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책읽기 ‘축구 전쟁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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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축구는 축제인가, 전쟁인가?

|contsmark0|2002년 ‘한일월드컵축구대회’ 조별리그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전에는 전세계의 이목이 국집되었고, 세계 주요 외신들은 잉글랜드의 승리 소식을 ‘36년만의 앙갚음’이라는 제목으로 일제히 타전했다. 이 경기는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의 4차 전쟁’, ‘삿포르의 결투’ 혹은 ‘축구 전쟁’이라 불렸다.
|contsmark1|외신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2,500만 근로자 가운데 30%가 이날 휴가나 병가를 내고 경기를 시청했단다. bbc방송은 이날 휴가를 얻지 못한 회사원 250만명이 꾀병으로 결근하는 바람에 수천 억의 경제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contsmark2|축구의 종가 잉글랜드와 숙적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이날 경기가 유독 관심을 모은 이유는 양국간에 있었던 1982년 포클랜드 전쟁이 이들을 ‘견원지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포클랜드 섬의 영유권을 둘러싸고 발발된 전쟁은 아르헨티나 해군의 주력 구축함 ‘헤네랄 벨그라노’호가 영국 잠수함의 어뢰공격으로 침몰되었고, 결국 아르헨티나가 사실상 항복함으로써 개전 72일만에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후 이들 양국 국민에게 축구대결은 ‘전쟁’이라는 메타포로 받아들여졌다.
|contsmark3|영국 bbc 방송은 이날 경기 결과를 ‘달콤한 복수(sweet revenge)’라고 전했다는데, 사실 이처럼 축구경기는 지배와 피지배의 과거 역사를 가진 국가간 경기에서는 ‘국경’과 ‘민족주의’를 부활시키면서 양국 국민들을 광기적 응원으로 몰아 세운다.
|contsmark4|얼마 전 소설가 김별아씨가 출간한 ‘축구전쟁’이라는 소설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지만, 1969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에는 판정시비로 유발된 전쟁으로 5일간 무려 3,000여명이 사망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contsmark5|독일과 네덜란드가 붙을 때 그라운드에는 나치의 망령이 살아난다. 우리 나라 국민들도 일본과 중국전에는 홍역을 치른다. 과거 삼국간 영토 쟁탈전의 기억과 무관하지 않다. 축구와 월드컵이 미국 패권주의에 의해 재편되고 있는 자본 강점과 그로 인한 갈등을 극복하는 화해와 대동의 가치에 기여하기를 바라지만, 어쩌면 그것은 공허한 바램일지도 모른다.
|contsmark6|덴마크 폭정하에서 학대를 받아온 영국인들이 응어리를 풀기 위해 전사한 덴마크 군인들의 두개골을 발로 찼던 것이 계기가 되어 경기로까지 발전했다는 축구의 기원을 염두에 둔다면 축구는 태생적으로 ‘분노’와 ‘민족주의’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 축구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 중단시킬 수도 있으며,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도 하고 독재자들의 권좌를 계속 유지시켜주는데 복무하기도 했다.
|contsmark7|사이먼 쿠퍼(simon kuper)가 쓴 ‘축구 전쟁의 역사(football against the enermy)’는 축구라는 단순한 경기가 각 나라마다 어떻게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저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이탈리아, 미국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스물 두 개 나라를 여행하면서 선수와 정치인 축구팬 등 온갖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축구라는 코드에 각 나라의 국민성과 역사적 배경, 정치 문화적 상황과 환경이 어떻게 배합되었는지를 찾아냈다.
|contsmark8|우리들 가슴을 뜨겁게 지피면서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지난 미국 전에 아스팔트 응원을 위해 운집한 시청 앞 15만 인파를 15년 전 반독재를 외치며 들불처럼 일어선 6월 항쟁 당시의 ‘광장 인파-성난 군중’이라는 상징으로 얽어매려 했지만, 운집의 성격이 판이한 이상 그도 마뜩치 않았다.
|contsmark9|오히려 우리의 응원이 부패로 얼룩진 우리 당대의 현실을 복토하면서 국가주의 부활에 바쳐지고 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동료들과 술을 마시면서 경기를 시청하고 격렬한 응원을 하면서도 순간 정신이 소슬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잘 알지 못하겠다. 적어도 우리에게 축구는 축제인가, 전쟁인가?
|contsmark10|문태준불교방송 pd·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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