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 노동관…언론사 노조 ‘무력화’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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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언론노조 탈퇴 압박…동조하는 정부·여당, 공정방송에 ‘정치색’ 칠하기

“노조 ‘쪼개기’를 위한 매뉴얼을 공유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노조 집행부로 활동한 바 있는 한 지상파 방송 관계자의 말이다. 정색은 아니었지만 결코 우스갯소리도 아니었던 그의 말마따나, 현 정부 출범 9개월째에 접어들고 있는 지금 한국 노동계의 현실은 후진하고 있다.

9인의 해직자를 솎아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6만 조합원을 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은 최근 정부로부터 ‘노조 아님’ 통보를 받았다. 같은 이유로 지난 이명박 정부 당시 설립 취소된 전국공무원노조(이하 전공노)는 현 정부에서도 설립 신고 반려 상황을 겪고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엔 여권의 대선개입 주장으로 검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되는 등 존재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언론사 노조의 상황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정방송’ 배제 노조 활동 압박= 언론노조 MBC본부(본부장 이성주, 이하 MBC본부)는 현재 회사로부터 언론노조 탈퇴 압박을 받고 있다. 김종국 MBC 사장이 지난달 8일 노사협의회 자리에서 MBC본부가 속한 언론노조와 그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에 정치위원회가 있고, 규약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지향하고 있음을 문제 삼으며, 조합(MBC본부)과 공정방송을 논의하는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발언한 것이다. 김 사장은 “단체협상은 하겠지만 이 부분(공정방송)은 타협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발언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자 MBC 사측은 정치 중립성과 관련해 상급단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비춘 것일 뿐, 언론노조 탈퇴를 단체협상 체결 조건으로 내세운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MBC본부의 설명은 다르다. 이성주 본부장은 같은 달 29일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이하 미방위)의 방송문화진흥회(MBC 대주주)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이에 대한 질문을 받고 “(김 사장이) 언론노조를 탈퇴하지 않는 이상 공정방송협의회(이하 공방협)을 포함한 단체협상 관련 사안을 (일절) 논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 10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3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집회 종료 후 청계천로 전태일 다리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노컷뉴스

이성주 본부장의 이 같은 증언이 아니더라도 언론사 노조에 있어 공정방송 조항은 활동의 근간일 수밖에 없다. 즉, 해당 논의를 배제하겠다는 것은 단체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 의미라는 게 MBC본부와 노동 전문가들의 공통 지적으로, MBC본부는 지난달 28일 김종국 사장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고소했다.

하지만 김종국 사장의 입장엔 변화가 없고, 정부·여당은 이런 모습을 격려하는 듯한 분위기다. 먼저 이경재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1일 국회 미방위 확인감사에서 “노조의 기본 설립취지는 노동자 복지 증진을 위함으로, 특정 정치세력이나 정치적 성향의 단체(상급노조)에 소속돼 있다면 공정방송을 논할 자격이 없다”고 거들고 나선 것이다.

새누리당 측 미방위 간사인 조해진 의원도 “언론노조가 강령과 규약에서 특정 정파에 치우친 활동을 천명한 만큼, 여기 소속된 MBC본부의 정치 중립성을 믿을 수 없어 보도 공정성을 논의할 수 없다는 김종국 사장 발언에 이해 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김종국 사장의 MBC본부에 대한 언론노조 탈퇴 종용에 대한 권혁태 서울지방노동청장의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는 발언(10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은 아무 의미도 없는 모양새다.

공정방송, 최우선 근로조건= 이런 가운데 MBC본부에서 직면한 일련의 현실이 언론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우려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오동운 MBC본부 사무처장은 “노조위원장 출신의 사장이 언론노조에 정치위원회가 있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단체협상을 하지 않고 있는데, 정말 언론노조 강령 속 ‘정치’의 의미를 모르는 것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현재 언론노조 강령 제3조는 ‘우리는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기치로 비민주적 법-사회제도의 개혁과 인간의 존엄성 보장, 자유-평등 실현의 한길에 힘차게 나선다’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탁종렬 언론노조 조직쟁의실장은 지난 8일 자신의 SNS(소설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린 글에서 “언론노조는 줄기차게 공정보도·언론자유를 주장하며 언론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법·제도를 위한 투쟁을 전개해 왔는데, 이 문제를 외부 정치세력에 맡길 경우 정치적 중립이 훼손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스스로 정치적 힘을 강화할 필요를 절감했다”고 설명했다.

언론노조 강령 속 정치세력화야말로 언론자유와 공정방송에 대한 분명한 의지 표명이라는 의미다. 오동운 사무처장은 “언론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는 언론인에게 있어 중요한 근로조건의 하나로 이에 대한 의지를 (언론노조 강령에서) 강조하는 것인데, (김 사장 등이) 이를 문제 삼으며 언론인에게 있어 노동자라는 정체성을 분리시키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말했다.

▲ 이성주 MBC본부 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열린 언론노조 총력투쟁 기자회견에서 말하고 있다. ⓒ언론노조
이런 지적은 해직 언론인 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여권의 모습을 두고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지난해 MBC본부가 공정방송 회복과 낙하산 사장 퇴진을 주장하면서 170일 동안 진행한 파업에 대해 MBC 사측은 ‘불법’의 꼬리표를 붙이며 소송과 징계에 나섰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해직 언론인 문제에 대해 여권은 해결 의지 대신 “회사 내부의 인사 문제”라고 주장하며 거리두기만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언론노조 위원장을 지낸 최상재 SBS PD는 “언론자유 훼손이 발생했을 때 보도와 제작을 담당하는 이들의 1차 단위인 기자협회·보도협회 등에서 대응해야 하지만, 이들 단위에서 얘기를 하려 하면 회사 측에선 공방협 등 노조에서 참여하는 공정방송 감시기구와의 대화 절차를 앞세워 거부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최상재 PD는 “그러다보니 노조에 언론자유에 대한 책임이 더 부여된 측면이 있다”며 “언론자유라는 헌법적 가치가 근로조건이라는 점을 차치하더라도, 노조가 아니면 어떤 얘기도 들어주려 하지 않으면서 왜 노조에서 그런(언론자유) 문제를 말하냐 하는 건 선후가 맞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규약 개정(해직자 배제)에 대한 시정명령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최근 합법 노조의 지위를 상실한 전교조·전공노 사태의 본질은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앞세우며 과거와 달리 권력에서 설정한 정책 방향과 통치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현재의 정치권력과 이에 우호적인 세력들의 속내에 맞닿아 있다.

마찬가지로 공정방송 등을 근로조건으로 여기는 언론인들에게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분리시켜 결국 권력의 이해를 전파하는 확성기 역할만을 담당케 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문제제기다. 노조 경력이 있는 중앙일간지의 한 기자는 “언론인의 양심을 압박하는 사내외 권력에 대한 반대는 노조를 중심으로 나오기 마련인데, MBC에서 언론노조 강령 속 ‘정치’라는 한 단어가 문제시되는 게 당연해지면 이는 향후 언론사 전반의 노사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정부 당시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친분이 있는 낙하산 인사들이 사장 자리를 꿰찬 KBS·MBC·YTN 등에선 해고·징계 외 부당 인사를 통한 직무배제, 노조에 대한 무차별 손해배상 소송, 공정방송 감시기구 무력화 등의 조치들이 벤치마킹한 듯 벌어졌다.

언론노조 정책실장을 지낸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언론노조 정치위원회는 총·대선 등의 시기에 한시적으로 움직이는 형태로 운영되기에 평소 내부에서도 존재를 잘 떠올리지 못하는 조직인데, 정권 등에서 이를 문제 삼고 나서는 걸 보며 장기 집권을 위한 플랜(계획)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지적했다.

채 위원장은 이어 “상황이 이런 만큼 언론인에게 있어 언론자유가 근로조건임을 분명히 하기 위한 법·제도의 개선에 더욱 적극적인 모습, 즉 언론노조 강령에서 말하고 있는 정치세력화의 의미에 더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위원장 강성남)도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권이 언론계 현안을 당리당략 차원에서 이용만 하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보도·제작·편성 자율성 보장 등의 제도 마련을 위해 총파업을 불사, 국회를 압박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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