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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국= 장정훈 통신원

영국의 남부지방과 런던을 잇는 철도회사 SWT(South West Train) 노조는 크리스마스 직후인 지난 12월 26일부터 ‘48시간 파업’을 진행했다. SWT노조의 ‘48시간 파업’은 2월 12~13일에도 이어질 예정이다. 노조가 파업을 이어가는 이유는 단 하나. 임금을 런던의 물가수준에 맞게 올려 달라는 것이다. 이들의 파업으로 인해 이틀 동안 1100회에 이르는 기차운행이 취소되었고, 하루 평균 35만명에 이르는 시민이 출근길 대란을 겪어야 했다.

같은 기간, 런던과 영국 북부지역을 운행하는 철도회사 실버링크(Silverlink)와 아리바 트레인 노던(Arriva Train Northern) 노조도 임금인상과 근무시간 단축을 주장하며 48시간 파업투쟁을 벌였다. 그 결과로 1600회에 이르는 기차운행이 취소됐다. 전국 철도 노동자들의 조합인 RMT(The National Union of Rail, Maritime and Transport Workers)는 전국적인 규모의 파업을 무기로 정부(교통부 장관 스티븐 바이어스(Stephen Byers))를 압박하고 있다. 전국철도 노동조합(RMT)은 조합원 투표를 통해 1월 말에 전국적인 규모의 48시간 철도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파업은 철도노동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지난해 10월 17일 전국 교직원 노동조합(NUT와 NASUWT) 소속 교사들이 파업을 벌여 전국적으로 3500개 이상의 학교가 문을 닫았다고 보도했다. 임금동결과 과중한 업무, 연금축소정책에 항의해 벌인 이 전국적인 파업엔 90%의 교사들이 참여했다.

민영방송 채널4(Channel4)는 지난해 9월 14일 경찰·소방관·교도관들의 연대파업 결의를 보도했다. 경찰-소방관 연대노조 PSC(Public and Commercial Service Union)의 대변인은 채널4와의 인터뷰에서 “연금법 개악에 대해 정부가 전향적인 대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한 파업이 불가피 할 것이라며 아직 늦지 않았으니 정부는 즉각 협상테이블로 나오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지난해 5월 10일 <데일리 텔레그라프>는 연금법 개악에 대한 항의로 3만 5000명의 경찰과 교도관, 공항 이민국 직원, 그리고 그들의 가족 10만여명이 파업에 참여해 런던도심을 행진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특히 교도관들은 현행법 상 파업이 보장되어 있지 않아 수감자의 식사제공과 의료지원에 필요한 인력을 제외한 인원이 이른 아침 기습적으로 파업을 벌인 후 오후 2시쯤 복귀한 사실을 전했다.

이렇듯 영국에서 파업은 일상이다. 2013년 한해만 해도 전국적으로 얼마나 많은 파업이 있었는지 파악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파업은 임금과 노동환경, 연금 등의 문제에 있어서 노동자 개개인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챙기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다. 다시 말해 영국 노동자들의 파업은 ‘밥그릇’을 위한 싸움이며 그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 노동자들은 파업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지난해 런던 올림픽 때 전국철도노조(RMT)는 올림픽 기간 중 4.75%의 임금인상을 약속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올림픽 특별보너스를 추가로 요구하며 파업 찬반투표를 벌이기도 했을 정도로 말이다.

파업은 법에 의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어진 기본 권리다. 그러나 공무원에게만큼은 파업권을 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무원들이 파업을 벌였다고 해서 불법이라고 매도하고, 비난하는 일은 없다. 영국의 언론은 노동자는 물론 공무원들의 파업에 대해서도 이유를 듣고, 요구와 주장은 무엇이며, 파업 대상(정부 혹은 기업)의 입장은 어떤 지에 대해 보도하기 위해 전파와 지면을 사용한다. 그 어떤 언론사도 파업에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이지 않는다. 노조원의 급여수준을 논하지도 않고, 한술 더 떠 ‘귀족노조’라며 폄하하지도 않는다. 언론은 어디에서 어떤 불편한 상황이 생길 수 있는지 알려주면서 그러한 불편을 피할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파업이 비일비재하지만 필자는 영국에 사는 동안 파업으로 인해 누군가 조직과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당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파업이 경찰에 의해 제압되고, 파업 노동자가 수배를 받고, 체포되었다는 말도 들어 보지 못했다. 파업에 업무방해죄가 적용되었다는 말 또한 어느 언론을 통해서도 들어보지 못했다. 경찰은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합법적인 파업이 방해받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역할을 할 뿐이다.

영국에서 45㎞거리를 기차로 출퇴근하는데 드는 연평균 기차비는 600만원대다. 런던 근교에서 출퇴근을 해도 1년에 200만원이 넘게 든다. 2003년 이후 기차비는 임금상승 속도보다 20%나 빠르게 올랐다. 모두가 민영화 때문이다. 철도회사 주주들의 주머니를 불려주기 위해 시민들의 주머니가 털리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 철도노조가 파업을 했다. 정부의 민영화 꼼수에 반대해서 벌이는 파업이었다. 그들이 밥그릇을 위해 싸웠다 해도 그것은 정당한 싸움이다. 그런데 민영화 저지를 위한 싸움이라니 그 이상 고귀한 명분이 있을 수 없다.

▲ 영국=장정훈 통신원 / KBNe-UK 대표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이 이것 하나만은 잊지 말았으면 한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33조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불법파업’이라는 말이 방송과 신문에서 사라져야 할 이유다.

그리고 하나 더 기억해 주기 바란다. 임금인상(밥그릇)만을 위해 파업을 하는 나라. 그런 파업이 어제, 오늘에 이어 내일도 일상처럼 벌어질 나라, 영국. 그런 영국이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여전히 선진강대국의 대열에 서있다. 잊지 마시라. ‘파업’과 ‘선진국’ 사이에 들어갈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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