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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그들’ 미디어가 쳐 놓은 장벽

동성애 코드 흥밋거리로 전락… “긍정적 인식 제고 필요” 방연주 기자l승인2013.05.30 11: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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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us)가 있다”를 내건 퀴어문화축제가 내달 1일부터 16일까지 서울 홍대 걷고 싶은 거리에서 열린다. 퀴어문화축제는 올해로 14년 째 맞았지만 성소수자는 그간 사회적 편견과 일상적 차별에 갇혀 설 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지난 2011년 서울특별시 학생인권조례에 청소년 성소수자의 인권 보장과 관련해 마찰이 빚어졌고, 차별금지법안은 지난 4월 보수 기독교계의 반대로 좌초됐다. 현실의 단면을 담은 미디어에서도 성소수자는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이분법적 접근과 흥미 위주에 머물고 있다.

주류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는 드라마 속 인물로 간헐적으로 등장해왔다. 노희경 작가의 KBS <슬픈 유혹>(1999), MBC<연인들의 점심식사>(2002), 김수현 작가의 SBS <인생은 아름다워>(2010), KBS <드라마스페셜-클럽 빌리티스의 딸들>(2011)에서 본격적으로 성소수자를 주요 인물로 다뤘고, MBC <커피 프린스 1호점>(2007), <개인의 취향>(2010) 등은 동성애 코드를 극적 장치로 이용했다. tvN <코미디 빅리그>, <SNL코리아> 등 일부 예능에서도 동성애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성소수자 문제를 다루는 것만으로 안팎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인생이 아름다워>는 일부 기독교 단체로주부터 방송 중단을 요구를 받았다. KBS 조이의 트렌스젠더 집단 토크쇼 <XY그녀>는 지난해 방송이 나간 지 1회 만에 일부 교육·종교계로부터 “청소년의 성의식을 왜곡시키고 악영향을 미친다”는 항의를 받아 방송을 무기한 보류했다. 여성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 <클럽 빌리티스의 딸들>도 다시보기 서비스가 금지된 상태다.

  ▲ KBS <슬픈유혹>, SBS <인생은 아름다워>, MBC <커피프린스 1호점>, KBS<드라마스페셜-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사진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  
▲ KBS <슬픈유혹>, SBS <인생은 아름다워>, MBC <커피프린스 1호점>, KBS<드라마스페셜-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사진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

이은규 MBC 드라마국 PD는 “동성애는 단막극에서나 택할 수 있는 소재이다. KBS처럼 단막극이 남아있는 방송사가 아니고선 동성애 소재를 전면적으로 다루기 어려운 실정”이라며 “특히 김수현 작가처럼 그간 쌓아온 명성과 돌파력이 있으니 (<인생이 아름다워>가) 가능했지 그렇지 않고서야 소재로 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처럼 ‘금기의 벽’은 조금씩 허물어졌지만 이들에 대한 미디어의 시선은 여전히 어둡고 차갑다. 그리고 단편적이다. 예컨대 성소수자는 핍박받는 인물 또는 판타지적 요소나 호기심을 극대화한 흥밋거리로 미화된다. “우리 중 누군가가 아니라 너희들 중 누구”라는 기본인식이 깔려있다.

남장여자의 사랑(<커피프린스 1호점>), 등장인물이 게이로 오해받거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동성애자라고 속이는 등(<개인의 취향>, <미스 리플리>) 이성애자의 시선으로 동성애 코드를 사용했다. 또 “동성애는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이다”와 같은 대사(<클럽 빌리티스의 딸들>)를 통해 성소수자의 녹록지 않은 삶을 강조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일각에서는 성소수자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대신 오히려 시청자에게 막연한 동경을 북돋우거나 “나와 다르다”는 타자화된 인식을 고착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월 인권포럼 주최로 열린 ‘성소수자 운동, TV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세미나에서는 “성소수자가 등장하는 TV의 기획들이 낯설지만은 않은 시점에서 성소수자들을 둘러싼 말들이 TV를 어떻게 타고 흐르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와 편견의 진원지가 방송이 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종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방송 주 시청자를 이성애자로 설정하고 다루려다 보니 프로그램에서는 성소수자를 낯선 존재, 색다른 존재로 다뤄왔다”며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특이하고, 거리감 있게 보여주니 좀 더 오해나 편견이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6년 동성애 캐릭터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도 “미디어에서 성소수자도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보호받을 대상이라는 점을 긍정적으로 부각시켜야 하는데 오히려 성소수자들이 계속 탄압받고, 억압받고, 차별 받는 이미지를 강조해 부정적 인식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달리 미국 드라마 ABC<모던 패밀리> 속 게이커플은 유쾌하기 짝이 없다. 미첼은 파트너 캠과 베트남 아기를 입양한 5년차로 이성애 커플처럼 좌충우돌한다. 이밖에 성소수자의 일상을 포착한 쇼타임(Showtime)<퀴어 애즈 포크>는 커밍아웃, 동성결혼, 에이즈,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증)등의 키워드를 에피소드와 버무려 시즌5까지 방영해 동성애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시켰다.

최 교수는 “외국 드라마에서 성소수자라고 밝히는 건 프로그램 속 캐릭터의 일부이지 부정적으로 다루거나 당당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비추지 않는다. 성 정체성이 다르다고 여길 뿐 비난받아야 할 이미지로 그리지 않는다”며 “미디어는 성소수자가 자신의 의견과 가치관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씨(좌), 화장품 광고 모델로 데뷔한 하리수 씨(우)  
▲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 출연한 홍석천 씨(좌), 화장품 광고 모델로 데뷔한 하리수 씨(우)

성소수자단체 관계자들은 방송 제작자들이 드라마나 관련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 자칫 인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관련 단체의 자문도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지난 2003년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KSCRC)는 성소수자의 기본용어·전문용어를 비롯해 아웃팅과 초상권보호, 트랜스젠더 관련 보도 시 유념해야 할 개념들을 담은 ‘미디어취재가이드’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종걸 친구사이 사무국장은 “성소수자들의 삶, 이야기가 단순히 흥미성과 선정성으로 다뤄지는 시기는 지났다”며 “기획의도나 접근방식이 성소수자 삶에 대한 진지한 관심 속에서 시작할 때 그 이야기에 재미도 있고 진정성도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달 1일부터 열리는 퀴어문화축제의 주최 측은 “<선데이 서울>의 가십으로,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연예인의 커밍아웃으로, 인권단체의 행동으로, 스스로의 당당한 목소리로 성소수자는 사회에 꾸준히 존재감을 알려왔다”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한 발 나아가는 발판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나타낸다.

우리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 성소수자가 차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경계를 얼마나 허물 수 있을 지 미디어의 역할을 돌아볼 시점이다.


방연주 기자  nalava@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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