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영 논리에 빠진 언론, 공론장 붕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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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정보학회 지상중계] 학자들, 죽어가는 공론장 진단

“한국 사회에 공론장은 없다.”

지난 달 29일 한국언론정보학회(회장 김서중) 주최 정기학술대회에 참석한 학계·언론계 인사들은 하나 같이 이 같은 문제에 우려를 나타냈다. 공론의 물꼬가 막힌 것은 정치·이념의 과잉화에서 비롯됐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지적이었다. 특히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해야 할 언론사들조차 진영 논리에서 갇히면서 공론장의 후퇴를 가속화했다는 날 선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학계·언론계 인사들은 ‘죽어가는 공론장’을 살리기 위해서 진영 구도의 악순환을 끊어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는 데 입을 모았다.

언론정보학회가 주최한 정기학술대회의 기획 세션인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어: 현 단계 미디어 지형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민주적 공론장’은 우리 정치 지형에서 여야 각 정치세력의 대화와 타협만으로는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지난 29일 언론정보학회(회장 김서중)는 충남대학교에서 정기학술대회의 기획세션인 ‘이념과 감정의 대립을 넘어: 현 단계 미디어 지형의 문제와 대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PD저널
우리나라 역사 흐름에 비춰볼 때 ‘민주적 공론장’ 실현은 주요한 과제 중 하나였다.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가 1987년 6월 민주항쟁 결과 민주헌법 제정 등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수용해 시국 수습 방안으로 발표한 6·29선언에 따르면 ‘언론자유 창달’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그러나 권경언 유착, 공영방송의 장악과 도구화를 비롯해 최근에는 종합편성채널 허가 등으로 ‘공론장’을 훼손시켰다는 게 신 교수의 지적이다.

신 교수는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부정하는 좌익종북 세력의 체제파괴 책동으로 호도하고, 언론을 권력의 도구 또는 전리품으로 취급하는 보수·수구 세력이 집권하면서 사정이 변했다”며 “이명박·박근혜 정부 하에서 공영방송들은 정부에 인위적으로 장악되고 정권이 홍보도구로 동원되고 있다”며 ‘공론장’이 무너지게 된 배경을 짚었다.

이처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공론장을 회복하기 위해서 정치적 지형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공론장의 핵심인 ‘민주주의’와 정치 지형의 변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박홍원 부산대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지 않고선 공론장 마련은 어렵다”며 “내각 책임제 등 정치지형을 바꾼다면 다양한 복수 정당들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치권에 입문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하버마스가 말한 합리적 비판적 논점을 거친 입법한다면 시민들도 다양한 공론장을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업 언론인들, “‘진영화’로 공론의 장 사라져”

‘공론장의 위기’를 직접 체감하고 있는 현업 언론인들의 우려의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이근행 <뉴스타파> PD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공론장은 없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가치판단과 사실에 대한 시시비비조차 불가능한 상태에서 만든 뉴스와 프로그램이 과연 대중에게 어떤 공론을 던질 수 있느냐는 불가능해 절망적인 상태”라고 덧붙였다.

언론노조 위원장 출신인 최상재 SBS PD도 사회적 의제를 이끌어가는 방송사·신문사들이 자본과 정치권력에 포섭돼 최소한의 역할조차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지적을 내놓았다. 그는 “(공론장 역할을 맡고 있는) 조선·중앙·동아일보 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자본력을 확보했고, 정권의 남은 기간 동안 그들만의 기반을 다질 것”이라며 “사실상 공론의 장은 ‘떠나간 기차’”라고 말했다.

이어 최 PD는 “SBS는 자본이 그어놓은 선 아래에서 ‘4대강’과 ‘전두환’ 비판은 마음대로 하지만 선거나 국정원 사건은 스트레이트 기사로만 내보낸다. JTBC가 공론장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꼽히는데, 실상 SBS처럼 비슷한 한계를 지녔다”며 “SBS가 대주주인 태영건설을 보도할 수 있느냐처럼 JTBC는 삼성의 자본과 후계자 문제 등을 전면에서 얼마나 심층 보도했느냐로 (공론장 여부를)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근행 PD는 대안 언론인 <뉴스타파>에서도 공론장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뉴스타파>의 고민은 ‘과연 진영을 넘어선 공론이냐’라는 거다. <뉴스타파>도 진영화된 측면이 있어서 순수하게 공론의 장을 만들기 힘들지 않겠냐는 고민들이 남아있다”며 “이런 가운데 사회적으로 다양한 의제를 다루고 여야의 목소리를 담고자 해도 원천적으로 진영으로 가르는 시선이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PD는 “방송사 지배구조 개편과 사장 선입 구조 등을 골자로 한 공정성특위가 허송세월하다 끝났다”며 “결국 이러한 정치적 유산을 어떻게 청산할 지 학자들이 문제를 짚고 언론정책을 담당하는 이들의 깊은 고민이 수반돼야 진영 구도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바로 언론의 공론장 회복의 첫 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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