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제작기 MBC - ‘당신들의 아파트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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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그들은 여전히 절규하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한 무리의 시골사람들이 억울한 이야기 좀 들어 달라고 찾아왔다. 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은 전국철거민협의회 회장인 이호승 목사. 이 목사와는 10년전 ‘택지개발,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를 제작하면서 만났었다. 분당 신도시 개발 당시 세입자 대책위원장이었던 이 목사는 우리나라 주택사에 임대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쟁취해낸 사람 중 하나로 여겨지는 철거민 운동의 산 증인이다.그런데 그때의 이 목사가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10년이 지난 지금 또 찾아온 것이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가? 군사정권은 고사하고 문민정부를 넘어 소위 국민의 정부 시대 아닌가? 그런데 아직도 철거민 문제라니! 처음엔 일부 주민들의 욕심이 지나쳐서 그러려니 의심했다. 21세기 대명천지에 대책 없는 강제 철거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 앞섰다. 지난 수십년 동안 철거민들의 항거를 통해 이미 관계 당국은 어느 정도 그 해결책을 알고 있었고 강제철거는 이미 최후의 수단으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 아니던가?그런데 아니었다. 20년전이나 10년전이나 마찬가지로 강제철거는 계속되고 있었다. 단지 우리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다.관심을 못 끌면 방송도 없다? 그 동안 택지개발과 철거민 문제는 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던 소재들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식상한 것이고 게다가 시청률도 그리 높지 않았던 것이었다. 즉 시청자가 관심 없어하는 그런 소재라는 말이다.아이템 회의에서 우리의 생각도 그랬다. 우리 뿐 아니라 다른 PD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나중에 들은 말 중엔 “갑자기 무슨 70년대 방송을 하냐”고 걱정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무튼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반쪽 방송이면 몰라도 1시간 내내 다루기에는 약하고 부담이 된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일단 다른 반쪽을 찾든지 아니면 더 좋은 새 아이템을 찾기로 했다. 철거현장의 헌팅에서 돌아와 보니 병원 관련 새 아이템이 준비되어 있었다. 구성안까지 짜여져 있었고 섭외 목록도 작성되어 있었다. 의사 파업이 예고 된 때라 시의성도 있었고 현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게 자료정리도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녹화 준비 완료였다. 이제는 선택이 문제일 뿐이다. 논의 끝에 최종 선택이 나에게 맡겨졌다. 다음날 아침까지 결정해야 했다.의 존재 이유과연 요즘 사람들이 철거민 문제에 관심이 없을까?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과감히 접고 새 아이템을 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부수어진 집들과 천막 속에 누워있던 할머니들과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우리가 방송 안 하면 그 사람들 사정은 아무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 들자 더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방송하자니 50분 동안 늘어지지 않게 구성할 수 있을지 그것이 더 걱정되었다.한 밤 중 소파 위에서 뒤척이며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밤을 죽이며 내린 결론은 ‘초심으로 돌아가자’였다. 그 때 떠올린 것은 ‘소외계층’이라는 말이었다. 이란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존재하는 이유중의 하나가 그 소외계층 때문이 아니었던가? 불쌍한 사람들을 대변하지 못하면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마음을 잡으며 스스로 비장해졌다.뒷 이야기PD가 너무 감상적이었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토지공사와 감정평가사의 부조리를 논리적으로 파헤친 한학수 PD와 대조가 된 모양이다. 사실 한학수 PD의 취재 내용은 특종이었다. 그 동안 정부의 토지수용보상 과정이 투명하지 못하다는 철거민 단체의 주장이 본인들의 실토로 증명되었던 것이다. 감정평가액이 사업 목적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충격적인 인터뷰에 많은 시청자들이 분노했다.감정평가와는 다르게 철거민 문제는 주로 정서적으로 접근했다. 자기 집에서 끌려나오고 집이 부숴 지고 거기 아이들이 있는데 무슨 논리가 필요 할 것 같지 않았다. 인터뷰 중에도 가급적 냉정해 지려고 애썼으나 내 표정은 그렇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내 조카고 어머니였다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을 하나 이야기하고 끝맺으려 한다.빈집을 돌아다닐 때 벽 사이에 걸쳐져 있던 형광등을 발견했다. 전기요금 아끼려고 벽에 구멍을 뚫어 형광등 하나로 방 두 개를 밝히는 방법이다. 나도 어릴 때 그런 형광등 밑에서 자랐다. 건넌방에는 당시 고등학생이던 삼촌이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잘 때가 되면 형광등이 꺼지고 삼촌방의 백열등만 홀로 켜졌다.그러면 구멍 사이로 삐져 나온 불빛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생각 속에 나는 잠들곤 했다. 조능희MBC 시사제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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