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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의 음악다방]

가요가 우리 음악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커진 건 1980년대 이후의 일로 추측된다. 필자가 음악 프로듀서로 입사를 했던 1980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음반자료실에는 팝송이 넘쳐났지만 가요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2시의 데이트>, <이종환의 디스크쇼>, <황인용의 영팝스>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인기 FM방송이 팝송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가요전문 방송이거나, 최소한 가요가 일정 부분 섞여있는 방송 위주다. 왜 우리는 부쩍 가요를 좋아 하게 됐는가? 멜로디를 빚어내는 수준이 높아졌고, 연주 실력과 가창력이 뛰어난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게 가사다. 팝송은 가사 전달이 잘 안 돼, 듣는 이의 느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여기에 비해 가요는 가사를, 있는 그대로, 아니 자기만의 상상력까지 덧칠해서 풍부한 감정이입을 경험하게 한다. 그러고 보면, 1990년대 이후에 나온 가요들은 작곡가 뿐 아니라 작사가의 네임 크레디트에도 관심을 가지게 하지 않았나 한다. 박주연, 강은경, 박창학, 지예 같은 인물 말이다.

▲ 할 데이비드
미국 팝계는 오래전부터 많은 전문 작사가가 스타 아티스트로서 대접을 받아 왔다. <남태평양>이나 <사운드 오브 뮤직> 등 뮤지컬의 황금시대를 연 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 ‘문 리버’나 샹송인 ‘고엽’의 영어 가사를 쓴 조니 머서, 캐롤 킹과 콤비를 이뤘던 게리 고핀 등이 그런 인물인데, 여기에 작년 9월에 세상을 떠난 할 데이비드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서부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제곡인 ‘레인드롭스 킵 폴링 온 마이 헤드’(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가 대표작이지만 그의 존재를 기억하는 우리 음악팬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미국 음악저작권협회(ASCAP)의 회장을 오래 했으니, 유수 법인의 대표자로 이름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을지 모르겠다.

1921년 뉴욕에서 태어난 할 데이비드는 1940년대부터 가사를 써왔지만,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1957년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이라는 불세출의 작곡가를 만나고부터이다. 이 둘이 만들어낸 작품 중에는 ‘레인드롭스 킵 폴링 온 마이 헤드’ 외에 카펜터스의 ‘클로우즈 투 유’(Close To You), 허브 앨퍼트의 ‘디스 가이즈 인 러브 위드 유’(This Guy’s In Love With You) 등 차트 정상에 오른 것만 3곡이나 된다.

그 외에도 007의 ‘카지노 로얄’의 주제곡이었던 ‘더 룩 오브 러브’(The Look Of Love), 윌리 넬슨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듀엣곡 ‘투 올 더 걸스 아이 러브드 비포’(To All The Girls I Loved Before), 디온 워윅의 ‘아이 윌 네버 폴 인 러브 어게인’(I’ll Never Fall In Love Again), 포코의 ‘시 오브 하트브레이크’(Sea Of Heartbreak) 등 수없이 많다. 디온 워윅은 그가 쓴 ‘왓 더 월드 니즈 나우 이즈 러브’(What The World Needs Now Is Love)를 취입하면서 “이것은 미국의 새로운 애국가여야 하지 않을까”하고 느꼈다니, 얼마나 감동스런 가사였을까.

할 데이비드는 생전에 자신의 홈페이지에 작사를 잘 하는 방법에 대해서 팁을 준 적이 있다. 가사는 세 가지 요소에 충실하면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럴듯함’(Believablity), ‘단순함’(Simplicity) 그리고 ‘정서적 충격’(Emotional Impact)이다. ‘그럴듯함’이란 일종의 신뢰감이나 현실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는 이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에만 몰입돼서는 안 된다고 한다.

예컨대 연애를 소재로 한 경우에 자기 식의 사랑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그 가사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거나 때로는 달아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대상을 합리적인 기준에서 봐야 모두의 공감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함은 특히 지키기 어려운 것인데, 단순해서 나빠지는 경우가 단순해서 좋아지는 경우보다 많다고 한다.

그가 존경하는 선배의 작품은 모두 단순했으며, 그는 여전히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단순함을 찾아 헤매고 있다 고백한 바 있다. 그는 그의 작품이 뭇사람들에게 과연 정서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나 항상 체크한다고 했다. 만일 나만이 반응하는 것이라면 작품을 던져버리겠다고 했다. 이 세 가지 요소에 가장 충실했다고 여겨지는 할 데이비드의 작품 하나를 소개한다. 1964년에 발표된 ‘집은 집이 아니랍니다’(A House Is Not A Home)이다.

▲ 조정선 MBC 라디오PD
“의자는 여전히 의자일 뿐이지요. 거기에 아무도 앉아 있지 않더라도. 그러나 의자는 집이 아니지요. 그리고 집은 집이 아니랍니다. 그곳에 당신을 안아줄 사람이 없을 때. 그리고 당신이 굿나잇 키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때. (중략) 그러니 이 집을 집으로 바꿔주세요. 제가 계단을 올라가 문을 열면. 제발 거기 있어 주세요. 당신이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늦게나마 할 데이비드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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