철저히 음지에 있었기 때문에 이번처럼 내쫓았던 게 아닐까. 하루를 일하더라도 주인의식에 걸맞은 대우를 받기 위해 싸우고자 한다. 단지 벌어먹고 살자는 차원이라면 다른 데서도 먹고 살 수 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작가로서의 직업적인 열망이 잘 반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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