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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추적 60분’ 30주년 의미와 과제… 탐사보도 기능 위축에 홀로 ‘악전고투’

1983년 방송을 시작한 대한민국 최초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KBS 2TV <추적 60분>이 오는 27일 30주년을 맞는다. 서슬이 퍼랬던 군사정권 시절 탐사보도를 전면에 내건 프로그램의 등장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카메라 앞에 나선 PD의 모습과 ENG카메라로 전하는 현장의 장면은 당시엔 <추적 60분>이 아니면 볼 수 없었다. 정치·사회·경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진실을 추적하는 동안 <추적 60분>은 ‘가장 유익한 프로그램’에 선정되기도 했고, 39.6%라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현재 <추적 60분>이 처한 현실을 따져보면 30주년을 마냥 축하할 수도, 기뻐할 수만도 없다. 30년이라는 세월만큼 무거운 짐이 <추적 60분>제작진 어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선의의 경쟁을 벌여왔던 MBC <PD수첩>은 이전의 모습이 아니다. <PD수첩>은 MBC노조의 파업 등으로 중단됐다가 지난 1월 방송이 재개됐지만  기존의 PD와 작가 대다수는 배제됐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미스터리 추리물을 표방하면서 <추적 60분>과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상파에서 PD가 제작하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은 사실상 <추적 60분>이 유일하다.

<추적 60분>의 지난 5년도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이전에도 권력이 불편할만한 아이템을 다룰 때마다 진통을 겪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동안에는 그 정도가 한층 심해졌다는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2010년엔 내부 반발에도 기자와 PD간 협업을 이유로 <추적 60분>팀을 제작부서에서 보도본부로 옮긴 것을 두고 ‘PD저널리즘 죽이기’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제작진들은 언론의 지형뿐만 아니라 취재 여건도 어려워졌다고 토로한다. 사회 갈등이 갈수록 복잡해짐에 따라 ‘진실’은 더욱 깊숙이 은폐됐다. 반면 탐사보도에 객관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유일한 탐사보도, 무거운 책무”= 그래서 <추적 60분>의 30주년은 또 하나의 장수 프로그램 탄생이라는 의미만 갖는 게 아니다. 지상파에서 탐사보도를 좀처럼 볼 수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현실은 <추적 60분>의 30주년을 탐사보도 프로그램의 현재와 앞날을 조망하는 계기로 바라보게 한다.

<추적 60분>을 거쳐 간 KBS의 한 PD는 “지난 5년 동안 방송사라는 거대한 시스템에서 PD들에게 주어진 자율성은 크지 않았다”며 “<추적 60분>의 비판의 날이 약해졌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전 정부에서 ‘천안함’, ‘4대강’ 같은 민감한 이슈를 해낸 것은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MBC의 한 시사교양 PD는 “지상파에서 홀로 남아 탐사보도의 역할을 맡고 있는 <추적 60분>에 시청자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크다”며 “우리 사회의 모순을 파헤치는 탐사저널리즘의 책무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시청자의 요구에 더욱 부응해 달라”라고 부탁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도 “특히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에서 탐사보도는 신뢰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며 “탐사보도와 교양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못하고 오락과 드라마 등 상업적인 콘텐츠만 살아남는다면 공영방송의 존재 자체가 없어지게 된다”고 강조, <추적 60분>의 분투를 당부했다.

이같은 현실 진단과 <추적 60분>의 탐사보도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요구에 제작진도 공감하고 있다. 제작진이 30주년을 맞아 영국, 미국, 이집트 등 세계 각지의 탐사 보도 현장을 둘러보고 온 것도 이런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탐사프로그램 관계자들이 전한 답은 명징했다. 탐사보도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었다.

<추적 60분> 제작진은 “<추적 60분>이 위기라고 하는데, 앞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 속에서 출발했다”며 “해외 탐사보도 현장 취재에서 이전에는 카메라만 들이밀었다면 이제는 다른 매체와 연대를 통해 전문성을 키우고, 독립성을 지켜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고 전했다.

■‘지속가능한’ 탐사보도의 길은 = 사회의 모순을 심층적으로 보도하는 프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이런 요구를 현실에 적용하는 게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지난 정부에서 지속된 ‘언론 자유’가 위축됐다는 우려가 새정부 출범이후 해소될지 낙관하기 어렵다. 때문에 탐사보도의 정신은 유지하되 이를 전달하는 방식에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정치권력이 언론을 이용할 자유만 남은 현실에선 날을 세워 민감한 이슈를 방송했다가는 <PD수첩>과 같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자본과 정치권력을 감시하는 노력은 중점적으로 하되,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전달하는 방법도 고려해볼만 하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에서도 저널리즘이 어려운 여건에 처해있을 때는 이 사안을 상식선에서 용인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접근한다”라고 덧붙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그릇’을 마련해야 한다는 고민도 제작진들은 하고 있다. PD가 직접 스튜디오에 나와 아이템을 소개하는 방식은 <추적 60분>이 지난 30년 동안 유지해온 틀이다. <추적 60분> 한 제작진은 “시대 흐름에 맞고 시청자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되기 위해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내부에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PD가 계속 내레이션을 할 것인지, 스튜디오 진행을 유지할 것인지, 아이템은 하루에 몇 개 하는 게 적당할지 등을 포함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KBS는 <추적 60분>을 다시 제작부서로 복귀시키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장성환 KBS 콘텐츠본부장은 “아직 구체적인 시기는 정해진 게 없지만 <추적 60분>을 다시 콘텐츠본부로 이관하는 것에 대해 내부에서 정서적인 합의는 이뤄졌다고 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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