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제작기 iTV <리얼스토리 실제상황>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실제상황"의 이름찾기

|contsmark0|“재연다큐멘터리 장르에 새로운 전형을 마련하겠다’고 시작한 <리얼스토리 실제상황>(이하 ‘실제상황’)이 어느덧 100회 방송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글은 실제상황 제작팀이 어떻게 그 냉정한 결과의 승부에 임하며 우리만의 이름을 찾기 위해 노력해왔는가에 대한 고백이다.
|contsmark1|새로운 전형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존 재연다큐멘터리와 분명한 차별성을 갖추어야 했다. 제작팀은 좀 더 매력적인 소재, 좀 더 진실에 가까운 다큐멘터리, 좀 더 다양한 표현기법, 좀 더 아름다운 영상, 좀더 실감나는 연기를 통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기존의 재연다큐멘터리를 좀 더 고급화해보자는 것이었다.
|contsmark2|제작팀이 가장 먼저 풀어야 할 과제는 소재에 대한 매력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지난 97년 10월 부터 축적해온 <경찰 24시>의 사건 내용과 자료화면이 실제상황의 주요 소재다. 살벌한 범죄의 현장을 누비며 경찰들의 활약과 박진감 넘치는 순간들을 거침없이 담아낸 기록은 누구나 군침을 흘릴만한 소재다.
|contsmark3|하지만 <경찰 24시>의 방송내용이 모두 매력적이고 실제상황의 소재로 적당한 것은 아니다. 사건이 어떤 구성과 교훈을 가지고 있는가, 등장인물들은 얼마나 매력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가, 제작비 내에서 소화할 수 있는 규모(인력, 장비)인가 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contsmark4|이상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건이라도 사실을 확인할 수 없을 경우에는 소재로 선택하기 힘들다.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나 관련자들 기록들을 찾을 수 없다면 정밀한 재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contsmark5|일단 소재를 선택하고 나면 이 소재를 더 좋은 소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시작된다. 작가를 비롯한 모든 스태프들은 필요에 따라 형사들을 찾아가기도 하고 법정 기록을 뒤진다.
|contsmark6|소재를 좀더 충실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고생이다.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된 진술조서에 기록된 용의자의 행적,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속사정, 뒷이야기, 범죄와 관련된 학술적 해석 등을 최대한 끌어 모은다.
|contsmark7|수없이 많은 협조요청 공문을 해당 관공서의 데스크에 밀어 넣었고, 때론 현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사건 관련 기록들을 옮겨 적기도 했다. 노트북 컴퓨터의 하드디스크 용량이 커진 것은 우리 팀에겐 매우 커다란 행운이었다.
|contsmark8|차별화를 위해 제작팀이 기울인 두 번째 노력은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사실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사실적인 언어와 극적 구성을 위한 장치들로 살을 붙이면 재연과 다큐멘터리가 어울린 대본이 완성된다. 이 과정에서 제작팀은 아주 강력한 유혹을 극복해야만 한다. 무언가 ‘꾸며내고 싶은’ 유혹이다.
|contsmark9|다큐멘터리를 만들다보면 ‘주제’나 ‘진실’을 위해 ‘사실’을 조금은 조작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잦다. 실제사건의 주제가 진부하다거나 흐릿한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
|contsmark10|픽션에 바탕을 둔 드라마는 치밀한 장치와 상상력을 이용해서 같은 주제를 훨씬 선명하고 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많은 실제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약간의 사실을 조작해서라도 훨씬 더 풍부하고 극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때 조금만 방심하면 원래의 이야기와는 상관없는 픽션을 재연이랍시고 만들어내는 것이다.
|contsmark11|하지만, 실제상황은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아무리 사소한 조작도 관련 실제 인물들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사건을 멋대로 왜곡하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contsmark12|차별화를 위해 노력한 세 번째는 다양한 스타일과 영상언어의 실험이었다. 범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는 실상 인간사의 다양한 희노애락이 담겨있다. 그 안에는 공포와 미스테리, 코미디와 로맨스가 조합되어있다.
|contsmark13|사실성만 담보한다면 그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스타일을 공부해서 프로그램화한다. ‘8400원을 훔친 사나이’나 ‘넘버 쓰리를 꿈꾸는 아이들’은 대표적인 코미디 스타일의 사건이었고 ‘청춘’과 같이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재연을 시도한 경우도 있었다.
|contsmark14|제작팀은 좀더 완성도 있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기존 재연 다큐멘터리와는 달리 재연 영상을 드라마 영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시도였다. 무엇보다 ‘어떻게 다큐멘터리와 재연이 경계 없이 어울리는 영상을 만들어내는가’였다. 재연이 다큐멘터리처럼 완성되어 있어야 다큐멘터리가 재연을 통해 극적인 구성을 가질 수 있다.
|contsmark15|조명은 영상과 관련해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경찰 24시>는 6mm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한다. 이에 어울리는 화면을 얻기 위해서 제작팀은 최대한 자연광을 이용해 사실적인 느낌의 영상을 추구했다. 밤 장면에도 인위적인 조명을 최대한 자제한다.
|contsmark16|구도와 카메라 워크도 기존의 깔끔한 드라마와는 ‘다른 것’이 필요했다. 개개 프로그램의 스타일에 조금씩 다르지만 핸드 헬드와 의도적인 포커스 아웃 등 여타 드라마에서는 예외적인 기술들을 자주 사용했다. 촬영감독들은 시간을 쪼개서 독립영화의 조금은 낯설지만 효과적인 기법들을 공부했다.
|contsmark17|모든 촬영이 야외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3-4일의 촬영기간은 늘 쫓기듯 지나간다. 하루에 20씬 정도를 소화해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contsmark18|하지만 구슬땀 흘리는 스태프와 연기자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뛰다보면 샘솟는 힘을 느끼게 된다. 모두가 <실제상황>만의 독특한 이름을 찾기 위해서 악을 쓰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실제상황>이 재연드라마 장르에 새로운 전형을 마련했는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시청자들의 몫이다. 제작팀은 최선을 다해 이 목표를 향해 뛰었을 뿐이다.
|contsmark19|<실제상황>의 이름을 찾기 위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내 이름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contsmark20|김역균 itv 리얼다큐제작팀 pd
|contsmark21||contsmark22|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