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따져보기] 임성한 월드가 겪는 지각변동의 ‘위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임성한 작가의 작품을 말하면 꼭 함께 붙는 수식어가 있다.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 임 작가의 작품이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이유는 파격적 설정과 전개에 있었다.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새어머니의 뺨을 때리는 딸(<인어아가씨>의 아리영), 부모를 내쫓는 자식들(<보석비빔밥>)처럼 기존의 사회통념에 충격을 주는 장면들, 속물스러운 욕망을 드러내는 인물들, 게다가 차마 남을 향해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거침없이 날려주는 강렬한 대사들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든다.

‘임성한 월드’의 강렬함은 등장인물이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식의, 요즘 인터넷 유행어로 ‘병맛’스러운 전개들까지도 시청자들이 재미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절정에 이른다.

‘막장’이란 수식어로 칭해졌지만, 사실 40~50%를 넘나드는 시청률은 단지 강렬한 설정과 전개가 보증해주는 것이 아니다. 캐릭터가 살아있고, 황당한 듯 하지만 사실은 치밀한 구성을 가지고 전개된다. 임성한 작가가 보는 이를 쥐었다 놓았다 하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을 가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 MBC <오로라 공주> 속 인물 나타샤. ⓒMBC

현재 방영되고 있는 <오로라공주>(MBC)도 임성한 작가의 작품답게 연일 새로운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그러나 이전의 논란들과는 점차 그 성격이 달라지고 있어 보인다. 배우들의 석연치 않은 줄줄이 하차와, 작가와 친인척 관계에 있는 특정배우에 대한 편애설 등은 시청자의 눈을 작품으로 향하게 하는 논란이 아니라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논란이다.

이러한 하차논란과 편애설은 <오로라공주>의 캐릭터들이 무너지고 극의 방향이 종잡을 수 없어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와 맥을 같이한다. ‘임성한 월드’를 만들어온 작가의 배짱과 자신감이 작가 자신에게 독이 되는 시점이 온 걸까.

가장 최근 하차한 성소수자 캐릭터도 작품의 재미를 위해 등장해 소모적으로 사라진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타샤’(송원근 분)라는 캐릭터는 좋아하는 남자를 ‘오빠’라고 부르고, 여자처럼 절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남자와 결혼하는 꿈을 꾼다. 나타샤에게 “겉만 남자에요”라는 설명까지 곁들여지는 걸 보니 트랜스젠더로 설정된 것인지, 아니면 게이와 트랜스젠더를 구분 못하는 일반의 편견이 작동된 것인지 모호하다.

그런데 나타샤가 남자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알리는 과정에서 ‘아버지한테 많이 맞아서’라는 이유까지 등장하니 이 캐릭터가 ‘남성성이 거세된 남성’이라는 게이에 대한 편견이 작동된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쨌든 성소수자 캐릭터의 안방 일일극장 등장은 사건임에는 틀림없고, 배우의 연기력에 힘입어 인기캐릭터가 되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그 호감이 희화화된 캐릭터 묘사와 불행한 가정사를 배경으로 시집살이까지 하는 모습까지 등장시켜 연민을 불러일으킨 덕이라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게다가 나타샤는 박사공(김정도 분)의 새로운 여성 애인의 등장으로 퇴장하는데, 또 다른 여성캐릭터(황자몽, 김혜은 분)가 나타샤에게 반했다는 암시까지 주고 간다. 소수자캐릭터를 꼭 이런 식으로 이용해야만 하나, 묻고 싶어질 뿐이다.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