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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가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프란체스코 교황이 로마 빈민들을 위해 준비한 올해 크리스마스 선물은 전철패스와 전화카드이다. 이 소박한 선물을 준비한 교황은 파격적인 행보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안온한 성전 안에만 머물며 고립된 교회가 아니라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원한다”고 말했다.

사실 가톨릭이 거리로 뛰쳐나가 멍들고 상처받은 역사를 말한다면 칠레를 꼽을 수 있다. 미국인에게 9월 11일은 잊지 못할 날인 것과 마찬가지로 칠레 사람들에게도 그렇다. 칠레에서 1973년 9월 11일,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아 아옌데 대통령을 배신하고 쿠데타를 일으켰다.

그는 두 대의 전투기로 대통령궁을 폭격하고 탱크로 대통령궁을 둘러싸 일주일 동안 아옌데 대통령을 포함해 3만여 명을 죽였다. ‘좌파’라는 의심이 가면 그 누구라도 끝까지 추적해 모두 구속하거나 살해했다. 그에게 저항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려 들었다. 재판이나 합법적인 절차도 없었다. 그때 연행된 사람만 10만 명, 현재도 수천 명은 행방불명 상태이다. 무시무시한 공포의 피노체트 앞에 나서서 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프란체스코 교황 ⓒ바티칸 교황청 홈페이지
그런데 이 캄캄한 암흑천지에 조용히 저항의 촛불을 켠 사람이 있었다. 바로 가톨릭 사제들이었다. 당시 칠레의 추기경이었던 라울 실바 추기경은 사제들에게 ‘그대들이 나서서 죽어가는 국민들을 보호하라’고 말했다. 사제들은 조용히 거리로 나섰다.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죽어가는 평신도 옆에서 함께했다. 그리고 그들은 멍들고 상처를 입었다.

피노체트 정권은 이런 사제들을 잡아 고문하고 죽였다. 많은 신부가 체포되고 7명의 가톨릭 사제가 순교하였다. 저항이 거세지며 가톨릭교회를 중심으로 정교와 개신교, 유대교까지도 포괄한 ‘정의평화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피노체트는 자신이 가장 증오한 조직으로 정의평화위원회를 꼽았으며 실바 추기경은 ‘레드 카디날’(붉은 추기경)이라 부르며 혐오했다.

공포정치와 죽음의 정권이었던 피노체트 시절, 사제들은 칠레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언제나 국민 앞에 서 있었다. 가톨릭 사제들로부터 시작된 칠레 민중의 저항은 드디어 17년 만에 체노피트 정권을 끌어내렸다. 현지 프리랜서 기자인 살바도르 씨는 “만약 사제들이 국민의 고통을 외면하고 교회 안에서 거룩한 미사만 드렸다면 칠레 국민이 간절히 원하던 민주주의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칠레 사람들은 지금도 가톨릭 신부들을 종교 그 이상으로 바라본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신부님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할머니들과 밀양의 송전탑 반대 운동을 하는 신부들, 그리고 강정마을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신부들, 부정선거를 반대하며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시국미사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린다. 혹자는 사제들이 정치에 나서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로마교황청에 사제 파문을 건의하기로 한다는 말도 있다.

▲ 김영미 국제분쟁전문 PD
그러나 오히려 프란체스코 교황은 “예수를 버린 빌라도처럼 포기하지 말고, 젊은이들이 새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교황은 현실의 불평등한 사회에 “교회가 흙을 묻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주저하지 않고 한다. 가난한 자, 병든 자, 마음이 아픈 사람들 곁에 종교가 필요하고 이들을 위해 사제가 필요하다는 그들은 종북도 좌빨도 아니다. 말만 하는 종교인들은 이제 신물 나도록 많이 보았다. 이제는 국민의 편에 서서 ‘멍들고 상처받으며’ 국민을 보호할 종교인이 필요하다. 밀양에도 강정마을에도 힘없는 사람들 옆에 함께하는 사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크리스마스는 따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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