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가난, 멀지 않은 우리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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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투병 이성규 감독, 책 ‘안나와디의 아이들’ 북콘서트에서 밝혀

한 기자가 인도 뭄바이의 도시 빈민이 겪는 가난의 악순환을 4년간 밀착 취재한 책 <안나와디의 아이들>이 작은 파장을 낳고 있다. 출판사 반비와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25일 서울 화동 정독도서관에서 개최한 북콘서트에 노숙인의 벗이 돼온 김응교 시인, 사당동 철거촌 도시 빈민을 25년간 기록해온 조은 교수, <오래된 인력거>의 이성규 감독이 참석해 ‘가난’이라는 세계의 어두운 이면을 끄집어냈다.

특히 이성규 감독은 <오래된 인력거>에서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의 삶을 10년 간 촬영한 ‘빈곤과 가난의 기록자’였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말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눈에 띄게 수척한 모습인 이 감독은 투병사실을 감추기는커녕 오히려 툭 터놓고 이야기하면서 ‘나눔의 힘’을 설파해 좌중의 눈길을 모았다. 

그는 “(독립 다큐) 후배들이 치료비를 보태주는가 하면 그간 기부해왔던 외국인노동자, 자활공동체 구성원, 어려운 예술가 분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보내주셨다”며 “나눔이야말로 돌고 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북콘서트 내내 가난의 탈출구는 ‘기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목에 힘을 주어 재차 강조했다.

▲ <오래된 인력거> 이성규 독립PD ⓒPD저널

<안나와디의 아이들>에서는 21세기 가장 불평등한 도시로 꼽히는 인도의 거대 빈민촌인 안나와디의 빈곤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자인 캐서린 부는 <워싱턴 포스트>와 <뉴요커> 기자로서의 직업적 특성을 살려 빈곤의 악순환을 일으키는 구조적 불평등을 냉철한 시각으로 꼬집는가 하면 퓰리처상 수상작가답게 문학적인 필체를 선보여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성규 감독은 “르포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써도 되는가 하는 당혹스러움이 있었지만 작가는 허구를 쓴 게 아니라 현장에서 체험한 것을 그대로 썼다는 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 한 호흡에 읽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감독은 실제 촬영하면서 경험한 빈민촌의 현실을 담담하게 전했다. 특히 그는 인도가 ‘신비주의’로 포장되면서 그들의 참담한 현실이 가려지고 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인도의 가난을 두고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이라는 명제가 굉장히 강력하다. 그러나 우리는 단지 그들이 웃는 모습을 슬쩍 봤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오래된 인력거>를 촬영하면서 그들과 오랜 시간을 보낼수록 그들이 밝힌 속내는 우리와 다를 게 없었다. 그들도 아이들에게 가난을 대물림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그는 빈곤의 악순환이 거듭되는 이유로 ‘부정부패’를 꼽았다. 이 감독은 “인도에서는 은행조차 쇠창살 밑으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야 할 만큼 불신의 벽이 높다. 학교, 병원, 공공기관 등 가리지 않고 부패가 심하다”고 말한 뒤 “삶에 대한 부조리와 불합리를 수없이 목격할 수밖에 없는 곳이 인도”라고 말했다.

▲ 책 <안나와디의 아이들>(출판사 반비, 16000원)

이 감독은 아동노동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그는 “빈곤은 전쟁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본다. 피해를 크게 입는 사람은 여성과 아이다. 짜이(인도식 밀크티) 배달부는 7~12세, 서빙하는 이들도 8~9세가 대부분”이라며 “그렇다고 아동노동을 법으로 금지하면 이들의 빈곤은 더욱 심해지는 딜레마가 발생한다. 또 아이들이 교육받을 수 있는 공교육 시스템도 부패해 빈곤을 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이러한 인도의 빈곤이 남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고 누차 강조했다. 가난의 형태만 다를 뿐 누구나 안전지대에 머물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것이다. 그는 “남의 나라에 왜 그렇게 관심을 갖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신데 사실 우리나라도 이미 빈부격차가 크게 벌어졌다”고 지적한 뒤 “근거 없는 얄팍한 낙관주의, 긍정주의가 만연해 있는 세상에서 환상에 맞선 리얼리티를 대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감독은 <오래된 인력거>의 또 다른 이야기를 묶어내고 싶다는 바람도 밝혔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작가가 텍스트로 담은 것 외에도 얼마나 방대한 자료들을 가지를 쳐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된 인력거>도 85분 짜리이지만 실제론 2만분 넘게 촬영했죠. 결국 1만9915분은 제 컴퓨터에 있는데 중요한 내용으로 구성한 소설이나 르포를 써보는 게 어떨까 싶었어요. 새로운 소설을 써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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