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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섭 EBS 사장 취임 1년은]

신용섭 EBS 사장이 지난 5일 취임 1년을 맞았다. EBS 내부에서는 신 사장이 임기 동안 유아·애니메이션을 중심으로 콘텐츠 성과를 내는데 골몰하면서 정작 EBS가 맡고 있는 공적 책무의 역할을 뒷전으로 미뤄둔 게 아니냐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1장 1조(목적)에 따르면 “EBS는 교육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함으로써 학교교육을 보완하고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내부 구성원들은 프로그램 협찬에 대한 압박뿐 아니라 ‘표적 감사’ 논란이 일었던 복무 감사 이후로 자기 검열이 심해지는 등 녹록지 않은 1년이었다고 평했다.

■ ‘유아·애니메이션’ 승부수 vs. 무리수= 올해 신용섭 사장이 내세운 키워드는 ‘유아·애니메이션’이었다. 신 사장은 지난 8월 유아·어린이 콘텐츠 확대를 골자로 한 가을 개편을 단행했다. <같이 놀자>, <만들어 볼까요> 등 4개의 유아 프로그램이 신설되는 등 유아 프로그램의 편성 비율은 봄 개편과 비교하면 21.2%에서 23.8%로 2.6% 늘었다. 또 EBS는 유아·어린이국과 국 산하에 애니메이션 부서를 신설하는 조직개편안을 검토 중이다

EBS는 올해 애니메이션 기획에 대대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동안 <뽀로로> 등 투자자로서 지상파TV 방영권을 갖고 있었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EBS는 오는 18일 <두다다쿵> 첫 방송을 앞두고 있다. 신 사장은 이번 기획에 대해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지난 달 28일 제작발표회에서 “EBS의 독보적인 기획력을 바탕으로 3년에 걸쳐 제작한 기대작”이라며 “EBS 인기 캐릭터 ‘뿡뿡이’와 ‘번개맨’을 이어갈 대표 캐릭터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신 사장의 기조에 내부 반응은 엇갈린다. 한 간부급 PD는 “EBS가 주력해온 다큐멘터리의 경우 EBS 정체성을 확보하는 데 좋은 콘텐츠였지만 수익으로 직결되진 않았다”며 “유아·애니메이션은 교육방송이라는 EBS의 강점을 살리는 동시에 국내외 수익 창출의 잠재성이 있어 적절한 선택”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불확실한 애니메이션 사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공적 책무를 수행해야 할 EBS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그동안 EBS가 투자를 조심스레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PD는 “EBS에서 다양한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편성은 의미가 있지만 지나치게 애니메이션 위주로 한 라인업이 성공할지에 대해선 의문”이라며 “애니메이션은 대자본이 투입되는 만큼 신중히 결정할 사안인데 신 사장은 그러한 부분을 간과했다는 게 PD들의 여론”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현 정권이 창조경제의 견인차로서 5대 킬러콘텐츠에 애니메이션을 선정한 만큼 이에 신 사장이 발맞춘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송희 언론노조 EBS 지부장은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5000억원 규모인데 실제 EBS가 벌 수 있는 수익은 10%도 안 된다”며 “결국 신 사장이 정부의 정책 의지에 맞춘 게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했다.

▲ 신용섭 EBS사장이 지난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노컷뉴스

■ 감사 후유증·협찬 압박에 제작국 ‘흔들’= 제작국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PD들은 이례적인 복무 감사 실시와 협찬 압박 등으로 제작 자율성이 위축되고 있다고 성토한다. 신 사장이 취임사에서 “EBS의 독립성 강화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구성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던 셈이다.

지난 4월 반민특위를 소재로 한 <다큐 프라임> ‘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편이 제작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신 사장은 외부 강의를 이유로 <다큐프라임> 전·현직 PD 45명을 대상으로 복무 감사를 실시했고, 20명에 달하는 PD들은 경고 조처 등을 받았다.

이번 감사 조처는 징계보다 낮은 수위라지만 후유증은 크다. 또 다른 PD는 “(감사 조처가) 간접적으로나마 PD들 스스로 검열하는 분위기를 만든 것 같다. 최근 들어 역사교과서 관련 이슈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러한 주제를 다룬 기획안들이 줄었다”고 말했다.

또 프로그램 협찬을 받아 제작비를 줄이라는 신 사장의 압박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PD들의 전언이다. 일례로 신 사장은 지난 11월 송파구청에서 2억원 가량 협찬받은 라디오 프로그램 <제1회 K-STORY POP 콘테스트>를 추켜세웠고, 같은 시기에 <스페이스 공감>의 뮤지션 발굴 프로젝트인 ‘헬로루키’ 대관료를 두고 협찬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문제 삼았다.

한 PD는 “전체적으로 공적인 역할이 무너지고 있다. 현실적으로 상업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돈 되는 콘텐츠에만 집중해서도 안 된다”며 “공영방송사 사장은 공적 영역에서의 책무가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 공교육으로 ‘돈벌이’ 나선 EBS = EBS는 수능 연계 정책으로 사교육비 절감과 교육 격차 해소 등 공교육의 질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이마저도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11월 EBS가 수능 콘텐츠를 포털 사이트인 다음·SKT측에 판매하는 업무 협약을 맺은 사실이 알려져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SKT의 경우 EBS에서 방송된 수능관련 콘텐츠를 편집해 온라인과 모바일에서 제공하고 있는데 이용자들은 수강권을 구매해야 볼 수 있다. 수능 콘텐츠는 특별교부금을 정부로부터 지원 받아 제작되는데 결국 “국민 세금이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송희 EBS지부장은 “EBS 수능 콘텐츠를 사교육 광고들이 게재되는 포털 사이트와 사기업에 넘겼다”며 “EBS 본연의 역할인 공교육을 유지·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오히려 EBS의 공적 책무를 무너뜨린 대표적인 사례”라고 꼬집었다.

그러나 김병수 학교교육본부장은 신 사장이 학교 교육을 강화하는 데 힘썼다고 해명했다. 김 본부장은 “작년에 세수 부족으로 인해 교부금 규모가 줄었고 EBS에 책정된 교부금도 150억원 가량 줄어든 상황에서 (신 사장은) 교육부와 국회 쪽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며 “직접 지역의 수능 설명회를 찾아 수능 연계 정책의 효과나 함의를 알리는 등 학교 교육을 높이는 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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