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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변화의 물결 평양 (2)

경쾌한 째즈 바이올린 소리에 눈을 떴다. TV모니터에는 어깨를 드러낸 튜브 탑 원피스에 짧은 치마를 입은 3명의 바이올리니스트와 1명의 첼리스트가 익숙한 무대매너로 연주를 한다. 3단으로 나뉘어 놓은 입체 무대 위로는 LED 화이트빔 라이트가 쏟아지고, 뒷벽은 기하학무늬가 들어간 풀 HD 대형 스크린으로 장식되어 있다. 연이어 ‘푸니쿨리 푸니쿨라’, ‘기병대마치’, ‘오! 데니보이’ 연주가 이어진다. 음악이 빨라지자 젊은 관객들은 무대 앞으로 뛰어나와 춤을 춘다. 흥에 겨워 손을 높이 쳐들고 좌우로 흔드는 중년 관객들도 눈에 띈다.

“선생님, 보기 좋으십니까?”
승무원의 목소리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가 평양행 고려항공 JS156기 안이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었다. 그 만큼 뮤직비디오의 영상이 북한의 이전 것과는 달랐다.

공연의 주인공은 ‘모란봉악단’. 가수 7명과 11명의 연주자로 구성된 이 그룹은 2012년 7월 6일 시범공연을 시작으로 세 차례 공식공연을 열었다. 첫 공연부터 파격적인 의상과 역동적 무대매너, ‘로키’, ‘마이웨이’ 같은 서양음악 연주로 북한 안팎에서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모란봉악단의 공연이 북한 조선중앙TV에 중계된다는 소문이 돌자 평양의 장마당에서는 ‘오늘 몽땅 접고 집에 들어가서 테레비 보자!’라고 할 정도였다. 특히 모란봉악단의 악기조 조장(리더)인 바이올리니스트 ‘선우 향’은 북한의 아이돌이다. 젊은이들은 그녀의 화장법과 장신구에 까지 관심이 집중되어 있으며, 무대 가까이 앉기 위해 서로 경쟁을 벌이기도한다.

▲ 모란봉악단.
흥미로운 일은 모란봉악단에 대해 젊은이들만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는 것. 나이든 사람들 중에도 공연을 보면서 ‘속으로는 피가 끓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새로 조직되었다. 북한당국은 모란봉악단을 통해 변화를 예고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모란봉악단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감지한다. 모란봉악단은 김정은 위원장이 제시하는 변화의 아이콘인 셈이다. 그리고 김정은 위원장의 자유분방한 현지지도 모습과 부인 리설주의 친근한 행보는 이런 주민들의 기대를 확인시켜준다.

방송인으로서 볼 때 모란봉악단의 공연은 공연방식 면에서 획기적인 변화이다. 북한은 원래 극장공연방식을 고수했다. 북한은 봉화예술극장, 만수대예술극장, 동평양대극장 등 1천 5백석이 넘는 최고급 극장에서 혁명가극이나 예술공연을 진행했다. 2003년, 평양에 현대아산의 지원으로 ‘류경정주영체육관’이 준공되었을 때 개관기념공연을 같은 장소에서 개최하자고 SBS가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당국 ‘공연은 극장에서 하고 체육관에서는 경기를 해야 한다’고 완고히 반대했다. 그리고 2005년의 ‘조용필 평양공연’을 같은 체육관에서 개최하자는 SBS의 제안에 북한당국 역시 같은 논리로 반대했다.

체육관 공연은 극장공연에 비해 준비과정이 훨씬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극장공연은 기존설비에 음향시설만 새로 갖추면 되지만, 체육관공연은 음향시설 외에도 트러스트, 조명, 세트장비 까지 새로 갖추어야 하므로 비용이 많게는 열 배 가량 든다.

하지만 체육관공연은 일단 관객을 많이 모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위의 두 차례 공연 모두 결국은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개최되었는데, 관람객 수가 극장의 3 ~ 4배가량 되는 7000명 선이었다. 또한 극장공연은 평면적이지만 체육관에서는 입체적인 무대를 설치할 수 있으므로, 훨씬 강렬한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물론 기존의 격식과 방식을 벗어나야 하는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공연에 방해되는 박수를 치거나 환호성을 질러서는 안 되는 ‘사회주의 공연예절’에 따를 경우, 체육관공연은 무척 위험한 시도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큰 간극이 있던 공연방식에서 남과 북이 근접했다는 사실은 다행스럽다. 진정한 통일이 문화적 통합이라면, 대중문화를 통한 대중들의 정서적 공감대의 형성은 통일을 위한 매우 유용한 접근방식이다. 그리고 북이 시인하든 하지 않든, 북한대중공연방식의 이런 변화는 남북한대중문화교류의 영향이다.(2005년 조용필평양공연 당시 2,000여 명의 북한 문화일꾼들이 관람했고, 공연방식에 대해 그들이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필자는 기억한다.)

북한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공연단의 등장과 공연방식의 변화를 북한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로 확대해석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대중들의 변화욕구는 대중문화 속에서 읽을 수는 있다. 북한주민들의 변화에 대한 욕구는 사실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이다. 북한의 바람직한 변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 시점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모란봉악단’과 ‘비스트’의 합동공연, PD로서 한 번 기획해보고 싶은 이벤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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