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떻게 사람을…’ 끔찍하다는 말로는 표현되지 않았다. 시민은 군인이 가진 몽둥이에 맞아 거리에서 피를 쏟고 있었다. 총을 맞은 듯 보이는 여성의 얼굴은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한 아이는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처연하게 울고 있었다.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기였다. 친구와 함께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인근 시내에 놀러갔다가 이 사진들을 만났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목놓아 울었다. 곁에 있던 어른들이 우리를 다독여 줬던 기억이 있다. 1988년, 내가 처음 본 80년 5월 광주의 모습은 공포였다.

‘어떻게 사람이…’ 집에 와서도 잠이 오지 않았다. 사진 속의 그 사람들, 그들의 가족은? 누가 그런 끔찍한 일을 벌인 것일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할 수 있나?

사실 전에도 ‘광주사태’라고 어른들이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사태가 아니라 민주화운동이며, 이 천인공노할 사건을 일으킨 자가 누구인지 알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국회에서 청문회가 열렸다. 사건의 주범은 ‘본인은~’으로 시작하는 특유의 거만한 말투로 변명을 일삼다가, 살인마라며 국회의원들에게 강한 질타를 받았다. 그리고 해마다 5월 18일이 되면 광주에서 울려 퍼진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전국에 방송됐다.

그런데 요즈음 5·18에 대한 망언과 망발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보수를 사칭하는 일부 인터넷 커뮤니터에서는 5·18 희생자를 매도하는 끔찍한 표현들이 서슴없이 사용된다. 또한 광주민주화운동이 북한 특수부대에 의해 저질러진 폭동이었다는 취지의 종합편성채널 방송이 사람들을 아연실색케 한다.

최소한 민주주의 국가의 언론이라 한다면, 특정집단이 그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을 일삼을 때, 그것을 비판하고 공론의 장에서 몰아내야 한다. 사실 TV조선이니 채널A니 하는 종합편성채널의 뉴스를 본 적도 없지만, 이들이 언론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려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금도라는 게 있다. ‘북한의 대대급 병력 300명이 계엄령 하에서 1980년 광주에 어떻게 침투할 수 있느냐’며 반문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이다. 그들 논리대로 하면 당시 광주 현장에 있었다는 조갑제 씨도 종북 좌빨 언론인이 되는 것인가?

▲ 김광수 KBS 다큐국 PD
역사에 대한 개인들의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양성이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부정까지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가 필요했다’ ‘일본의 행위는 침략이 아니다’며 연일 망언을 쏟아내고 있는 일본 극우세력의 주장을 우리가 관용할 수 있나?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범죄에 대해 진솔한 반성과 사과 대신 변명과 자기합리화를 일삼는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현재 일본 사회에 과연 희망이란 존재할까?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