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공분 모아낸 ‘진실 검증’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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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후폭풍 몰고 다니는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인기 비결은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연달아 사회 부조리와  기득권층의 부도덕을 고발하면서 공분을 일으키는 부싯돌이 되고 있다.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의 범인이 오랫동안 형 집행 정지를 받은 과정을 추적한 ‘사모님’편과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다룬 ‘979 소년범과 약촌 오거리의 진실’편은 방송 직후 거센 후폭풍을 몰고 왔다.

‘여대생 청부 살해 사건’의 범인인 윤 모씨의 전 남편이 회장으로 있는 영남제분은 불매운동으로 직격탄을 맞았고, 윤 씨에게 진단서를 발급해준 의사는 검찰 조사를 받았다.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부실 수사했다는 비판이 쏟아진 익산경찰서는 재수사에 들어갔다.

이런 반응에 대해  박기홍 SBS 시사다큐팀장은 “최근 내부에서 평범한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집단적인 분노를 일으키는 현실의 문제는 어떤 것인지 관심을 갖고 지켜봤다”며 “이런 포인트를 잡아 집중한 게 방송 이후 사회적인 반향으로 이어진 것 같다”라고 분석했다.

지난달 29일 방송된 ‘죄와 벌-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그 후’편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900번째 방송이기도 했다. 지난 1992년 미스터리 추리물을 표방하며 첫 방송을 시작한 <그것이 알고 싶다>는 다른 보도·시사프로그램과 차별화하는 구성과 형식으로 시사영역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처럼 시사프로그램이 심층·탐사보도의 역할에 충실하면서도 방송 전부터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 상위에 오르는 화제성까지 갖춘 경우는 드물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면서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고 있는 김상중 씨. ⓒSBS

흡입력 강한 이야기와 끈질긴 진실검증

우선 흡입력을 높이는 스토리텔링과 재연 기법이 꼽힌다. 지난 5월 25일 방송된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 편은 ‘사모님’ 윤 씨가 사위와  하 양에게 미행을 붙이고 이를 지켜보는 장면은 스릴러 못지않은 섬뜩함을 안겼다. ‘사모님’ 편을 연출한 김재원 PD는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했던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함이 미행 장면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공분도 컸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피해자의 아버지를 인터뷰하면서 “아버지의 사무친 한과 부정을 느꼈다”는 김 PD는 제작에 앞서 딸이 납치된 아버지의 추적극을 그린 영화 <테이큰>을 참고하기도 했다.

결론을 앞세운 전개에서 벗어나 추리서사를 활용해 시청자들을 방송 끝까지 이끌고 가는 방식은 <그것이 알고 싶다>의 ‘전매특허’다. 객관적인 사실만 전달하는 시사프로그램과 달리 흥미를 유발하는 전개와 드라마를 입힌 재연은 마치 장르물을 보는 것처럼 시청자들이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이미 다른 보도시사 프로그램에서 다룬 소재를 <그것이 알고 싶다>가 새롭게 조명할때 유독 시청자 반응이 큰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07년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고 있는 탤런트 김상중 씨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호소력 있는 중저음과 강렬한 눈빛은 시청자들의 공감과 각성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다. 제작진들이 “단순한 진행자가 아닌 제작진으로 여긴다”고 말할 정도로 프로그램 내용에 대해 관심과 의욕도 큰 것으로 알려졌다. KBS <개그콘서트>에선  “그런데 말입니다”로 대표되는 김상중 씨의 말투와 진행 스타일을 패러디한 코너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드라마와 같은 이야기와 사회적인 큰 반향도 진실에 다가가려는 제작진의 노력과 검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 편을 썼던 장윤정 작가는 “통상 6주마다 아이템을 준비해서 방송하지만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개인적으로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자료를 취합했다”며 “30~40GB 분량이 되는 영상자료와 진술서, 재판기록 등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과학적인 실험을 통해 유죄를 받고 복역한 최 군이 범행을 저지를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는 택시의 운행상황을 보여주는 타코미터 기록에 대한 감정을 통해 최 군이 물리적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없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난해 다룬 청테이프 살인사건에선 범행장소 재연과 실험에 필요했던 단종된 화장품 용기를 몇개월 동안 수소문해 찾아냈다. 지난 1993년과 2012년 두차례 낙하 실험 등을 통해 장준하 선생의 타살 가능성을 제기한 것도 <그것이 알고 싶다>의 진실 검증의 대표적인 사례다.

장 작가는 “PD 6명과 작가 5명 모두  법의학 입문서 한권씩은 정독했을 것”이라며 “최고의 노동강도를 자랑하는 팀답게 매일 밤 늦게까지 사실 관계를 체크하는 게 일상”이라고 전했다.시사 프로그램에선 한 번의 작은 실수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야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제작진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김재원 PD는 “스토리텔링과 재연장면만 놓고 보면 한쪽 방향으로 몰아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는 철저하게 사실에 기반한다”며 “세심한 취재과정이 없었다면 시청자들을 설득할 수도 없었고, 이 정도의 호응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과)도 “옆에서 지켜본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와 작가들은 수사기관보다 강한 의지를 갖고 정보를 찾아 다닌다”며 “범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객관적인 사실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보였기 때문에 시청자들도 공감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편. ⓒSBS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수상한 배려-귀족학교 반칙 스캔들'편. ⓒSBS

“국정원‧NLL 피해가지 않는다”

시청자들의 관심과 기대가 커지는 데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의 관심사가 정치ㆍ사회 이슈로 확장되면서 제도 개선에 관심을 갖게 된 것과도 밀접하다. 

방송 초기부터 <그것이 알고 싶다>의 흥행을 보증한 건 미제사건이었다. 올해 상반기만 보더라도 범죄사건 의혹을 파헤친 편의 시청률이 높았다. 상반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방송은 사체가 훼손된 신원미상 여성 살인사건을 다룬 ‘지워진 이름- 그녀는 누구인가’(1월 12일 방송, 12.7%)과 변사체로 발견된 임산부 살인사건을 파헤친 ‘드들강 미스터리- 수화기 너머 또 다른 목소리’(3월 16일, 10.4%)편 이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굵직한 사회 문제를 조명하는 등 시사성도 뚜렷해지고 있다. ‘장준하 의문사’와 국제중 입시비리 의혹‘ 등의 굵직한 사회 이슈를 조명하고, ‘입양특례법’ 제정과 재심 청구 제도 개선에 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범죄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데 집중했다면 이젠 이런 억울함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데도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 흐름에는 흥미 위주의 연성 아이템에 치우쳐 있다는 안팎의 비판과 내부 제작진의 요구도 반영됐다. 박기홍 시사다큐팀장은 “2011년까지 범죄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연출진의 스토리텔링과 화면구성 능력을 키워왔다”며 “시청자들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이야기와 비주얼을 토대로 사회이슈에 접목하는 시도를 점진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욱 <그것이 알고 싶다> 팀장도 “NLL과 국정원 정치 개입 문제 등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 이슈를 피해갈 생각은 없다”며 “다만 워낙 민감한 사안인데다가 그동안 나온 내용을 정리하는 수준에서는 방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 식으로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있는지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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