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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영화의 르네상스는 아직 멀다

|contsmark0|대박현상을 이루었던 조폭영화붐도 장르의 수명을 다하고 그 빈 자리를 멜로드라마가 차지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미 개봉한 영화나 기획중인 영화들에서 그런 조짐이 보인다. 최근 개봉한 <버스, 정류장>(이미연 감독의 첫 영화)은 멜로드라마의 복귀를 조심스럽게 알리는 영화인 셈이다.
|contsmark1|열 일곱 살 여자아이와 서른 두 살 남자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학원과 버스정류장을 무대로 미묘하게 원조교제문제까지 건드린다.
|contsmark2|십대 여성과 삼십대 남자, 이 두 주인공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 극심한 소외감을 느끼는 상처받은 영혼을 갖고 있다. 그래서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면서 고백되지 않은 사랑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한다.
|contsmark3|재섭(김태우)은 학원의 국어강사. 그는 여학생에게 인기는 있지만 냉소적 유머를 아무렇지 않게 강의 중에 내던지며 외부에 문을 열지 않고 산다.
|contsmark4|그는 과거 사랑에 대한 배신과 상처로 성인이 된 여자를 싫어하며 창녀와 습관적 성행위를 갖기도 하는 자폐적인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그에게 다가온 학원수강생 소희(김민정)는 삶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준다. 소희는 원조교제를 하는 데다 임신을 했고 또 유산도 해본 여학생이다. 또래치고는 너무 여러 가지 -특히 성적인 문제와 연관해서- 를 겪은 이 애는 조숙하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하다.
|contsmark5|재섭과 소희, 각각의 힘빠진 일상을 보여주다가 이 둘을 동시에 담아내는 화면은 n세대식 행동에 신선함을 느끼는 재섭의 관점을 살려내기도 한다.
|contsmark6|쳐진 어깨를 하고 삐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되는대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둘은 정신적 쌍생아 같기도 하다. 연장자에다가 신분이 선생인 재섭은 버스처럼 다가서는 소희에게 정류장처럼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엔 달리 취할 행동이 없다.
|contsmark7|자칫하면 원조교제가 될지도 모르니까. 말하자면 제목에 충실한 영화이다. 학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혹시나 하며 재섭은 소희를 기다리고, 소희는 버스처럼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나고 그러면 둘의 허망하고 안타까운 데이트가 이루어진다. 둘은 때로 진실게임을 하고 거짓말 속에 진실을 끼어넣고 이 게임은 소희가 주도한다.
|contsmark8|맥없이 굴러가는 이 둘의 관계를 보고 있노라면 캐릭터 자체에 충실한 것이기는 할텐데 하면서도 주연을 맡은 두 연기자가 어쩌면 그리도 맛없는 연기를 보여주는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연기자를 탓하는 것은 아니다. 연기시키기도 연출력의 연장이니까. 아니면 아예 연기력이 보이지 않도록 장면화를 하는 선택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러기엔 이 영화 자체가 캐릭터 드라마성이 강하다.
|contsmark9|멜로적인 드라마성을 내걸지만 <버스, 정류장>은 매우 일상성이 강한 영화의 경향을 지니고 있다. 홍상수의 일련의 영화들 이후 상당히 퍼진 지리멸렬한 일상성을 허탈하게 드러내는 경향이 이젠 한국영화에서 한 양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듯 하다.
|contsmark10|그러나 영화의 내러티브는 그 지리멸렬함 속에서 공회전을 거듭한다. 재섭은 사라진 소희를 버스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소희는 좋아하지도 않는 중년남자를 습관처럼 만나 중년사내의 졸렬한 사랑타령이나 들어주고… 일상이란 모름지기 다람쥐 쳇바퀴 돌듯하는 진부한 게 아니겠는가,
|contsmark11|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사는게 아니겠느냐는 당연하면서도 삼류철학같은 메시지가 담긴 슬픈 장면들을 계속 보고 있노라면 어깨가 점점 쳐지는걸 느낀다.
|contsmark12|마치 감염이나 된 듯이. 폭력과 억지 허무 개그로 수명이 달한 조폭코미디에 이어 돌아온 멜로드라마의 조짐치고는 매력이 딸린다. 목적지가 있어서 기다리는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갈데 없어서 혹은 습관적으로 앉아있는 버스정류장의 풍경이란 너무 처연하기 마련이니까.
|contsmark13|유지나 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contsmar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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