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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옥의 헛헛한 미디어]

최근 사석에서 만난 지상파 방송의 한 관계자와의 대화 도중, 요즘 어떤 TV 프로그램을 즐겨보는 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 갑자기 그는 음성을 낮추더니 고백(?)하듯 이렇게 말했다. “난 말이지, 요새 <썰전>(JTBC)이 그렇게 재밌더라고.”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털어놓는 줄 알았다며 면박을 주자 그는 겸연쩍은 듯 부연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렇게 반대한 종편(종합편성채널)에다 강용석(전 새누리당 국회의원)까지, 뭐랄까, 대놓고 즐겨본다고 하기엔 괜히 그래서 말이지.”

사실 최근 필자 주변엔 <썰전>을 챙겨본다는 이가 적지 않다. 방송에서 다루는 소재는 분명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어울릴법한 내용들이지만, 진행자를 포함한 3인의 출연진이 이를 풀어내는 과정은 예능만큼, 아니 때로는 예능보다 더 웃기다.

▲ JTBC <썰전> ⓒJTBC
시사 혹은 보도 프로그램에서만 다루는 게 당연해 보였던 정부조직 개편 논란이나 고위공직자 재산, 영수회담, 역사왜곡 등의 아이템을 두고 각기 다른 성향의 전직 국회의원-그것도 아나운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고 정계에서 매장되나 싶던-과 정치평론가가 팽팽한 토론을 이어가나 싶으면 어느새 개그를 주고받고 또다시 설전을 벌이며 시청자들을 쥐락펴락 한다.

게다가 전직 국회의원과 전직 청와대(김대중 정부) 행정관 출신의 정치평론가이기에 풀어줄 수 있는 실명 거론의 뉴스 뒷이야기는 시청자로 하여금 그간 언론-정치인 등 특정 집단에서 ‘그들끼리만’ 독점했던 정보를 ‘공유’하는, 그리하여 나도 그 집단에 대해 꽤나 잘 아는 특별한 존재가 됐다는 느낌까지 받게 한다. 증권가 애널리스트들과 기자, 국회 보좌관 등이 공유하는 이른바 ‘증권가 정보지’를 함께 받아볼 수 있는 위치가 된 듯 말이다.

그렇다고 <썰전>을 가치절하 할 필요는 없다. <썰전>을 시청하며 웃고 만족하는 사이, 어느새 시청자는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정치 등의 시사 이슈가 어떤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는지, 또 이에 대해 어떤 다양한 시선들이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뉴스를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와 포털 사이트에서 편집해 알려주는 ‘가장 많이 본 뉴스’를 통해 소비하는 시대, 힘들게 여러 신문을 뒤적이지 않아도 다양한 시선을 제공해주는 <썰전>에는 분명한 미덕이 존재한다.

문제는 <썰전>만으로 충분치 않다는 데서 발생한다. 여러 정치·시사 이슈를 재밌게, 다양한 시선으로 전달하고 비평하는 것까지가 <썰전>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그저 비평하고 끝내기엔 녹록치 않다. 우리 사회의 구조를,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삶의 모습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곧은 눈으로 우직하게 파헤쳐 드러내는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그렇게 발굴된 현안을 다양성이 보장된 토론 과정을 거쳐 하나의 의제로 만들어낼 토론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다.

▲ ⓒ<뉴스타파>
하지만 작금의 방송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민의가 가장 뜨겁게 드러나는 시기인 대선 기간 동안 공영방송의 (얼마 남지 않은) 시사 프로그램들은 대선 의제와 무관한 소재들만 펼쳐 보이다 내부 구성원들에게까지 “부끄럽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 공영방송들은 지난 4월 진행한 봄 개편에선 그간 명맥만 유지하다시피 하던 시사·토론 프로그램들을 줄줄이 폐지하거나 애써 찾아봐야 하는 시간대로 밀어냈다.

이런 가운데, 공영방송 등의 언론에서 지난 정부 5년 동안 ‘밀어낸’ 언론인들이 만든 <뉴스타파>가 연이어 홈런을 날리고 있다. 얼마 전 대선개입 의혹이 있는 국정원 직원 댓글 사건을 특종 보도하더니 지난 22일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취재를 통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것으로 보이는 245명의 한국인 명단을 공개했다. 파장은 엄청났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곧바로 역외 탈세 감시를 위한 시스템 강화를 말하며 관련 제도 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는 즐겁게 우리 사회를 ‘비평’하는 것만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즐겁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회는 변화하지 않는다. 때문에 언론은 현실을 직시해 감춰져 있는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그 안에서 발현한 의제들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의 과정을 공정하게, 그리고 다양한 의견들의 표출을 보장함으로써 숙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썰전>과 <뉴스타파>, 모두가 작금의 언론, 특히 공영방송에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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