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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기] 목포MBC ‘어영차 바다野’

무릇 땅에 태를 묻고 사는 사람들에겐 환상이 있다. 시퍼런 하늘과 맞닿은 끝없는 수평선, 시간과 바다가 연출하는 색의 마술 - 일출과 일몰, 그리고 포말로 부서지며 달려드는 짙푸른 파도까지…바다다! 그래서 우리는 지친 삶의 틈바구니마다 애써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바다를 찾는다. 지친 육지의 삶을 피해….

이번엔 남해 미조항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목포에서 미조항까지 3~4시간. 7~8시간은 예사인 강원도에 비하면 충청도나 경상도는 뒷마당이다. 그런데 조업시간이 새벽부터다. 이놈의 물때는 사람 사정은 안중에도 없다. 한번 나가면 7~8시간 조업은 예사, 부지런히 달려야 도착한 뒤 한숨 돌리고 내일 조업에 동행할 수 있다. 전쟁이다. 섭외부터 촬영까지 어느 하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 없다.

조그만 어선에 어부 혼자 움직이는 것도 만만찮은데 서너 명의 건장한 장정을 태워달라는데 흔쾌히 허락할 어부가 있겠는가? 바다와의 사투에 정신없는데 카메라 들이대며 이것저것 캐묻는 촬영팀을 흔쾌히 맞아주는 선장은 정말 이웃마을 아저씨 같은 순박한 분들이다. 그나마 대부분은 ‘선장님! 선장님!’하며 본인 목소리 숨기고 최대한 예쁜 목소리로 하루에 몇 번씩 전화해 대는 미모의(?) 작가들 때문에 마지못해 허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목포MBC <어영차 바다野> ⓒ목포MBC

고단함을 날려버리는 갑판 위의 풍요

배는 선을 넘어 남해로 나선다. 칠흑 같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바다는 그야말로 공포다. 시끄럽던 엔진 소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금방이라도 멈춰버릴 것 같은 공포감을 쏟아낸다. 바다를 일깨운 덕에 파도는 갑판 위를 제집 드나들 듯 하고 덕분에 채 잠이 깨기도 전에 온몸은 짭조름한 바다 내음으로 흠뻑 젖는다. 그래도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 자리라도 차지할 수 있는 건 행운이다.

안도도 잠시, 바다가 심상찮다. 풍랑주의보가 해제된 것을 확인했는데 넘실대는 것이 평상심을 잃은 것 같다. 이미 선체를 꽉 잡은 오른손은 저리기 시작한다. 속았다. 이렇게 팔자에도 없는 어부를 3년 넘게 하고 있으면서도 풍랑 뒤의 파도가 무섭다는 것을 오늘 눈으로, 입으로(?) 확인하고서야 습득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난 저녁 먹은 것이 많지 않았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바다 시계도 견딘 만큼 꼭 그만큼은 그렇게 흐른다. 어느덧 시커먼 바다에 푸른빛이 감돈다. 검은 한지에 시퍼런 물감이 젖어들 듯 여명이 찾아든다. 이 시간, 이 바다 위 아니면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에 눈이 호강할 무렵 코에도 낯익은 냄새가 찾아든다. 조업시작을 알리는 냄새, 라면이다. 염치없이 무임승차한 우리도 어느새 한 자리, 미슐랭 3스타 쉐프도 울고 갈 최고의 만찬이 펼쳐진다. 새벽 조업이면 습관처럼 맛보지만 바다 위 흔들리는 갑판에서, 여명을 보며 먹는 라면을 형용하는 건 무리다.

▲ 목포MBC <어영차 바다野> ⓒ목포MBC
선장의 담배가 거의 끝날 무렵 육중한 닻이 바닷속으로 뛰어든다. 뒤따라 심혈로 빨려가듯 그물이 펼쳐진다. 지난 조업의 부스러기를 찾는 갈매기 떼의 활공이 매 같다. 소란스러움도 잠시, 그물이 제자리를 잡자 익숙지 않은 기다림이 갑판을 덮는다. 무임 승선자들이 가장 불안한 시간! 뜻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빈 그물이 올라오면 카메라를 들고 있기가 무섭다. 인터뷰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일. 매번 반복되지만, 이 시간은 정말 곤욕이다. 그렇게 불안과 기대로 또 시간은 흐른다.

다시 엔진이 돌고, 그물이 들어 올려 진다. 아침 햇살이 그물 위에서 은빛으로 부서진다. 아니 햇빛이 아니다. 멸치다. 중지손가락쯤 되는 멸치가 온 그물에 목을 매달고 연이어 올라온다. 바다 사내들 입에선 ‘어여차’ 흥 타령이 절로 나온다. 그 장단에 맞춰 그물을 터는 사내들의 어깨춤이 장관이다. 아침 식사거리를 찾은 갈매기들의 즐거운 아우성, 코를 넘어 몸까지 파고드는 비린내, 피아 구분도 허락하지 않고 날아다니는 멸치 비늘, 그러나 무엇보다도 삶의 고단함을 일시에 날려버리는 풍성함에 갑판 위는 난장이다! 그 펄떡이는 바다의 난장 한 모퉁이에 우리가 있다. 지금.

만선으로 펄떡이던 바다, 이제는 추억

무릇 땅에 태를 묻고 사는 사람들에겐 바다에 대한 환상이 있다. 그러나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삶이 되는 순간 바다는 두려움이 된다. 만선으로 펄떡이던 바다는 추억이다. 제철 따라 내어주던 풍성했던 바다도 없다. 감척이 일상화되고, 어부는 기름값과 고깃값을 계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 7~8시간 조업은 기본, 새벽 위판에 이상 수온, 해파리, 적조, 태풍, 거기에 일본발 방사선 쓰나미까지…. 새벽 바다만큼이나 어부로 살아가는 삶이 녹녹지 않다. 그곳이 <어영차 바다野>가 만들어지는 현장이다.

▲ 이순용 목포MBC PD
<어영차 바다野>에는 우리 바다가 있다. 마라도 앞바다 자리돔부터 독도 앞 오징어, 홍게, 그리고 법성포 조기며, 연평도 꽃게까지. 우리 바다의 주인공들이 있다. 그리고 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이웃이 있다. 그물로, 낚시로, 통발로, 갯벌에서, 연안에서,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망망대해에서 이 바다의 희망을 믿고 사는 사람들의 땀내 가득한 이야기가 있다. 빈 그물에 도리어 우리에게 미안해하는, 그 땀의 결실을 마다치 않고 듬성듬성 썰어 입에 넣어주는 바다의 풍성함이 <어영차 바다野>에는 있다. 그 등 푸른 우리 바다의 신화를 오늘도 <어영차 바다野>는 열심히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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