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언론의 예견된 조세피난처 ‘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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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IJ는 왜 ‘뉴스타파’를 선택했나

▲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와 최승호 앵커(오른쪽)가 지난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노조 사무실에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와의 조세피난처 프로젝트 1차 취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노컷뉴스
인터넷 독립 언론 <뉴스타파>가 출범 1년 만에 사회지도층의 역외 탈세 의혹을 특종 보도하면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뉴스타파>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의 공동취재를 통해 지난 22일과 2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은영 한진해운 회장과 이수영 OCI 회장을 포함해 12명이 ‘조세피난처’에 유령회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앞서 지난 22일  <뉴스타파>는 역외탈세와 자금을 조세당국 몰래 은닉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활용한 것이 아닌지 본격적인 취재를 하겠다고 밝혔다.

보도 이후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국세청의 직무유기를 지적하면서 탈세가 의심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세무조사 실시를 촉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공약인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실현하기 위해선 조세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내 대기업들이 조세피난처에 설립한 유령회사에 대한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나섰고, 새누리당은 조세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英 BBC·가디언, 美 워싱터포스트, 日 아사히신문과 손 잡아

정치권과 재계를 흔들고 있는 이번 특종은 ICIJ가 <뉴스타파>를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함께 취재할 한국 파트너로 선정하면서 이뤄졌다. 국내 주요 방송사와 일간지들도 ICIJ측에 물밀 접촉을 시도했지만 ICIJ는 결국 <뉴스타파>에 조세피난처 공조취재를 맡겼다.

제라드 라일 ICIJ 대표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어떤 사람들이 공적인물인지 파악하고, 이들에게 취재를 집중해야 한다는 기준을 적용해왔다”며 “한국파트너도 우리와 같은 기준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뉴스타파>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김용진 <뉴스타파> 대표는 “ICIJ측에서 선택한 이유는 장기간 이 프로젝트에 전념해 취재할 수 있는 조직이라는 판단과 비영리 단체라는 모델에도 동질감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뉴스타파>가 지난해 ‘성역없는 탐사보도’를 내걸고 문을 연지 1년 반 만에 거둔 성과다. 자의 혹은 타의로 KBS와 MBC를 나온 탐사보도 전문 언론인들이 주축이 된 <뉴스타파>가 명실상부한 독립언론으로 존재감을 알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반대로 ‘신생’ 매체인 <뉴스타파>와 ‘한국 파트너’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던 제도권 언론들은 눈 앞에서 특종을 놓친 격이 됐다. ICIJ 측이 대부분의 제도권 언론들이 이 프로젝트를 이끌어가기엔 부적합하다는 판정을 내린 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해외에선 주요 언론사들이 ‘조세피난처’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영국에선 공영방송 BBC와 <가디언>, 미국에선 <워싱턴포스트>, 캐나다는 공영방송인 CBC, 일본에선 <아사히신문>에 소속된 탐사보도 전문기자들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필리핀의 경우 <뉴스타파>와  유사한 비영립 독립 언론인 필리핀탐사저널리즘센터가 프로젝트에 결합했다.  

탐사보도’ 축소, 권력· 자본 비판 못 하는 언론 현실 드러나  

이는 탐사보도 저널리즘의 영역이 줄어든 한국의 실태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정보방송학과)는 “탐사보도는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인데 언론사들이 수익이 줄어들고 매일 기사를 생산하기 바쁜 시스템이다 보니 탐사보도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는 것”이라며 “후원과 기금으로 만들어진 독립언론이 탐사저널리즘에 충실한 보도를 하는 것은 이같은 저널리즘 위축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정치권력과 자본에 자유롭지 못한 국내 언론의 현실이 외부의 시선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된 사례이기도 하다. 한 지상파 방송사의 기자는 “만약 우리가 ICIJ의 한국 파트너로 선정됐다면 <뉴스타파>정도의 보도를 할 수 있을까 자문했을 때 쉽게 답변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보도를 못했을 것이란 생각에 자존심도 상한다”고 토로했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다른 나라에서는 공영방송이나 주요한 매체의 기자들이 역외탈세 자료를 확보해 보도하고 있는데 대다수 국민들에게 생소한 <뉴스타파>가 프로젝트를 맡고 있다는 건 국내 언론의 구조와 시스템이 비정상적이라는 뜻”이라며 “탈세의혹을 제대로 보도할 기존 매체가 없다는 ICIJ의 판단은 국내 언론이 처한 현주소와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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