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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담아둔 고민. 청소년에게 귀 기울여요

[인터뷰] EBS 라디오 ‘경청’ 방영찬 PD 최영주 기자l승인2013.08.21 02: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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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영찬 EBS PD  
▲ 방영찬 EBS PD
“이런 이야기. 처음 했어요”

지난해 11월 방송된 EBS <학교의 고백> ‘말해줘서 고마워’ 편에서 청소년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자신들의 속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창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3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1년 15~24세 청소년의 사망원인 1위는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다. 청소년 10명 중 1명이 자살 충동을 느끼고 있다. 2011년 한 해 동안만 약 370여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문가들은 청소년 자살이 늘고 있는 원인이 소통 부재와 고립이라고 이야기한다.

지난 2월 방송을 시작한 EBS 라디오 <경청>은 국내 최초 청소년·청년 고민상담 프로그램으로 평일 밤 12시부터 2시까지 ‘세상에 하나뿐인 당신의 이야기를 듣는 라디오’라는 슬로건 아래 청소년과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 19일 서울 우면동 EBS방송센터에서 방영찬 PD를 만나 지난 6개월간 <경청>과 함께 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방 PD는 “라디오에서 청소년과 청년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이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다는 방증”이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라디오에 오기 전 학교교육부에서 일하면서 들었는데 학생들이 학교 폭력을 당하거나 다른 문제가 있어도 학교에 있는 상담소는 대부분 성적이나 진로 상담 위주라 상담이 힘들대요. 여기에 부모들은 맞벌이로 바쁘고 친구에게 털어놓기 힘든 고민도 많아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게 어려운 상황이에요.”

이 같은 상황에서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창구를 만들어주자는 취지로 <경청>은 탄생했다. 그러나 모든 고민에 해결책을 제공하는 것보다 “귀를 기울여 듣는다”는 ‘경청(傾聽)’의 뜻처럼 <경청>은 한 사람에게 한 시간 가량을 할애한다. 그러다보니 해결책보다 상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방 PD는 “해결책을 제시하려다 보면 상담이 교훈적이거나 지시하는 쪽으로 흐를 수 있는데 우리는 마음 속에 담아두기만 했던 말을 풀어내길 바라는 것”이라며 “그래서 전문가보다는 만화가, 뮤지션 등 다양한 직업군의 경청지기를 섭외해 친구처럼, 언니나 형처럼 이야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경청지기’는 고민을 들어주는 사람이다. 현재 <경청>에서는 요일마다 다른 경청지기들이 고민을 들어주고 있다. 월요일에는 가수 타루와 기타리스트 김민석, 화요일에는 웹툰작가 이종범과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 수요일에는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과 뮤지션 이이언, 목요일에는 문학박사 이영남과 진보라, 금요일에는 고등학교 윤리교사 출신의 권구익과 밴드 ‘사람또 사람’의 오건훈·정소임 씨가 활동 중이다.

  ▲ EBS 라디오 <경청>의 수요일 경청지기인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씨(왼쪽)와 뮤지션 이이언 씨(오른쪽). ⓒEBS <경청>  
▲ EBS 라디오 <경청>의 수요일 경청지기인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씨(왼쪽)와 뮤지션 이이언 씨(오른쪽). ⓒEBS <경청>
이 가운데 권구익 경청지기는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불리며 학교폭력 사건에 경종을 울린 고 권승민 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방 PD는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인 만큼 실제 교직에 있는 선생님을 찾던 중 지난 2월 EBS에서 방송된 <다큐프라임-학교 폭력>에서 권구익 씨를 보고 섭외하게 됐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아들이 살아있을 때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지 못한 게 한이 됐는데 그 대신 청소년들의 말을 들어주고 싶다며 결단을 내리셨죠. 학교 폭력의 희생자이기도 하지만 20년 넘게 교직생활을 해 현장 경험이 풍부하세요. 그래서 학교 문제나 학교 폭력 문제로 고민하는 청소년들을 많이 연결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권 선생님을 찾는 사람도 많아졌죠.”

그 밖에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경청지기의 경우 직업적 특성을 살려 갈등이나 우울증에 대해서도 꼼꼼히 상담해준다.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좀 더 세부적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전문적인 상담을 진행하기도 한다.

전파공학과 출신의 뮤지션 이이언이나 심리학과 출신의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는 이종범 작가는 진로에 고민 있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주로 들어주고,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임상역사학자이기도 한 이영남 박사는 인생의 기로에서 고민하는 청년들에게 삶을 되돌아볼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경청>에서 경청지기가 절반의 역할을 담당한다면 나머지 절반은 ‘공감지기’, 바로 청취자가 맡는다.

“청취자들을 ‘공감지기’라고 부르는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를 많이 보내주세요. 사연의 당사자와 비슷한 여건의 청취자도 있고, 청소년들의 이야기 들어보니 부모로서 미안하다는 청취자도 있어요.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는 공감지기가 되어 다른 사람을 위해 문자를 보내기도 해요. <경청>이 중심이 돼서 하나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선순환인 거죠.”

이렇듯 지난 6개월간 바쁘게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해결책을 따로 제시하지 않고 ‘듣는’ 프로그램인 만큼 암울하게 끝이 나거나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일도 있어 제작진이나 청취자 모두 지칠 때도 있다고 방 PD는 토로했다.

  ▲ EBS 라디오 <경청>의 목요일 경청지기인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 씨(왼쪽)와 문학박사이자 임상역사학자인 이영남 박사(오른쪽). ⓒEBS <경청>  
▲ EBS 라디오 <경청>의 목요일 경청지기인 재즈피아니스트 진보라 씨(왼쪽)와 문학박사이자 임상역사학자인 이영남 박사(오른쪽). ⓒEBS <경청>
그럼에도 방 PD는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학생을 전문상담기관과 경찰서에 연결해 도움을 주거나 엄마와의 갈등을 겪던 학생이 방송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한 후 오해가 풀리는 것을 볼 때 다시금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중 자살하고 싶다며 구체적인 계획까지 세웠던 여학생의 사연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고 방 PD는 말했다. 사는 게 재미없고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은 학생이 걱정돼 방송 후에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경청지기, 작가, PD를 포함해 다섯 명이 1시간 30분 동안 더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일주일 후 학생에게서 문자가 왔는데 죽지는 말아야겠다고 했어요. 부모님도 자신의 이야기를 10분 이상 들어준 적이 없다면서 이렇게 길게 들어준 것은 처음이라고 했어요. 감동받았죠. 이 친구에게 이번엔 부모님께 먼저 다가가서 경청해보라고 했어요. 경청은 공감이고 소통의 시작이거든요.”

지난 6개월 한 학기를 마친 <경청>은 오는 26일 가을편성을 맞아 새롭게 변화한다. 경청지기를 4명으로 줄이고 PD가 직접 방송에 출연해 경청지기와 함께 <경청>을 이끌어간다. 또한 ‘열린 경청’, ‘경청 에세이’ 코너를 마련해 새롭게 단장할 계획이다.


최영주 기자  yj719@pd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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