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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와 언론의 역할

|contsmark0|‘노무현 바람(노풍)’이 남한 전체를 강타한 늦봄에 한 친구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노사모’ 회원이기도 한 그 친구는 “요즘 살맛 난다”고 했다. 노무현이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때만 하더라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contsmark1|친구의 얘기를 듣고 나는 “너무 좋아하지 말라”며 김빠지는 ‘당부’(?)를 했다. 대단히 복잡하고도 위험한 한반도 정세가 차기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고, 또 부시 대통령이 2004년 재선에 성공까지 한다면 차기 대통령의 임기는 부시 대통령의 임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contsmark2|평화운동이라는 ‘직업’ 탓인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2003~4년에 심각한 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고 떠벌리면서, 대통령을 잘 뽑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얘기하고 다닌지도 벌써 1년 반이 지났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두려움은 커져만 간다. 한반도의 밖을 보면 답답하고 안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 때문이다.
|contsmark3|많은 사람들은 설마 전쟁이야 나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미래는 설마가 사람 잡을 수도 있다. 정부 당국자들 및 많은 전문가들도 지적하고 있듯이 한반도 위기 구조의 핵심은 북미간의 대립 구조이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빨리 핵사찰을 수용하지 않으면, 제네바 합의 파기를 의미하는 경수로 사업 중단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contsmark4|이에 대해 북한은 경수로 사업 지연에 따른 전력보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핵사찰을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1990년대 이후 한반도 문제 최대 변수로 등장한 북한의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도, 북미간의 첨예한 입장 차이로 해결이 난망한 상태이다. 이렇듯 북미간의 핵심적인 문제들이 정치외교적인 협상을 통해 풀릴 비전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부시 행정부의 대북한 군사 전략 및 능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contsmark5|부시 행정부는 북한 등을 악의 축 국가로 지목하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끌어올린데 이어, 대량살상무기 위협 제거를 이유로 선제공격을 정식으로 채택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이런 이유로 94년보다 심각한 전쟁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클린턴보다 훨씬 막강한 공격력과 방어력으로 무장한 부시가, 94년과 유사한 상황을 만났을 때 클린턴보다 신중해질 것이라는 근거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contsmark6|전쟁은 물론이고 전쟁 ‘위기’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총체적인 질곡에 빠져들 것이라는 점은 지난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정세가 암울해지면 개혁을 추진할 여건도 마련되지 않는다. 부시의 ‘악의 축’ 한마디에 한반도 전체가 휘청하지 않았던가?
|contsmark7|따라서 위기는 예방이 최선이다. 그리고 언론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나 언론의 현실은 너무나도 암담하다. “한반도 위기 예방 노력은 언론운동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한 언론인의 주장을 ‘직업병’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contsmark8|올 대선에서 평화리더쉽을 창출하고 향후 예상되는 위기를 잘 수습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이를 기대하기도 힘든 현실이 우리가 처한 지독한 역설인 것이다.
|contsmark9|한반도가 전쟁 위기에 가장 근접한 때는 94년과 98-99년초이다. 그런데 당시 대다수 언론은 어땠던가? 북한의 핵개발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한미일 강경파의 ‘북폭론’을 지지하지는 않았던가?
|contsmark10|북측의 ‘서울 불바다’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마치 북한의 남침이 임박한 것처럼 보도해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지는 않았던가? 미국 내 강경파가 고의로 흘린 금창리 의혹 시설을 핵시설로 단정하면서 불안 고조의 선봉에 서지는 않았던가?
|contsmark11|오보와 왜곡, 그리고 과장과 편파보도로 얼룩진 과거의 보도행태는 지나간 옛일일까? 과거를 묻지 않으려면 과거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contsmark12|언론은 세상으로 향하는 창문과도 같다. 언론은 창문을 작게 만들어, 보여지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만들 수도 있고, 창문에 빨간칠을 해 세상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contsmark13|또 각기 다른 색깔을 칠해 놓고는 자기색이 진실이라고 우격다짐을 하는 경우도 많다. 대북보도를 비롯한 한반도문제 보도성향만큼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물 것이다.
|contsmark14|한반도 위기 예방 및 관리 역량에 대한 우리의 첫 시험대는 대선이다. 정책대결과는 거리가 먼 비리공방으로 치닫고 있는 대선에서 언론은 유권자가 ‘종이돌’을 던질 ‘다른 기준’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contsmark15|그리고 다른 기준의 중심은 평화리더쉽이 되어야 한다. 언론이 저마다 창문에 칠한 색깔을 지우고, 있는 그대로의, 또한 대통령이 갖춰야할 역량과 비전을 국민들에게 여과없이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해본다.
|contsmark16|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contsmark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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