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미와 감동이 공존하려면

|contsmark0|몇 년 전부터 불기 시작한 사극(史劇)열풍이 식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사극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그 자체는 우리 사회의 몇 가지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하나는 날로 가벼워지고 있는 현대 드라마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contsmark1|근래 방영된 일부 현대드라마들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반면 자의적인 설정 등의 이유 때문에 ‘만화 같다’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 재미는 있지만 그 속에 아무런 감동이 없다는 것이다.
|contsmark2|현실 정치에 대한 반작용도 사극 열풍의 한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거의 짜증수준으로 전락해버린 우리 정치판은 정치혐오증을 넘어 정치무관심을 불러오고 있는데, 이런 현재의 정치현실에 대한 대안으로 과거의 이야기가 선호되는 것이다. 일종의 지적 도피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contsmark3|그런데 우리 사극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만족할만한 대안을 제시하는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사극 열풍이 높을수록 거기에 대한 우려도 많은 점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contsmark4|어떤 사극은 사극의 형식만 빌린 ‘무늬만 사극’이란 비판이 있는 것처럼 실제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사건들을 실재했던 것처럼 창작하는가 하면 진실과 전혀 다른 역사적 평가를 자의적으로 내리기도 한다.
|contsmark5|우리 나라의 교육체계상 사극은 학생이 아닌 일반 국민들에게 거의 유일한 역사교과서의 구실을 하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막중한 데 결국 논란의 핵심은 사극에서 허용되는 상상력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있다. 이 문제는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모든 사극 제작 종사자들의 고민일 것이다.
|contsmark6|또한 사극뿐만 아니라 역사와 관련되는 저술을 하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우리 나라 사학계는 실증주의에 함몰되었다는 비판을 받는데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역사에 있어서 상상력의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지만 좋든 싫든 모든 논문에도 일정 정도의 상상력은 개재되어 있다.
|contsmark7|과학을 지향하는 논문이 아닌 역사 드라마는 재창작에 속하므로 논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상상력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은 몇 가지 요소들에 의해서 제한 받아야 한다.
|contsmark8|첫째는 물론 사료이다. 사료에 전혀 나타나지 않은 사실을 방영하면서 사극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둘째는 명확한 주제의식이다. 주제의식이란 사극이 반영하는 시대의 시대정신이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예를 들어 단종시대는 수양대군을 위시한 쿠데타 세력과 김종서를 위시한 헌정질서 수호세력의 대결로 압축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어느 쪽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는지는 자명하다.
|contsmark9|셋째는 개연성이다. 비단 사극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드라마들은 너무 많이 우연에 의지해 상황을 끌고 간다. 개연성 부족이야말로 작가의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테두리 내에서 사극이 제작된다면 사극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왔던 많은 부분들에서 상당 부분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contsmark10|역사에는 인간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서사미가 있다. 그리고 인간을 감동시키는 리얼스토리가 존재한다. 그 길로 가면 손해 보는 줄 알면서도 시대정신에 자신의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contsmark11|이런 이야기들은 극단적 이기주의에 찌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의 구실을 한다. 단지 재미만이 아니라 재미와 감동이 함께 공존하는 그런 사극,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런 사극을 기대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contsmark12|이덕일/역사평론가|contsmark13|
저작권자 © PD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