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 말은 넘치는데…‘이중 심의’ ‘자기검열’ 입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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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길 잃은 공영방송 시사프로그램 1년

지난해 장기 파업으로 몸살을 앓았던 공영방송 구성원들은 2013년 올 한해도 가시밭길을 걸었다. ‘불공정 방송’, ‘편파보도’라는 날선 비판이 KBS와 MBC로 향했다. 시사 프로그램의 수난도 계속됐다. <추적 60분>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무죄 판결의 전말’(이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편으로 또다시 불방 논란에 휩싸였다. MBC 간판 시사프로그램이었던 <PD수첩>은 사회 현안에 침묵하면서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사이 제도언론 밖에서는 <뉴스타파>가 탐사 저널리즘의 저력을 과시했고,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JTBC <뉴스9>는 ‘공정한 뉴스’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영방송 시사 프로그램은 왜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나.

KBS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편을 연출하면서 불방, 심의 제재 등 다사다난한 한해를 보냈다는 남진현 PD와 언론노조 MBC본부 편성제작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재영 PD와 함께 1년을 되돌아봤다. <편집자>

▲ 김재영 MBC PD(왼쪽)와 남진현 KBS PD.

사회: 불방 논란을 겪었던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은 연말 언론현업단체, 시민사회가 주는 상을 받기도 했다.

남진현(이하 남):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은 <추적60분> 팀에 와서 처음으로 만든 아이템이었다. 당시에는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개혁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였는데 방송이 나갈 때는 상황이 달라져 (국정원 등에서)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프로그램의 질과 연출력으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할 말을 하면 상을 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 상을 받으면서도 씁쓸했다.

김재영(이하 김): 정치적으로 민감한 아이템을 다루면 외부에서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회사에서 방어를 제대로 해주지 않고 기획의도와 달리 정치 공방만 남아버리면 제작하는 PD도 힘들어진다. MBC는 2년 전부터 이런 아이템을 PD들이 내면 데스크에서 허락을 안 해주는 상황이다. 국정원 문제를 다뤘다는 자체에 의미를 두는 때가 됐다.

사회: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편의 방송을 연기하면서 사측은 ‘재판 중인 사건’이라는 이유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남: 이병순 전 사장 때부터 사전 심의 문제가 불거졌다. 그 전까지는 사내 심의실이 프로그램의 내용이나 형평성까지 지적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심의실에서 제시한 심의 의견을 회사쪽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악용된 측면이 있다.

김: 방송심의 규정에 있는 ‘재판 중인 사건’ 조항은 재판 중인 사건을 다룰 때는 신중하라는 것이지 방송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이런 논리면 어떤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다는 보도도 할 수 없다. 사법부와 행정부를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과 민주주의 원리까지 무시한 해석이다.

남: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편 때문에 도움을 받았던 한 변호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의 사후 심의도 표현의 자유에 심대한 위축을 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동의한다. 시사 아이템이 방송에 나가기 위해 여러 단계의 데스킹을 거친다. 기자들의 보도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사전 심의도 안 하는 게 맞다고 본다.

김: 방통위의 사후 심의도 위헌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송사에서 충분히 게이트 키핑을 하는데 따로 사전 심의를 하는 것은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방심위 ‘추적60분’ 경고 처분 행정소송 검토 중”

사회: <추적 60분>은 사전 심의를 거친 뒤에도 방심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남 : 한차례 연기 끝에 심의실이 지적한 일부 내용에 대해 인터뷰를 삭제하고 수정도 했다. 국정원의 소송 등을 피하기 위해 예민한 대목은 피했는데도 방심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방심위의 제재 결정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대해 윗선에서 미온적인데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

김: 그런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청구 관련 보도로 징계 및 경고를 받은 JTBC는) 손석희 사장은 직접 행정소송을 낼 것 같다.

남: 부럽다.(웃음)

사회: 손석희 사장의 JTBC 뉴스가 화제다. 어떻게 보나.

김: 지난 1년을 돌아보면 MBC와 KBS만큼이나 시민사회도 혼란을 겪었다. 언론이 공론장이 되길 바라는 시민사회의 논의도 중구난방 아니었나. JTBC의 보도에 열광할 게 아니라 언론이 시민들에게 호응을 왜 못 받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PD수첩>, <추적 60분> 등이 부진한 게 안에서 싸움을 못해서만은 아니다. 공영방송에 대해 빈약한 담론만 남았다. 지금 JTBC가 처한 문제는 이미 KBS와 MBC는 이미 다 겪은 일이다.

사회: 실제 <PD수첩> 이 다룬 방송 내용을 보면 정치 사회 현안이 모두 빠져있다. 자기검열이 심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개편한 <추적 60분>도 지나치게 형식에 집중된 측면이 있다.

김: 작년까지는 아이템 불방으로 안에서 싸웠는데 올해는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다. 정치권력과 기득권이 싫어하는 아이템이 나가는 것을 MBC내의 데스크들이 막고 있기 때문에 아이템을 내놓는 것 자체가 소모적인 싸움이 된다. 외부에서는 ‘자기검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숨을 죽이고 있다는 게 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MBC는 지난해 파업 이후 아직 정상화가 안 된 조직이다. 해고자 문제뿐만 아니라 단협이 없는 상태도 이어지고 있는데 정치권력과의 싸움을 대놓고 하기는 어렵다. 단협이 있을 때는 공정방송협의회를 통해 사측을 견제하고, 그 중에 몇 개의 아이템은 방송이 된다. 그런데 무단협 상태에서는 PD들이 개인적으로 싸우다 말게 된다. 언론인으로서의 신념과 가치를 지킬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없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제약이다.

남: 힘이 빠진 <추적 60분>의 존재감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가장 큰 고민이다. 그동안 거대 담론에 치우쳤다면 이제는 친근한 소재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가 보자는 게 <추적 60분> 팀에서 나온 의견이었다. 기존의 <추적 60분>이었다면 ‘철도 민영화 논란’ 문제도 누군가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 팀이 꾸려진 초반이기 때문에 여력이 없다. 내년 2~3월경부터는 내부에서 적극적인 움직임이 있을 것 같다.

김: 밀양 송전탑 이슈 등을 왜 MBC에선 다루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그동안 은폐된 이슈를 들춰내는 방송은 화제가 됐지만 기존의 이슈를 되풀이해서는 사회적 반향도, 시청률도 안 나온다. 여야의 논쟁이나 공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기 때문에 철도 민영화 논란 등도 또 다른 정치 논쟁으로 해석될 뿐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시사 PD들 사이에선 이런 아이템이 통과되지도 않을 뿐더러 시청률도 잘 안 나올 것이라며 지레 포기하는 분위기가 생긴 게 아닌가 싶다.

남: 이명박 정부 이후 시사영역 자체에 대중도 피로감을 느끼는 것 같다. 웬만큼 센 아이템이 아니면 사회적인 관심도가 크지 않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사모님’편처럼 공분을 살만한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적인 의제로까지 부상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김: 현실적으로 방송 못하는 아이템을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현실 가능하고 대중적인 아이템을 선택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나름대로 역할을 하면서 <PD수첩>이란 프로그램이 살아있다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 공영방송의 프로그램이 위축되면서 탐사보도의 영역은 <뉴스타파> 등 제도권 밖에 있는 언론의 몫이 됐다.

남: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팟캐스트를 자주 이용하는 것 같다. 나도 국민TV 라디오나 <이슈 털어주는 남자> 등을 들으면서 아침을 시작한다.

김: 가장 질 높은 탐사저널리즘을 구현하고 있는 곳이 <뉴스타파>다. 올해 가장 중요한 보도인 ‘국정원 대선 개입 댓글 120만건’과 조세도피처 프로젝트는 <뉴스타파>에서 나왔다. 질 좋은 콘텐츠로 3만명이 넘는 회원들을 모은 것도 대단한 일이다. <뉴스타파>가 실현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와 보유한 자산에 비해 시민사회에서의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올해 교양과 대형 다큐멘터리가 크게 위축된 것도 아쉬운 점이다.

남: 그렇다. KBS는 대형 다큐멘터리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 지금까지 대형 다큐를 보면 굉장히 계도적인 내용이나 어깨에 힘을 주는 대작이 많았다. 10년 전까지는 이런 다큐가 통했는데 이제는 그런 시대가 지나갔다. 시청자들에게 통하지 않는다.

김: 시사와 교양은 떨어질 수 없는데, 시사의 자리를 좁히기 위해 임의로 두 영역을 나눴다. 대중의 취향을 따라가지 못하는 PD들의 문제를 꼽을 수 있겠지만 자유로운 발상과 창의력을 제한하는 게이트 키핑이 가장 문제라고 본다.

“‘응답하라 1994’ 창의력 발휘 환경 부러워”

남: tvN<응답하라 1994>같은 케이블 드라마를 보면 PD들이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든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면에서 종합편성채널과 케이블에 부러움이 있다.

김: 제작 자율성을 죽이는 게 결국 지상파 방송의 상업적인 성과까지 위축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PD들의 상상력을 죽이고 게이트 키핑을 통해 상명하복의 경직된 체계가 계속된다면 케이블 채널에 주도권을 뺏길 수밖에 없다.

남: 위에선 민감한 것을 제외하고 다른 것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이야기 한다. 창의력은 소재의 제한이 없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별것 아니지만 일선 PD입장에선 굉장히 위축된다.

사회: 교양프로그램의 관제화도 문제다.

남: 내년에 정부의 국정기조인 ‘창조경제’를 홍보하는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올해 논란이 됐던 ‘역사교과서 방송판’이다. 지금도 창업 프로그램이 적지 않은데 방송을 창조경제에 적극 홍보하는 데 활용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김: 이전에도 공영방송은 당대 정권에서 바라는 프로그램을 해왔다. 그 요구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게 다른 점이다.

사회: 새해 계획이나 각오가 있다면.

남: 영화 <변호인>을 보면 ‘국가보안법 사건은 형량 문제’라는 동료 변호사의 이야기에 송강호가 ‘무죄는 무죄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대사가 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고 싶은 아이템은 타협하지 않고 하는 게 정상이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고, 해야 하는 아이템을 하는 선례를 남기는 게 필요하다.

김: 밀양 송전탑 문제, 철도 민영화 문제 등을 정면에서 돌파하는 게 어렵다면 다른 방식으로 고민할 수도 있다. 간부들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안 보게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공영방송의 사장을 정치권력이 바뀌더라도 정치적 입김이 들어가지 않도록 뽑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국회 방송공정성 특위는  논의만 하다가 아무런 결론 없이 끝났다. 공영방송 복원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시민사회 전반으로 확대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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