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를 위한 영화 읽기"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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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 것만으로 매혹되는 ‘애니’ 본연의 기쁨

|contsmark0|프랑스 최고의 만화가 뫼비우스는 “디즈니는 어른들이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이들이 보고 싶어하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라고 말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뫼비우스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contsmark1|디즈니 애니메이션은 현실을 포장한다. 지나치게 현실을 단순화시키거나 동화로 바꾸어버린다. 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현실의 어둠과 혼란을 보여주기 위해 애니메이션을 만든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마야자키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준다. “괜찮아. 잘 할 수 있어”라고 친절하게 치히로에게, 모든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는 것이다.
|contsmark2|시골 마을로 이사온 치히로 가족은 길을 잘못 들어 테마 파크의 잔해를 만난다. 아직 남아있던 음식점에 준비된 음식을, 주인의 허락 없이 먹은 치히로의 부모는 돼지로 변해버린다. 테마 파크의 정체는 일본의 800만 신들이 휴식을 취하러 오는 귀신들의 온천장. 하쿠라라는 소년의 도움을 받은 치히로는 온천장의 주인 유바바에게 일을 하겠다고 청한다.
|contsmark3|일을 하지 않으면, 온천장에 있을 수도, 부모를 인간으로 되돌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마녀는 치히로를 지배하기 위해 이름을 빼앗고, 대신 센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그러나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을 기억한 채, 부모님을 인간으로 되돌리기 위하여 열심히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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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5|‘애니’에도 현실의 혼란은 있다
|contsmark6|일, 즉 노동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온천장에서는 누구나, ‘이치닌마에(一人前)- 한사람 몫의 노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존재 의미가 없다. 치히로는 인간이 온천장에서 일을 한다는 것조차 불만인 동료들에게, 그리고 마녀에게 자신의 가치를 납득시켜야만 한다. 언뜻 보기에 이건 마치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일본 사회의 가치관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contsmark7|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는 단순한 원칙주의자가 아니다. 치히로가 한 사람 몫의 일을 비로소 하게 된 것은, 타인들에게 인정을 받은 것은 모두가 꺼리던 오물신을 씻어줬기 때문이다. 치히로는 오물신의 몸에 뭔가 박혀 있음을 발견한다. 그것을 뽑아내자, 인간이 강에 내다버린 수많은 오물들이 딸려나온다. 오물신의 본래의 모습은 강의 신이었다.
|contsmark8|치히로가 오물신을 씻어준 노동은, 인간이 해야할 당연한 일이다. 자연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인간이 해야할 의무.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해야 할 의무를 저버린 채, 신성한 노동을 하지 않고 단지 욕망을 채우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contsmark9|그런 모습은 현대인의 표상인, 얼굴없는 귀신-가오나시와도 연결된다. 가오나시는 얼굴도, 이름도 없는 귀신이다. 치히로의 도움으로 온천장에 들어갔다가, 금을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온천장을 떠들썩하게 한다. 가오나시는 단지 자신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시킨다.
|contsmark10|하지만 그의 욕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애초에 가오나시의 욕망은 목적이 없었다. 금을 가지고 있으면 타인들이 받들어 모시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음을 알고 아기처럼 먹고, 마시고, 울부짖은 것뿐이다. 수북한 금을 내미는 가오나시에게, 치히로는 단호하게 답한다. ‘나는 필요 없다’고. 치히로는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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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2|심오한 성찰과 철학 녹여내
|contsmark13|미야자키 하야오는 “지금까지 지브리 작품에는 ‘이런 테마가 있다’던지 ‘현대 사회를 이렇게 생각한다’와 같은 까다로운 이야기가 많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그런 것은 전혀 없고, 정말 그냥 열 살 정도의 친구들에게 ‘너희들을 위해 만든 작품이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을 만들자고 생각했던 것뿐”이라고 말한다.
|contsmark14|하지만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심오한 성찰과 철학이 담겨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단지 그런 것들을 일일이 설명하거나, 교훈적으로 그려내지 않았을 뿐이다. 미야자키의 위대함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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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smark16|‘서정적’ 풍경 표현 탁월
|contsmark17|교훈과 설명 이전에,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는 단지 보는 것만으로 매혹되는 애니메이션 본연의 기쁨이 담겨 있다.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 늘 등장하는 비행장면은, 이번 작품에서는 하쿠와 치히로가 하늘을 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contsmark18|하늘을 나르며 과거를 회상하고, 치히로가 하쿠의 이름을 찾아주는 이 장면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게 묘사된다. 또한 어떤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따를 수 없는 지브리만의 강점인 자연 묘사도 여전히 탁월하다. 하루종일 내린 비 때문에 온천장 주변에 모두 바다가 되어버리고, 그 바다 위로 난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 그런 ‘서정적’인 풍경은 오직 지브리에서만 만날 수 있다. 오직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만.
|contsmark19|김봉석/영화평론가|contsmark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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