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종편 간 손석희, 판단 유예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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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JTBC로 첫 출근하는 손석희 보도총괄 사장. ⓒJTBC
‘JTBC 보도 부문 사장’, 언론인 손석희 씨에 대한 포털사이트 인물 정보다. 그는 더 이상 라디오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의 진행자도, 성신여대 교수인 언론학자도 아니다. JTBC의 사장일 뿐이다. 1992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때 구속까지 됐던 전력이 있는 그가 후배 언론인들이 ‘정권의 특혜’라고 비난한 종합편성채널의 사장으로 간 것은 극적이었다.

손석희 씨의 변신은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외교에 동행해 한국과 미국의 ‘성문화 차이’를 확실하게 인식시키고 온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과 박지만씨 측근이었던 친척과 그 사촌 사이에 벌어진 의문의 살인사건에 대해서 보도했다가 구속 영장이 청구된 주진우 기자에 관한 관심에 묻혔다. 그의 변신은 예상외로 ‘시선 집중’을 받지 못했다.

그의 변신에 대해 당시 페이스북에 ‘그 선배가, 외롭고 높고 쓸쓸한 사람으로 끝까지 남아주기를 바란 것이... 나만의 욕심이었을까?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을 어떻게 뚫고 나갈지...’라고 썼다. 적어도 그가 JTBC로 옮기기 전에 보여준 행적은 언론독립에 대한 진정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의 판단도 대체로 비슷했다. ‘손석희니까 일단 지켜보자, 가서 하는 것을 보고 판단하자’며 유보적이었다.

열흘쯤 지나서 그를 이렇게 보내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편 개국 무렵 언론인의 종편 출연에 대해 맹비난했던 적이 있다. 특히 진보적인 성향의 칼럼니스트 허지웅씨의 종편 출연에 대해 거칠게 비난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당시 허씨를 비난했던 논리는 ‘종편이 정권의 특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언론인들이 종편에 출연해 정당성을 주는 것은 더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라는 것이었다. 이런 논리의 연장 선상에서, 손 씨의 변신은 가장 비난받아야 할 일이다.

손석희 사장이 종편에 무임승차 하지 않게 페이스북에 글을 한 편 올렸다. ‘손석희 교수에게 돌려줘야 할 빚이 있다’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개요는 이렇다. 손석희 사장에게 4년 전 거친 항의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 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가상대결 여론조사에 자신의 이름을 넣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왜 허락도 없이 자신의 이름을 넣었느냐는 항의였는데 그런 여론조사에서 대상자에게 일일이 허락받고 넣지 않는다고 답했다.

당시 여론조사에 손 사장을 넣은 것은 정치여론조사 기관들이 이전에 했던 가상 대결에서 손 사장이 여당 후보(오세훈)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야당 표를 결집할 수 있는 후보의 파괴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넣어야 했다. 손 사장은 민주당 지도부(당시는 정세균 체제였다)에서 자신에 대한 영입을 타진해 왔는데 그들의 입장이 어떻게 되느냐고 항의했고, 나는 그것은 조사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시간이 지나고 그때 내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손 사장의 이번 판단이 증명했다. 당시 손 사장의 반론을 ‘나처럼 올곧은 언론인을 왜 그런 판에 언급해서 피해를 주느냐’로 해석했다. 그런데 4년이 지난 지금 그는 정치행보다 더 엽기적인 종편행으로, 당시 손 사장에게 다양한 선택 가능성이 존재했다는 것이 확인됐다.

손 사장은 JTBC 홍석현 회장으로부터 보도와 관련한 전권을 위임받았다는 식으로 말을 했다. 그리고 자신이 JTBC를 바꿀 것이라고 공언했는데 자신감이 좀 지나친 것 같다. 홍 회장은 손 사장의 능력을 산 것이 아니라 그의 상징가치를 산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능력을 샀다면 진행 전문가인 그를 앵커로 기용했을 것이다. 홍 회장이 비싼 비용을 치르고 산 것은 손 사장의 상징가치다.

당장 손 사장의 종편행 덕분에 종편을 부정하는 지식인들은 ‘고루하고 편협하고 자기만 잘났고, 자기만 옳고 고집스럽고 답답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들이 JTBC에 출연을 거부하겠다고 하면 제작진은 아마 속으로 ‘네가 손석희보다 잘났느냐’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JTBC가 손 사장을 영입한 이유다.

▲ 고재열 <시사IN> 정치팀장.
손 사장에 관한 판단을 유보하자는 사람들은 1년만 지켜보고 판단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1년이 지나면 그는 더 이상 의미 없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상징가치는 JTBC로 옮기는 순간 상실했기 때문이다. 언론인의 핵심은 비판정신, 선배 언론인에 대한 전관예우는 바로 멋진 펀치를 날리는 것이리라. 그를 비판하는데 굳이 1년의 어음을 둘 필요는 없다고 본다. 오늘의 비판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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