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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기획] 2012 헐~말!

KBS 2TV<개그콘서트> ‘막말자’ 코너의 제목을 빌리면 올해 언론계는 ‘말하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들’의 싸움이었다. 진실을 말하려는 언론인들의 목소리는 안팎에서 차단됐다. 안에서는 ‘낙하산 사장’이 버티고 있었고, 밖에서는 정치권,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등이 겹겹이 방어막을 두르고 있었다.

‘막으려는 자들’에게는 언론을 통제하려는 정치권력의 뜻을 적극적으로 대변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들은 이런 의혹과 비판을 한결같이 부인했다. 하지만 레토릭으로 포장해도 가려지지 않는 이들의 속내는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자기부정과 자기고백을 오가면서 구설에 오르고 때론 두고두고 회자가 되는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김재철 MBC 시장, 궁극의 자기부정

김재철 MBC 사장은 올해 어록의 ‘끝판왕’ 다운 행보를 보였다. 전국언론노조 MBC본부의 파업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내비치지 않은 동안에도 그의 어록은 추가됐다.

파업이 한창인 지난 5월 공원에서 마주친 한 기자가 “김재철 사장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자 김 사장은 “전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고 답변했다. 공개된 동영상 속의 얼굴과 목소리는 그가 분명했다. 순간 당황해서 거짓말을 한 것인지,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정도로 심신이 고달팠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진실은 미스터리로 남긴 채 그의 말은 노조가 주최한 ‘김재철 사장 헌정 콘서트’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유체이탈 화법을 선보인 김 사장은 노조의 복귀로 잠행을 끝낸 이후로는 MBC 앞날에 대한 우려를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김 사장은 지난달 11월 창사 51주년 기념식 자리에서 “1등을 위해서는 적이라도 쓰겠다”며 “내년에는 ‘당신 가지고 1등을 못해’라고 하면 내가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1등을 하겠다”고 결연한 각오를 내비쳤다.

하지만 그의 말은 시청자들과 내부 구성원들의 공감을 얻지는 못했다. 2010년 3월 취임 직후 사퇴를 요구하는 노조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공정방송을 약속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사원들이 저를 한강에 매달아 버리세요. 남자의 약속은 문서보다 강한 게 말이다”고 호언장담했다. MBC가 불공정방송의 대표명사로 입길에 오르는 요즘, 그는 아직 MBC 사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래에서 온 이진숙 MBC 기획홍보 본부장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의 말대로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과 이 본부장이 MBC 지분매각을 협의했다는 보도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김재철 사장의 최측근으로 공식적인 ‘입’ 역할을 해온 그로서는 이런 사건에 휩싸인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지난 10월 <한겨레>가 “정수장학회가 MBC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한 이후 정수장학회 문제는 대선 정국에서 급부상했다. <한겨레>가 공개한 대화록에는 “(매각 발표) 그림은 좀 괜찮게 보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이게 정치적으로 임팩트가 크기 때문”이라는 그의 발언도 실렸다.

대선을 앞두고 주식을 팔아 선심성 지원을 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MBC는 곧바로 도청 의혹을 제기하면서 해당 기자를 검찰에 고발,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계철 방통위원장, 낯부끄러운 고백

뜻밖의 고백은 이계철 방송통신위원장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지난 4월 취임 두달이 지난 뒤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방송사 파업에 대한 계획을 묻는 질문에 “나는 무능하다. 내가 왜 나서느냐”고 답했다.

방송사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방통위원장으로서 무책임한 태도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정보통신전문가로 알려진 이 위원장이 방통위원장으로 임명될 때 나왔던 우려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위원장은 이런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그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 출석해서도 올해 방송사 파업사태와 MBC 사장 거취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파업 대책에 대해서는 “노사간 문제”, “모르는 일”이라고 책임을 회피해 국회 문방위원들로부터 원성을 들었다.

배석규 YTN 사장, 정체성 혼란

 “나도 피해자다.” ‘국무총리실 불법사찰 의혹’에 연루된 배석규 YTN 사장은 이 한마디로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 지난 3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사찰 문건에는 YTN 임원진 교체와 인사 내용 등이 포함돼 정부의 YTN 사찰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배 사장은 그의 해명을 듣기 위해 항의 방문한 구성원들에게 “왜 여기까지 들어왔느냐, 나가라”라고 외치면서 “나도 피해자다”고 말했다. 사찰의 주체가 아닌 대상이었다는 항변이었다.

보도를 통해 공개된 2009년 9월 3일자 ‘YTN 최근 동향 및 경영진 인사 관련 보고’ 에는 “신임 대표(배석규)는 현 정부에 대한 충성심과 YTN 개혁에 몸을 바칠 각오가 돋보인다. 새 대표가 회사를 조기 안정시킬 수 있도록 직무대행 체제를 종식시키고 사장으로 임명하여 힘을 실어줄 필요가 있다”고 배 사장을 평가했다.

방송사 사장 인사에 정부 차원의 개입이 있었다는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하지만 YTN은 “문제의 사찰 고보고서는 해당 기관이 첩보 등을 바탕으로 자체 판단에 따라 내부 보고용으로 작성한 보고서일 뿐 회사는 그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길환영 KBS 사장의 못 믿을 약속

‘편파방송 종결자’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취임한 길환영 KBS 사장은 취임사에서 “역대 가장 공정한 선거 보도와 방송을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확고하게 견지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길 사장 취임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대선 후보 검증 프로그램 <대선 후보를 말한다>가 갑자기 보류 결정이 나자 공정방송에 대한 그의 약속도 진정성을 의심받았다. 보류 끝에 방송이 된 이후에는 여권 이사들이 방송이 특정 후보에게 불리했다고 추궁해 방송 책임자가 보직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길 사장은  이사회에서 “편파성이 제기될 소지가 있다. 게이트키핑에 문제가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이사들의 부적절한 개입에 사장이 동조했다고 판단한 기자들은 격분했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기자들이 제작거부를 결의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치달았다.

18대 대선 결과는 이사들이 방송에서 ‘불리하게 다뤘다’고 성토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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