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면서 보는 종편드라마, 빠른 대사로 시선 붙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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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김윤철 PD

지난 1일 종영한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는 100일간 꼼꼼하게 써내려간 결혼실태보고서 같다. 주인공인 정훈(성준)이 혜윤(정소민)에게 프로포즈를 하고 결혼에 성공하기까지의 기록을 상견례와 예단, 식장 정하기 등의 과정을 통해 촘촘하게 엮었다.

예단 문제로 예비 시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이고, 부모님 도움 없이 월세로 신혼집을 마련해야 하는 젊은 예비 부부의 모습은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다. 나아가 <우결수>는 ‘남자=집’ ‘여자=혼수’라는 전통적인 결혼 관습에 도전하고 부모님과 싸우면서 성장하는 이야기까지 담는 데 성공했다.

<우결수>의 성공은 흔한 소재에 일상성을 입힌 하명희 작가의 대본에 출연 배우의 호연, 그리고 김윤철 PD의 경쾌한 연출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지난 7일 김윤철 PD의 자택 인근 커피숍에서 김 PD를 만났다.

종영 일주일이 지났지만 그의 얼굴엔 피로감이 아직 가시지 않았다. 김 PD는 하루 평균 3시간정도 눈을 붙이면서 97일 동안 이어진 강행군을 B팀 없이 소화해냈다. “지금까지 B팀을 쓴 적이 한 번도 없는데 20부작은 체력적으로 힘에 부쳤어요.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나중에는 대본을 고민할 시간 없이 찍는 데 급급했던 점이 아쉽죠.”

<우결수>는 김 PD가 속해 있는 제작사 드라마하우스 대표가 추천한 작품이었다. “대표가 ‘2012년의 결혼과 이혼 풍속도를 담은 정보 프로그램이 됐으면 좋겠다’며 한 작가를 소개해 줬죠. 작품을 선택하면서 소재나 시선이 새로운가를 보는데 <우결수>는 두 번째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상적인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점과 매회 에피소드로 떨어지는 구성도 마음에 들었고요.”

▲ 김윤철 PD와 <우결수>의 두 주인공. ⓒJTBC
드라마가 도달하지 못했던 관계의 성찰

하 작가와의 호흡도 잘 맞았다. 3차 대본 수정이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하 작가와 작품을 해석하는 데 이견은 없었다. 잡음은 없었지만 김 PD가 하 작가와 가장 숙고 한 부분은 정훈·혜윤 커플과 양가 부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것이었다. <우결수>에서 부모님과의 갈등과 동성· 친구간의 우정은 정훈과 혜윤이 결혼에 성공할 수 있느냐의 문제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

“<우결수>가 지금까지 도달하지 못한 지점까지 나아갔다면 바로 연인과 언니, 동생, 부모와의 인간관계를 깊이 성찰했기 때문이죠. 하 작가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혜윤-정훈, 동비-기중 커플과 양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조화롭게 이끌고 가느냐가 최대 고민이었어요.”

KBS <사랑과 전쟁>을 집필했던 하 작가는 <우결수>를 통해 결혼을 앞둔 주인공뿐만 아니라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와 친구, 자매의 인생도 진지하게 조명했다. 자식의 결혼에 반대하는 부모의 심경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어두운 가족사를 품고 있는 주인공 친구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우결수>를 시청한 이들에게 정훈과 혜윤의 결혼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결말이었다. <우결수> 마지막회까지 반신반의했던 건 혜윤의 언니인 혜진(정애연)과 도현(김성민)의 이혼 여부였다. 도현의 불륜으로 이혼을 결심한 혜진은 전쟁같은 소송 끝에 결국 도현과 헤어졌다.

“‘결혼이 낭만적인 게 아니다’는 사실을 보여준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훈과 혜윤의 집안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계급성을 정확히 보여주잖아요. 우리 드라마를 보고 강남 주부들이 ’저런 며느리(혜윤)  만날까 두렵다’고 말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계급이 분화되면서 결혼 풍속이 여기까지 온거죠.”

빛나는 호연 …캐스팅 비결은

연출자와 작가가 호흡이 잘 맞는다고 해서 모두 좋은 작품이 나온 것은 아니다. 설득력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져야 시청자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김 PD는 첫 번째 촬영 날 <우결수>가 이런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다고. “이미숙 씨가 파란색 아이섀도우를 바르고 촌스러운 파마머리를 하고 나타났는데, 잘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어요. 당시에 그런 디테일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서로 교감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우결수>는 이미숙을 제외하고 스타배우나 연기력으로 인정받은 연기자들이 없이 출발했다. 하지만 극이 진행되면서 정소민, 성준, 김영광, 한그루, 이재원씨 등 신인급 배우 모두 자기 옷을 입은 듯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캐스팅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내 이름은 김삼순>을 끝낸 뒤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비결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캐스팅할 때 배우들을 직접 만나 어떤 사람인지, 어떤 취향이나 습관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편입니다. 상상하는 캐릭터와 얼마나 부합하는 지 그려보고 겹쳐지면 캐스팅을 하죠.”

<우결수>에서 억척스러운 가장 들자 역을 완벽하게 연기한 이미숙씨는 처음엔 캐스팅 우선 순위에 없었다. “지금은 ‘이미숙씨가 아닌 들자를 상상할 수 없지만 처음에 떠올린 배우는 아니었어요. 이미숙씨도 처음엔 고사를 했고요. 그런데 정답처럼 이미숙씨가 다가왔죠. 나중에 최화정씨가 연기한 들레 역을 하고 싶다고 해서 설득하는 과정도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이야기를 주로 듣는 편이라는 김 PD가 이번 작품에서 배우들에게 주문한 게 하나 있다. 바로 대사를 빠르고 정확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하 작가의 대본에 대사가 많기도 하고 대사가 경쾌하지 않으면 재미없을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뉘앙스 전달이 안된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중견 배우들도 있었죠. 젊은 배우들도 힘들어하더니 나중엔 잘 따라와 줬어요.”

흘려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배우들의 대사와 함께 빠른 장면 전환은 극의 집중도를 높였다. 대사와 장면에서 나타나는 속도감은 김 PD가 <우결수>을 연출하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기도 했다. “종편 드라마는 아직 고정 시청층이 형성이 안됐기 때문에 지나가면서 보잖아요. 컷을 나눠 리듬감을 불어넣고 대사의 속도감을 높였죠. 한 눈 팔면 제대로 대사를 들을 수 없도록 집중력을 유도한 겁니다.”

이런 화면은 김 PD의 이전 작품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영상이다. 이전까지는 롱테이크와 풀샷이 그의 장기였다. 예컨대 <내 이름은 삼순이>에서 롱테이크는 주인공 삼순이의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으로 자주 쓰였다. “풀샷과 롱테이크를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많이 썼어요. 하지만 TV감독은 고유 스타일을 고집하기 보다는 소재와 작품에 맞게 최선의 도구를 쓰는 게 맞다고 봅니다.”

▲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일상성 담긴 소박한 이야기 하고 싶어”

<우결수>는 2007년 MBC <케세라세라> 이후 김 PD가 미니시리즈로는 5년 만에 선보인 작품이다. 2005년 MBC를 떠난 뒤에도 MBC에서 작품을 선보였던 그가 이번에 복귀작을 들고 나온 곳은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인 JTBC이었다.

<우결수>는 재미와 작품성을 모두 놓치지 않은 수작이었지만 저조한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종편의 한계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실제 주위에선 “종편이 아니었으면 시청률이 잘 나왔을 텐데 아쉽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스튜디오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곳에서 촬영을 해야 하고, 후반 작업 시스템도 정교하게 구축돼 있진 않지만 큰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종편이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일종의 실험을 한 것인데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어요.”

그는 2005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성신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하다가 지난해 완전히 현업으로 복귀했다. 현장에 한발만 딛고 있는 동안에 현장의 소중함을 절감했다고 한다. “충전과 자기반성의 시간이었죠. 영화를 공부하고 학생들 가르치면서 얻은 결론은 ‘나의 일은 연출이구나’였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도 됐고요.”

차기작은 내년쯤 예상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검토 중인 작품이나 하고 싶은 장르를 정해 놓은 것은 없다. 다만 <우결수>를 선택한 것처럼 ‘허황된 이야기를 하지 말자’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일상성이 담긴 소박한 이야기를 제대로 만들고 싶어요. ‘외도’가 길었던 만큼 이제는 ‘중고 신인’의 자세로 부지런히 작품을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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