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를 위한 영화읽기 마이너리티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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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를 신비속에 두어야 하는 이유

|contsmark0|“모르는 것에 대해선 침묵을 지켜야 한다.” 한때 매혹되었던 언어논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잠언이다.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을 비트겐슈타인 식으로 표현하면 “신비는 신비 속에 두어야 한다”라는 것이다.
|contsmark1|이 영화 줄거리의 핵심은 2054년 워싱톤 d.c.의 경찰국이 수행하는 범죄예방프로그램을 둘러싼 음모를 펼쳐 보이고 해결하는 데 있다. 완벽한 치안사회, 살인범죄율 0%를 지향하는 이 시스템의 팀장인 존 앤더튼(톰 크루즈)은 6년 전 유괴된 아들의 죽음과 그로 인한 이혼을 겪은 개인적 아픔을 갖고 있다.
|contsmark2|그래서 그는 사명감을 갖고 범죄예방에 매달린다. 존은 이 프로그램을 절대신봉하는 상처받은 터프가이다. 그러나 범죄가 일어나기도 전에 범죄를 계획하는 강한 심리적 파장을 예지력으로 잡아내 그를 구속하는 것에 의혹을 가진 이들도 있다.
|contsmark3|이 시스템의 문제를 조사하는 감사국 직원 대니 워트워는 사사건건 존과 부딪힌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존이 자신의 살인예언을 보면서 오히려 쫓기는 몸이 되는 음모에 걸려든 데 있다. 음모론의 시나리오가 늘 그렇듯이 적은 내부에 있고 내부를 가장 잘 아는 권력자, 양의 탈을 쓴 늑대가 그 주범이다.
|contsmark4|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미래사회의 기계숭배주의를 회의적으로 검토하는 이 sf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프리 크라임(pre-crime)’시스템이다. 돌연변이 유전인자로 신통한 예지력을 갖고 태어난 세 명의 예지자와 기계장치가 함께 어우러져 작동되는 이 장치는 특수효과를 통해 인간과 기계 이미지를 신비하고도 박력 있는 편집을 통해 펼쳐낸다.
|contsmark5|남녀 쌍둥이와 누이 격의 예언자-우리 식으로 말하면 점쟁이-는 완벽한 예언의 상태를 가능케 하도록 조절되는 풀장에 누워있다. 엔돌핀의 최고치 속에서 예언만 하도록 양육되는 이들은 머리에 뇌파전달장치를 끼고 있고 그것이 어우러져 프리크라임 이미지로 생생하게 영사된다.
|contsmark6|때론 세 명이 일치하지 않는 미래 이미지를 보는데, 바로 그 다른 하나가 소수자 의견인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된다. 미래의 범죄자로 몰려 쫓기게 된 존이 자신을 모함한 이유와 모사꾼을 밝히게 된 열쇠도 바로 이 사라진 마이너리티 리포트 파일로부터 비롯된다. 존뿐만 아니라 예지자도 피해자임이 밝혀진다.
|contsmark7|더 많은 이들에게 편리함과 행복을 준다는 이유로 발전되어온 과학문명과 기계장치들은 미래에 더욱 강성하겠지만 그것 때문에 재앙적 결과에 이르리라는 것은 수많은 sf영화들이 증명하고 있다.
|contsmark8|‘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범죄예방이란 가치가 권력자와 기계장치를 통해 조작될 수 있음을 고발한다. 물론 필립 k. 딕의 비관적인 결말을 보여준 원작소설과 달리 스필버그는 살인예언을 자유의지로 극복하는 존의 갈등을 통해 해피엔딩을 보여준다.
|contsmark9|하긴 이티와의 만남을 서정적 판타지로 만들어 할리우드의 마이더스가 된 스필버그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말이다. 이전보다 이야기 전개에서 힘이 딸리는 스필버그가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끌고 간 것도 중반 이후 이야기가 쳐지면서 무리가 있어 보인다.
|contsmark10|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함을 기계장치로 이용하는 기계 과학주의의 맹점을 보여주는 얼룩은 중요하다. 아무리 예언자여도 하루 온종일 예언만 하라고 완벽한 몽환상태를 조성해 풀장에 담가놓는다면 누가 그 짓을 하겠는가? 엔돌핀이 좋다지만 맨날 엔돌핀 최고치 상태에 놓인다는 것도 징그러운 노릇이다. 나는 예언과 운수의 신봉자는 아니지만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contsmark11|그런 문맥에서 지식과 합리적 예상을 넘어선 신비의 세계는 우리를 매혹시킨다. 인간의 마음, 인생이란 것, 자연이란 것…. 이 모든 것들이 신비함의 영역에 걸쳐 있다.
|contsmark12|그래서 그것을 속속들이 과학적으로 다 계산해내고, 심지어 이 영화에서처럼 앞날의 생각까지 알아맞혀 예방하려는 계산적인 자세는 늘 그걸로 무언가를 이루려는 세속적 야망에 겨운 이의 이용거리가 된다. 왜냐하면 신비의 힘은 그것이 신비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때 진정해지기 때문이다.
|contsmark13|유지나동국대 교수, 영화평론가|contsmark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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