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과도한 외주비율 재고돼야

|contsmark0|한 때 ‘간판’ ‘거점’으로 자타가 공인했던 프로그램들이 순식간에 외주로 돌려지고 있다. 고생고생 끝에 겨우 포맷을 정착시켜놓은 프로들마저 가차없이 외주로 넘겨진다. 그것도 담당 pd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일방적으로!
|contsmark1|곧 단행될 한국 방송계의 봄 개편 풍속도 속에 일선 pd들의 모습은 없다. 완벽한 무권리와 치밀한 배제, 외주비율의 지속적 확대와 기획과 제작의 인공적 분리라는 신자유주의적 환경하에서 어느덧 pd들의 모습은 흔적조차 없이 지워져가고 있다.
|contsmark2|
|contsmark3|우리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이미 비현실성이 드러난 외주비율확대정책을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 당초 외주비율확대정책의 도입명분은 다양하고 창조적인 프로그램의 공급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실상은 어떤가.
|contsmark4|기존의 이미 정착돼있는 프로그램, 이미 개발돼있는 포맷을 단순히 외부에 용역을 주어 제작하고 있지 않은가. 외부의 창의성이 추가되고 수혈되기보다는 오히려 방송사 내부의 창의성이 유출되고 있는 것이다.
|contsmark5|일선 pd들의 창조적 성과물들이 누군가의 돈벌이를 위해 특정집단의 습작을 위해 인위적으로 분배되고 있을 뿐이다. 이 나라 방송의 국제 경쟁력이 향상되기보다는 또 다른 나눠먹기의 장이 넓혀지고, 향응과 유착이라는 무원칙과 도덕적 해이가 조장되고 있을 뿐이다.
|contsmark6|그 뿐이 아니다. 이미 적정수준을 넘어선 외주확대는 수입대체 생산기지 역할을 해온 기존 방송사의 제작능력이 유지·전승되는데 심각한 장애를 조성하고 있다.
|contsmark7|신참 pd들의 제작능력을 향상시키는데 필수불가결한 프로그램들 중 상당수가 더 이상 방송사내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작능력발전의 토대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외주비율은 철따라 올라간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인가.
|contsmark8|둘째, 기획과 제작의 인위적 분리를 언제까지 고집할 것인가? 방송노동은 그 특성상 기획과 제작이 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제작의 실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해야만 현실성있는 기획이 나올 수 있으며 제작의 매 단계를 거침으로써 비로소 기획은 구현될 수 있다.
|contsmark9|하지만 이미 한국방송계의 pd는 단순실행자로 내몰리고 있다. 현업pd들이 부분적으로나마 공유해왔던 편성권은 외주확대를 빌미로 편성담당부서의 독점적 권한임이(결국 경영진의 전유물임이) 선언됐으며 기획의 권한은 cp급 이상만 보유하는 것으로 공식화됐다.
|contsmark10|프로그램은 점차 단순실행자인 pd를 배제한 채 편성부서와 cp의 협의 하에 결정되고 cp가 총애하는 작가에 의해 살이 붙여지게 됐다. 방송 pd는 결국 철저히 자본의 논리 하에 실행기능을 수행하는 외주제작사의 pd와 아무런 차별성이 없는 존재, 혼이 없는 존재로 재창조되었으며 프로그램들은 당연히(!) pd들과 아무런 협의 없이 외주로 돌려지게 되었다.
|contsmark11|그럴진대 누가 단순실행자인 pd에게 의욕과 창의성을 요구할 수 있는가. 이처럼 완벽한 통제위주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경영진과 cp가 지시한 것 이상의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contsmark12|
|contsmark13|우리는 오래 전부터 무분별한 외주비율확대와 편성과 제작의 인위적 분리가 초래할 위험성을 누차에 걸쳐 지적해왔다. 바야흐로 그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pd사회 전체가 무너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고통과 좌절을 신자유주의적 방송정책에 대한 단호한 반대로 바꾸어 내야 할 시점이다.
|contsmark14||contsmark15|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