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방통위 종편 특혜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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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 가능성 불분명한 재승인 심사안…언론계 공청회 요구도 ‘모르쇠’

내달 초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안 의결을 앞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 이하 방통위)에 ‘재승인 불허’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안이 제출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고 있다.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 자체가 ‘요식 행위’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언론·시민단체들이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 기준안 의결 전 검증과 보완을 위한 공청회 개최를 제안하고 나섰지만, 방통위는 “의견수렴이라면 이미 충분히 했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9월 초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기준안에 대한 의결을 예정하고 있는 가운데, 현재 방통위에 보고된 안이 ‘재승인 불허’ 기준을 포함하지 않고 있어 논란이다. 사진은 지난 27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방통위 전체회의를 이경재 위원장이 주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재승인’ 아닌 ‘승인 연장’ 심사= 방통위 의뢰로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안을 만든 연구반이 지난 21일 방통위에 제출한 안은 ‘방송의 공적책임·공정성·공익성 실현가능성’과 ‘방송 프로그램의 기획·편성 및 제작계획의 적절성’ 등 두 개의 핵심 심사항목 점수가 배점의 60% 미만일 경우 해당 종편 사업자가 획득한 총점과 상관없이 조건부 재승인 하기로 하는 내용이다. 과락제 도입 등은 개인별 의견으로 방통위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종편 재승인 심사안은 ‘불허’ 기준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추혜선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형식적으로 650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조건부로 승인을 할 게 아니라 승인을 거부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뒤 공정한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연구반에 참여하고 있는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는 “종편 출범 전부터 우려가 높았던 공정성과 방송의 창의성, 다양성 등을 심사하는 항목에는 과락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의 개선을 위해 언론노조와 언론연대,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23일 방통위에 공청회를 제안했다. 사회 전체의 의견 수렴과 합의 절차를 생략한 채 벌써부터 문제제기가 나오고 있는 종편 재승인 심사안을 강행처리할 경우, 방통위의 재승인 심사는 시작부터 부실·불공정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는 문제제기에 따른 것이다.

이들 3단체는 방통위의 재승인 세부심사 기준안 의결 최소 7일전, 학계와 언론·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가운데 공청회를 개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방통위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김용일 방송지원정책과장은 27일 <PD저널>과의 통화에서 지난 12일과 21일 각각 열린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과 유승희 민주당 의원 주최 종편 재승인 심사안 관련 토론회를 언급하며 “시민사회 등 각계의 의견수렴을 했다”고 말했다.

방통위 차원의 공식적인 의견 수렴과는 차이가 있지 않냐는 지적에 김 과장은 “어떤 루트를 통했건 의견 수렴을 한 것이고, 내부적으로 (심사기준안을) 보고하고 의결하는 등의 과정을 소화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채수현 언론연대 정책위원장은 “방통위의 공청회 거부는 부실한 종편 승인 심사에 대한 책임이 있는 방통위와 종편의 또 하나의 ‘짬짜미’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며 “종편 재승인 심사 기준안에 대한 별도의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정 없는 시정명령?= 불허 없는 재승인 심사 가능성에 대한 논란과 함께 방통위의 ‘시정’ 없는 ‘시정명령’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방통위는 지난 21일 조선·중앙·동아·매경 등 종편 4사에 대한 시정명령을 의결했다. 이들 종편이 승인신청 당시의 사업계획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특히 콘텐츠 투자비율과 재방송 비율을 지키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지난 7월 방통위가 시정명령을 의결했을 당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종편 4사의 승인조건 위반 현실은 심각하다. 지난 2011년 12월 출범한 종편들은 방송 첫 해 동안 방송시간의 절반 이상을 재방송으로 채웠고, 편성의 30~50%를 보도 프로그램으로 메웠다.

과거 보도채널이었던 MBN은 방통위에 제출한 사업계획에선 보도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을 22.7%로 적어냈으나 실제로는 편성의 절반이 넘는 51.5%를 보도에 할애했다. TV조선과 채널A도 보도 프로그램 편성비율을 각각 24.8%, 23.6%로 적어냈지만 실제 35.9%, 34.1%를 보도로 채웠다.

콘텐츠 투자계획 역시 공수표였다. 종편들은 지난해 콘텐츠 투자(자체제작·외주제작·구매)를 계획의 47.4%밖에 이행하지 않았는데, TV조선의 경우 지난해 1575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음에도 실제 투자액은 604억원에 그쳤고 MBN도 1660억원을 계획했으나 현실에선 711억원을 투자했을 뿐이다. JTBC와 채널A도 각각 2196억원 중 1129억원, 1804억원 중 985억원을 투자하는 데 그쳐 절반 수준의 이행실적을 보였다.

이와 관련해 방통위는 TV조선과 JTBC, 채널A, MBN 등 종편 4사에 대해 사업계획서에 적어냈던 지난해 콘텐츠 투자계획 중 미이행 금액과 올해 계획한 투자금액을 오는 12월 말까지 이행해야 하며, 재방 비율도 준수하라고 시정명령을 했다.

그렇다면 종편들은 이 같은 시정명령을 이행할 의지가 있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다. 당장 MBN이 지난 2010년 종편 사업을 위해 방통위에 제출했던 사업계획서에 대한 변경을 지난 9일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예상보다 많은 4개 사업자가 선정되고 광고 시장의 상황 또한 녹록지 않은 만큼 콘텐츠 투자 금액과 재방비율 등의 축소를 허용해 달라는 것이다.

만일, 방통위가 MBN의 사업계획 변경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방통위가 지난 21일 내린 시정명령은 변경된 사업계획에 대한 것으로 바뀌게 된다. 즉, 시정명령의 효력은 그대로나 대상이 되는 내용이 바뀌는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콘텐츠 투자계획을 줄이는 등의 내용으로 사업계획 변경이 승인될 경우, 종편들은 변경된 사업계획에 따라 시정명령을 이행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종편이 신규 매체라는 점과 광고시장이 어렵다는 점 등을 감안해 종편들의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승인심사는 도대체 왜 필요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장 언론연대는 지난 23일 발표한 논평에서 “(종편들이) 시정명령을 통보받자마자 사업계획 변경 요청을 했다는 건 시정명령을 지킬 수 없다, 지키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을 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종편의 사업계획 변경 신청을 즉각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연대는 “종편들은 출범에 반대하는 대다수 국민에게 ‘사업계획대로 방송을 잘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승인장을 받아갔고, 개국 이후에도 온갖 사회적 특혜를 누려왔다”며 “이제와 ‘배째라’ 식으로 나오는 건 전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벌인 격”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현행 방송법 18조는 방송사가 승인조건 위반에 따른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방통위로 하여금 △승인취소 △6개월 이내 영업정지 △광고중단 △승인기간 단축 등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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