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태, 언론의 벌거벗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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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폐쇄, 이틀째 짝퉁 신문 발행 …언론 사유화 인식 확산 영향

편집국 폐쇄로 비화된 <한국일보> 사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15일 용역을 동원해 편집국을 봉쇄한 <한국일보>는 나흘째(18일 현재) 편집국 기자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

한국일보는 지난 17일 박진열 사장 명의의 보도자료을 내고 “회사는 편집국을 폐쇄하거나 봉쇄하지 않았다. 신문 제작을 방해하려는 이들의 출입을 선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고 밝혔다. 하지만 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비상대책위원회 조합원과 비조합원 가릴 것 없이 200여명의 기자들이 전산시스템에 접속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 <한국일보> 발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32면을 발행했던 <한국일보>는 지난 17일 24면, 지난 18일 28면으로 줄었다. 사측은 “정상 수준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틀동안 <한국일보> 기사는 연합뉴스와 자매지인 <서울경제>를 짜깁기하는 기사로 대부분 채워졌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도 사설 집필을 거부하고 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은 18일 성명을 내고 “형식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기사가치 판단, 문장 등에서 기본도 갖추지 못한 채 대폭 감면한 좁은 지면조차 간신히 매우는 데 급급한 신문”이라며 “어떤 기준으로도 도저히 신문으로 부를 수 없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쓰레기 종이뭉치”라고 평가했다. 한국일보지부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신문은 <한국일보> 제호를 붙일 수 없는 인쇄물에 불과하다”고 독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 16일 오후 서울 중구 남대문로 한진빌딩 로비에서 한국일보 기자들이 사주의 퇴진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노컷뉴스
<한국일보>  사측은 현재 노조와의 대화 시도 없이 편집국 폐쇄에 대한 책임을 노조에 떠넘기고 있어 이번 사태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일보지부는 “노조가 17일 밤 쇠파이프로 방화문을 부수고 들어와 용역을 폭행했다”는 사측의 주장에 “프레임을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기 위한 흑색선전”이라고 맞받았다.

장재구 회장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국일보지부는 18일 서울중앙지법에 사측의 출입 방해 및 업무 방해 금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지난 4월 장재구 회장의 배임 혐의로 장재구 회장을 고발한 데 이어 추가 의혹에 대해서도 고발할 예정이다.

논설위원들도 “그동안 회사운영의 문제에 관한 한 구체적 각론에서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경영진과 후배들 간에 다양한 절충과 타협 방안을 모색해 왔다”며 “그러나 상상할 수도 없었던 편집국 전면 폐쇄와 기자 전원 축줄의 참담한 현장을 목도한 순간 언론인으로서 정체성마저 철저히 유린당한 치욕감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경영진을 비판했다.

18일 민주당은 김관영 수석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조치 철회와 장재구 회장에 대한 조속한 검찰 조사를 촉구했다. 민주당은 ”<한국일보> 편집국 폐쇄 사태는 59년 된 <한국일보> 역사에도 없었고 5공 시절에도 없었던 한국 언론사에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한국일보>가 정론직필의 정론지로 바로 설 수 있도록 편집국을 기자들에게 즉각 개방하고 장재구 회장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검찰이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위원들은 고용노동부에 <한국일보> 사태에 대한 중재를 촉구했다.

장재구 회장이 직장 폐쇄라는 초강수를 둔 배경을 놓고 언론의 자유가 위축된 사회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종률 한국기자협회장은 “노조에 고발을 당한 장재구 회장이 내가 사주인데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MBC와 YTN, <부산일보> 등 매체의 성격은 다르지만 공적기능을 수행하는 언론사를 사기업화, 사유화하려는 언론사의 대표들의 인식 때문에 한국 언론 현실이 후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한예종 교수)는 “언론사의 고유한 공적 기능에 대한 사회적인 존중과 합의가 무너지고 자율성이라는 가치가 훼손되면서 사주나 정치 권력들이 전횡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며 “지난 정권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했고 여기에 편승한 사주가 권력을 남용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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