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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PL 허용 후 홈쇼핑 수준 드라마 ‘홍수’…심의 제재도 껑충, 세부 기준 확립해야

조선시대 저잣거리엔 ‘목우촌’이란 이름의 고깃집이 있다.(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장차 영부인 자리에 오르는 욕망의 여인(주다해)은 살인교사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음모 모의를 어두컴컴한 밀실이 아닌 환하게 공개된 카페 ‘드롭탑’ 안에서 하는데(SBS <야왕>), 같은 카페에서 서미도는 고마운 남자와 사랑하고 싶은 남자 중 누구를 선택할 지 갈등한다.(MBC <남자가 사랑할 때>)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인 엄마와 자신을 키워준 엄마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순신은 한동안 ‘블랙스미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KBS 2TV <최고다 이순신>) 그곳은 지난해 국민커플로 불렸던 천재용와 방이숙의 알콩달콩 연애 무대였던 곳이기도 하다.(KBS 2TV <넝쿨째 굴러온 당신>)

■평균 10개 업체가 제작비 지원= 드라마 등 TV 속 간접광고(PPL)가 도를 넘었다. 드라마 한 회가 끝나고 나면 “드라마를 본 건지, 드라마타이즈 기법을 사용한 CF를 본 건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불만이 뒤따르고, 이런 현실은 코미디 프로그램(KBS 2TV <개그콘서트> ‘시청률의 제왕’)은 물론 방송 현장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SBS <드라마의 제왕>)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10년 1월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지상파 방송에까지 간접광고가 허용되며 두드러진 변화로, 방송사들의 간접광고 관련 매출뿐 아니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징계도 껑충 뛰었다.

KBS·MBC·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간접광고 매출은 시행 첫해인 2010년 30억원에서 이듬해 484%나 증가해 174억원까지 뛰었고 2012년과 올해 각각 263억원, 350억원(추정치)까지 치솟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일 서울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는 주간 시청률 순위 20위내 드라마의 간접광고 실태 모니터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모니터 대상 12개 드라마에 총 110개의 제작지원이 붙고 있었다. 시대극인 KBS 2TV <삼생이>를 제외하면 1개 드라마 당 평균 10개의 제작지원 업체가 붙고 있는 것으로, 제작협조·장소협조·물품협조·협찬 등을 더하면 사실상 수십 개 업체에 대한 간접광고를 포함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례로 지난달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백년의 유산>의 경우 ‘오뚜기’가 제작지원을 했는데, 주요 등장인물이 일하는 곳을 식품회사로 설정해 해당 업체명을 수시로 노출했을 뿐 아니라, 여주인공의 친정인 국수집 이름을 오뚜기 판매제품인 ‘옛날국수’로 했다.

SBS 아침드라마 <당신의 여자>의 제작지원은 분식전문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맡았는데, 드라마의 주요 공간배경인 회사 사무실·로비·엘리베이터 등 곳곳에 광고업체명과 극중 업체명을 함께 붙여 놓았다.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다 이순신>에서 주요 배경으로 연예기획사와 이탈리아 파스타·피자 전문점, 아웃도어 매장이 나오면서 제작 지원사인 가비아(Gabia), 블랙스미스, 네파 등의 상호명이 수시로 노출되고 있다.

광고 효과를 높이려 극 전개와 상관없는 엉뚱한 설정을 불쑥 등장시키는 사례도 빈번한데, SBS <야왕>의 경우 극중 인물 백도경이 뜬금없이 아들의 모교를 찾아 학생들에게 신발을 기부하고 KBS 2TV <최고다 이순신>에서 등산복 브랜드 마케팅 실장으로 등장하는 극중인물 이유신이 봄옷을 선물한다며 해당 브랜드명이 노출된 등산복 매장으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 옷을 고르게 한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의 주인공들은 2012년 6월의 시간을 살고 있을 때도 2013년산 최신형 휴대폰을 사용하는 ‘반전’을 보여주기도 한다.

늘어난 간접광고만큼 방심위 광고 관련 제재건수도 수직 상승하고 있다. 간접광고 시행 첫해인 2010년 14건(전체 제재건수의 5.7%)에 그쳤던 지상파 방송 제재건수는 2011년 39건(10.2%), 2012년 59건(22.2%)이나 됐다. 올해도 기록 경신은 문제없을 전망으로, <PD저널> 집계 결과 지난 1~5월 사이 방심위가 방송심의규정 제46조(광고효과의 제한) 위반으로 지상파 방송을 제재한 건수는 25건(전체 제재건수의 37.3%)을 기록했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 SBS <야왕>, MBC <백년의 유산>, KBS 2TV <최고다 이순신>
■모호한 간접광고 기준, 구체화 필요=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청권 침해에 대한 지적에 방송사들도 일단 수긍하고 있지만 볼멘소리도 나온다. 법을 개정해 간접광고를 허용해 놓고, 정부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제공하지 않아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가능한 것인지 판단하기 모호하다는 문제제기다.

일례로 현행 방송법 제73조 2항 7호는 간접광고를 ‘방송프로그램 안에서 상품을 소품으로 활용하여 그 상품을 노출시키는 형태의 광고’로 정의하고 있는 반면, 협찬고지에 대해선 동법 제2조 22호에서 ‘타인으로부터 방송프로그램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필요한 경비·물품·용역·인력 또는 장소 등을 제공받고 그 타인의 명칭 또는 상호 등을 고지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듯 협찬고지의 범위가 상대적으로 넓을 뿐 아니라, 간접광고와의 경계 또한 모호한 상황이다. 게다가 규제 주체 또한 각각 방송통신위원회와 방심위로 이원화 돼 있다. 그러다보니 방송 현장에선 협찬으로 간접광고의 효과를 거두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심의 과정에서도 둘을 구분하는 데 애를 먹는 게 사실이다. 때때로 합법적인 간접광고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문철수 한신대 교수(미디어영상광고홍보학부)는 지난 6월 한국방송협회에서 발행한 ‘방송문화’에 게재한 기고(자율적인 간접광고 가이드라인 마련의 필요성)에서 “세계적으로 간접광고는 PPL과 협찬고지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통용된다”고 지적했다. 문 교수는 “영국의 경우 간접광고와 협찬은 ‘상업적 제시(Commercial Reference)’라는 큰 틀에서 관련 규정을 조정해 오프콤(Ofcom)이 총괄 담당함으로써 규제 주체와 규정의 통일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한국도 프로그램 내 광고로 비추어지는 협찬과 간접광고 간의 통합 규정을 통해 법의 일관성과 예측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59조의 3은 방송 분야 중 오락과 교양 분야에 대해서만 간접광고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이 중 어린이 프로그램과 보도·시사·논평·토론 등 객관성과 공정성이 요구되는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선 간접광고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시사와 오락, 보도와 교양 등이 결합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며 방송 프로그램의 장르 구분이 쉽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밖에도 현행 방송법 시행령 제59조의 3은 간접광고와 관련해 광고 상품 노출시간이 해당 방송 프로그램 시간의 100분의 5, 표시의 크기는 전체 화면 크기의 4분의 1을 넘어서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너무 포괄적인 기준으로 간접광고의 허용범위와 노출 빈도, 노출시간과 횟수 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심의규정과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국방송협회가 지난 1일 지상파 방송사와 학계, 광고주, 미디어렙, 시민단체, 정부 및 유관기관 등이 참여하는 연구반을 구성해 간접광고에 대한 방송사의 자율적인 규제 기준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도 일련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다. 연구반 위원장을 맡은 문철수 교수는 “간접광고의 모호한 규제 조항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해석이 내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YMCA는 “간접광고와 협찬 등을 구분하기 위한 세부적인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는 동시에, 과도하게 높은 출연료와 작가료 현실화 등 제작비 구조 개선을 통해 (제작비의) 균형을 맞추고, 시청자들이 드라마 속 간접광고와 협찬을 구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제공을 하기 위한 관련 규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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